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동생이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하는 사진을 가족 메세지방에 올렸다. 청년 때의 낭만을 실현하고 있는 모습은 실로 아름다운 삶의 때가 아니던가. 그러다 하루 종일 김칫국물 묻은 옷을 입고 있는 현실 속에 내가 보였다. 아침부터 도끼눈을 뜨고 다그쳐 한 아이는 겨우 어린이집에 보냈고, 한 아이는 온라인 수업을 돕느라 지친 나. 동생과의 삶의 장면이 너무나 대조적으로 비쳤다. 우리의 삶이 대조적인 것은 이 장면뿐 만은 아니었다. 사춘기를 힘들게 보내며 엄마를 많이 힘들게 했던 동생은 학교를 가는 것과 친구를 사귀는 일상적인 일 조차도 엄마에게는 기특하고 대견해 보이는 아이 었다. 반면에 나는 엄마가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 아빠와 동생 사이에 치어 버거운 삶의 무게를 지고 있는 엄마에게 내가 기쁨이 되고 싶었다. 그 애씀을 인정받지 못하고 엄마의 사랑과 관심이 동생에게 조금 더 기울어있다는 것을 느꼈을 때 큰 아픔과 상실감을 느꼈다.
동생과 나 사이에서의 저울 질 뿐이었다면, 성인이고 결혼을 한 딸은 출가외인이라는 엄마의 생각을 받아들이기 쉬웠을지도 모른다. 결혼하고 육아를 하며 친정엄마에게 받고 싶은 정서적인 돌봄을 받지 못했던 서운했던 순간들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부분을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건, 동생과 우리 아이들 사이에서도 저울질을 느꼈을 때였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우리 가족과 엄마, 동생. 이렇게 여행을 떠났다. 복층으로 된 작은 펜션을 빌렸다. 1층은 거실 겸 부엌, 2층은 크지 않은 침대 2개가 놓여있었다. 내심 엄마가 아이들의 잠자리를 먼저 배려해주길 기대했다. 엄마는 오히려 동생이 우리 아이들 때문에 잘 자지 못할까 봐 걱정하며 아들에게 침대에 가서 쉬라고 했다. 내가 침대에 가지 못한 것은 이해할 만했다. 그러나 아이 있는 집을 먼저 배려한 것과는 달리 엄마가 다 큰 아들, 어엿한 예비역을 그 자리에 눕힌 것을 보면서 속에서 화가 끓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엄마와 동생이 함께 있는 곳에 있는 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엄마는 아무리 일이 바빠도 동생의 잔심부름을 해주며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했고, 나는 그 둘의 부자연스러운 관계에 질린 상태였다. 전처럼 내가 엄마를 보조하며 동생을 책임져야 한다는 마음이 있었다면 가능했을까. 내 삶의 불어온 풍파도 버거운 상황에 동생까지 내가 엎어 키울 순 없었다. 그래도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엄마가 동생에게 하는 것처럼 본능적으로 동생한테 자세를 낮추는 내 모습이 싫었다.
엄마한테 나와 동생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서 서운하다고 했다.
“내가 그런 걸 어떡하니, 애는 어릴 때부터 힘들었던 아이라서...”
“너는 원래 잘했잖아, 이제는 결혼했고.”
그런 말을 들을 때, 내 마음이 하나도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또 한 번 속이 상했다.
“엄마가 그래구나, 너도 많이 애썼다. 참 힘들었겠다.”라고 해주었다면 어땠을까? 감정의 골은 갈수록 깊어졌다. 나는 엄마와 잘 지내고 싶었다. 엄마에게 늘 힘이 되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그러지 못한 삶을 살고 있어 미안하고 속상했다. 그럼에도 엄마가 나의 상처를 버거워하며 밀어낼 때, 자식으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아 낙심했다.
무엇보다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이런 내 감정을 두고 스스로 하는 비난이었다.
‘동생은 20대이고, 여행 좀 가는 게 어때서. 대학 졸업하고도 부모님 지원받으며 놀고 있어서, 본인도 걱정되고 힘들다던데.‘하며 자꾸 나 자신을 설득시켰다. 그러나 내 감정을 누를수록 부정적인 생각이 올라왔다. 다른 것보다 엄마의 따뜻한 품 한 번이 그리웠던 나에게 “내가 너한텐 못해준 게 뭐가 있어?”라는 엄마의 말이 아팠다. 그 와중에도 내 솔직한 감정을 읽지도 못한 채 ’이렇게 이해해야지.’라는 틀에 나를 맞추려고 했다.
아무도 내 마음을 알아주지 못해도 나는 내 마음을 안아 주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솔직하게 질투 난다고, 나도 여행 가고 싶고, 자유롭고 싶고, 아이라도 맘 편히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지 못했다. 꽤나 이해심이 많고 자비로운 사람인 양 생각했다. 솔직하게 나도 동생처럼, 아무것도 안 해도 엄마가 용돈도 주고, 미래도 걱정하지 말라고 하고, 지금처럼 전세로 살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아들처럼 결혼할 때 집도 사줬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마음이 힘들 때 동생처럼 엄마가 바람 쐬러도 데리고 가줬으면 좋겠고, 힘들다고 할 때 내 말도 좀 들어주면 좋겠다. 자기가 더 힘들다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엄마 짐 자꾸 나한테 짊어지라고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제까지 착한 딸로, 엄마 짐 짊어지고, 할 일 알아서 잘하는 딸로 살았지만, 그건 진짜 내 모습이 아니었다. 하기 싫은 일도 참고했고, 그러면서도 돌아갈 곳이 없어서 외로워했다. 한 발 더 먼저 뛰지 않으면 뒤로 떨어지는 낭 떨어지가 있는 것 같아 덜덜 떨면서 살았다. 엄마가 믿는 크고 뭐든지 알아서 잘하는 딸이 아니라 아주 작고 약한 아이 었을 내 마음을 이제는 내가 알아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