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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못그림일기 Jan 22. 2021

화(anger) 내며 삽시다

당신의 '화'는 무슨 모양인가요?

내 마음 속 화(anger)의 모양 = 크고 못생긴 불똥


감정에 '나쁜 감정' 이란 건 없다?!


얼마 전 ‘감정에는 좋고 나쁨이 없다’는 내용이 담긴 책을 읽었다. 행복/사랑/기쁨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 뿐만아니라 화남/슬픔/우울함 같은 부정적인 감정도 삶에서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부정적인 감정도 필요한 거라고? 잘 이해가 되지 않아 그 부분을 읽고 또 읽었다. 나에게 있어 화 내는 건 나쁜거고, 우울함에 빠져 있는 건 옳지 못한 행위였는데, 이러한 감정이 필요하고 지극히 당연하다니. 나의 상식에 금이 가는 순간이었다. 


심리상담 날 상담 선생님께 ‘문제의 책’ 내용을 한참 질문하였고 놀랍게도 선생님의 대답 또한 책과 같았다. 심지어 선생님은 화남/슬픔과 같은 감정은 매우 중요하며 절대로 이런 감정을 계속 참거나 모른체하거나 억눌러서는 안된다고 말씀 해주셨다. 그동안 나를 불편하게 하는 감정이 들 때마다 어떤식으로든지 빨리 그 감정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는데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사실이 적잖게 충격이었다. 


대신 그 감정을 알아차리고 ‘그랬구나, 지금 이런 상황이구나’ 하고 알아주며 머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한다. 



"어묵 반찬 더 주세요" 라고 말하면 어디가 덧납니까!


엊그제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옆 테이블에 앉은 무례한 아저씨 때문에 화가 난 일이 있다. 손님이 제법 있는 저녁시간이었는데, 1~2분 간격으로 쉬지 않고 벨을 눌러 종업원을 호출하고 때마다 아주 불쾌한 지시 조의 어투로 필요한 것을 가져오라 ‘명령’했다. 상호 존대는 당연히 없었고, 모든 요청이 손짓만 하거나 “물”, “소주”, 어묵 더” 같은 ‘일부러 하기도 어려운’ 말투였다. 반말하는 꼰대들은 많이 봤지만, 저런 또라이는 또 처음이었다. 밥 먹는 내내 불쾌하고 가 났다.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던 중, 좀 전에 식당에서 느꼈던 ‘화’의 감정이 다시 떠오름을 느꼈다. 예전 같았으면 ‘부정적인 감정은 나쁜 것, 옳지 못한 것, 빨리 잊어야 하는 것’ 이라고 생각하며 샴푸로 머리를 박박 문질렀을텐데, 이번에는 이 감정을 가만히 놓아 두어보기로 했다. 그러자 머릿속에 ‘나는 사람 간의 예의와 존중을 중요하게 생각하는구나, 그 아저씨한테 가볍게 얘기라도 해 볼걸 그랬나? 지금 다시 생각이 날만큼 아까 정말 화가 났었구나’ 같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감정이 떠오르는 걸 알아차리고, 그 상황 속 나를 인지하고, 화가 난 이유를 정리하는 과정을 통해 잠시 뒤 나는 다시 평상심을 되찾을 수 있었다. 화가 난 바로 그 순간에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겠지만 감정을 정리하는 과정이 생각보다 의미있었고 그다지 길지 않았다. 불편한 감정이 떠올랐을 때 밀어내지 않고 마주하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말이 어렴풋하게 이해 되는 듯 했다. 


오늘 나의 화(anger) 모양 = 크고 못생긴 불똥


감정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떠오르는 그 순간에는 어떤 ‘모양’을 지니고 있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같은 감정(‘행복’을 예를 들어)이라 할지라도 오늘의 감정(행복) 모양과 내일의 감정(행복) 모양은 분명 다를 것 같다. 마치 모양이 자유자재로 변하는 ‘슬라임’처럼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식당 옆 테이블 아저씨가 투척한 '무례함'이 내 마음에 어떤 모양의 '화'를 불러 일으켰는지 상상해보았다. 무례남이 옆 테이블에 앉기 전까지 나는 ‘행복’, ‘편안함’의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각자의 하루를 나누는 시간이었고, 청명한 날 숲 길을 걷고 있는 듯 한 느낌이었다. 그러다가 무례남 아저씨가 엉망진창 활동을 개시하자 나의 숲 길 한복판에 아주 크고 못생긴 불똥이 확 튄 것 같았다. 


내 마음에 일어난 화(anger)는 그 불똥 모양이었다. 이게 뭐라고 모양을 상상해보고 심지어 그림까지 그리나 싶은데, 이렇게 색 까지 칠하고 나니 그 감정이 정말 별 것 아닌 듯 스르륵 녹아버렸다.  


어찌되었든 현명한 어느 친구 말대로, 남이 튀긴 불씨가 내 마음을 다 태우지 못하도록 초장에 꽉 즈려밟아 꺼버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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