나는 한국 사회가 당연시하는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열심히 살았다. 학창시절에는 좋은 성적을 받고 좋은 대학에 입학 하는게 목표였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좋은 학점을 받아 좋은 직장에 취업 하는게 목표였으며, 사회에 나와서는 좋은 근태를 유지하며 좋은 성과를 내는 사람으로 살았다. 사회가 말하는 '그렇게 해야 좋다'는 그 기준이 꼭 정답은 아닐지라도 문제 없이 편하게 사는 '최선의 길' 이라 생각했고 매 단계를 큰 무리없이 'PASS'했다. 말하자면 나는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모범생' 인생을 살아 온 것이다. 사실, 대한민국에는 이런 종류의 'K-모범생'이 대부분이다. 나를 포함한 나의 모든 친구, 선/후배, 직장동료까지 예외 없이 이런 삶을 살고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한국 사회의 '옳다는 기준'을 따라 살다보니, 내가 삼십 여 년 동안 만난 대부분의 사람은 지극히 평균적이고 보통인 소시민이었다. 그들은 서로의 '인간존엄'을 지켜주는 적당선을 지켰고, 가끔 겪는 불합리나 무례함에도 '정도'가 있었다.
빌런의 등장, '모범생' 궤도를 이탈하다
그러던 어느 더럽게 운수 좋았던 날, 나는 무자비한 '빌런' 상사를 만나게 된다. 함께 일하던 동료들과 나는 그의 창조적인 언행에 스러져갔고, 누군가 울거나 그만두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처음에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 싶은 마음에 힘을 내서 버텨보았다. 월급에 이정도 욕먹는건 포함 되어 있고, 어느 회사나 이 정도 빌런은 있다는 자기암시로 스스로를 위안하며 버텼고, 시간이 좀 지나고 내가 좀 더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이면 언젠가 나라는 사람, 나의 진심을 알아주리라 믿었다. 무엇보다 내가 쌓아온 나의 커리어와 '30대 K-모범생'으로서의 궤도에서 절대로 이탈하고 싶지 않았다. 단 한번도 한국 사회가 정의한 '생애주기 별(Life cycle) 기준'에서 멀어진 적 없었고, 이것을 목표하지 않은 적 없지 않나.
그래서 그렇게 어려웠던걸까? 지난한 '존버'의 시간을 견디던 나는 결국, '장밋빛 미래를 상상한' 나의 어리석음을 반성하며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휴직계를 제출했다.
친구, 너 지금 진짜 구려!
휴직을 하고 몇 달 푹 쉬고, 잘 먹고, 좋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상태가 크게 나아지지는 않았다. 그 때를 생각하지 않으려 매일 애쓰고 용 썼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더 생생하게 자주 생각이 났고, 급기야 잠을 설치는 날이 늘어갔다. '빌런'을 안 보고 산지 수 개월이 지났지만 고장난 마음은 전혀 회복 되지 않았던 것이다. 내 마음에 '아이언맨'이나 '토르'가 나타나서 마블 영화 스타일로 빌런을 가차없이 무찔러 주기를 빌었다. 제발.
그러던 여름 어느 날,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내 상태를 한참 보고 듣더니 '너 지금 진짜 구려. 왜 이렇게 됐어? 다른 사람 같아.' 하고 내게 돌직구를 날렸다. 그리고는 '심리상담'을 제안했다.
그때까지도 이런 식의 치료에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나는 '내가 그 정도인가?' 너무 놀라서 말을 잇지 못했고, 그 친구는 다시 한 번 '너 무슨 말 하려는지 아는데, 지금 너 치료 필요한거 맞아. 그리고 심리상담은 현대인이라면 꼭 한 번은 받아야해.'하며 본인의 경험을 들려주었다. 이 친구와의 그 날 대화가 어쩌면 나를 정신차리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면전에서 '구리다'는 말을 들으니 어디에 힘껏 얻어맞은 것 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더 구려지지 말라면서 친구가 애정담아 선물해준 식물
크리넥스 휴지 15장 만큼의 눈물
그렇게 심리상담을 시작하게 되었다. 상담치료 첫 날, 문을 열고 들어간지 정확히 3분만에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자리에 앉아 선생님과 '안녕하세요' 첫 인사를 나누었고,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 입을 뗀 바로 그 순간부터였다. 눈물이 갑자기 왜 이렇게 나는지 당황스러우면서도 내가 이 정도로 아프고 힘들었는데 정작 내가 몰랐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복잡했다. 그렇게 나는 처음 뵌 선생님 앞에서 꺼억꺼억 오열하며 나의 지난 시간을 두서없이 마구 뱉어냈다.
50분의 상담시간 동안 나는 휴직을 한 이유와 지금 나의 몸 그리고 마음의 병에 대해 이야기했다. 신기하고 놀랍게도 오늘 처음 뵌 선생님 앞에서 훨씬 더 솔직한 나의 이야기가 나왔다. 마음 저 아래 가라앉아 눌러 붙어있던 감정까지 박박 긁어내어 쏟아내듯이야기를 했고, 울고 또 울었다. 나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중에 상담선생님은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주셨고, 끝없이 공감해주셨다. 정확한 표현을 머뭇거리는 나를 대신해 '지옥, 지옥이었네요' 같은 말을 시원하게 해주셨고, 날카로운 시간을 떠올리며 힘들어하는 내게 '힘들었겠네요' 같은 위로를 건네주셨다. 첫 상담에서 나는 크리넥스 휴지 15장 분량의 눈물과 콧물을 흘렸다.
나는 나에게 제일 미안하다
선생님이 제일 먼저 해주신 말씀은 '내 감정을 자꾸 보고, 자꾸 물어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른사람들은 잘 버티고 괜찮은 것 같은데, 나만 휴직했으니 내가 이상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 자체가 잘못 된 거라고도 하셨다. 가장 단호한 어투로 말씀해주신 '내 마음은 나의 것이고, 내 감정의 주인은 나' 라는이야기에는 눈물이 와락 쏟아져 흘렀다.
나는 '배려심이 많다'는 평이 듣기 좋아서 다른사람 감정을 우선했고, 내 감정이 제일 마지막인 사람으로 살아왔다. 다른 사람의 감정은 표정이나 말투로 내 눈에 보였지만, 나의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다는 이유로 괜찮을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가장 마지막 순간에 챙긴 나의 마음, 내 감정에 너무 미안했고, 이로 인해 고장난 나의 오장육부와 뼈마디에게도 미안했다. 내가 가장 신경써야 할 대상이고 지금 이 순간 가장 미안해야 하는건 바로 '나 자신' 이었다. 감정을 쓰는데까지 '모범생'일 필요는 없었다.
그래 다 됐고, 내가 짱이다
다음 시간부터는 나의 마음을 똑바로 보는 연습을 해보기로 했다. 내 마음속을 현미경 보다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돋보기로 보는 것보다 크게 느껴서 구불구불한 내 마음 길을 잘 익혀볼 셈이다. 애정어린 눈길과 손길로 내 감정, 내 마음을 잘 보듬고 살펴서 '안 구린 사람, 멋진 사람'으로 다시 돌아가야지. 나는 원래 짱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