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라이프‘라는 살림의 방식이 유행이다. 단순히 짐을 줄이는 것뿐 아니라 간결하고 소박하게, 꼭 필요한 것만 지니고 살자는 것을 모토로 하는 라이프스타일이다. 소중한 것에 집중하는 삶을 살겠다는 가치를 집안 인테리어에도 표현하고 있다. 미니멀라이프의 기준에서 보면 자리를 차지하는 커다란 가구, 예컨대 소파나 침대 같은 커다란 물건이나 사용의 방법이 한 가지로만 정해져 있는 가구는 처분 대상 1순위이다. 게다가 우리 집에 있는 소파는 감히 안주인인 나의 허락도 받지 않고 들어앉은 물건이 아니던가.
우리가 새 집으로 이사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소파를 사 오셨다. 가구 장사를 하는 친구 분에게 주문하시곤, 물건을 실은 배가 제주의 항구로 도착하자마자 직접 들고 오신 듯했다. 내가 잠시 외출한 사이 거실에 들어앉은 새 소파. 쿠션도 폭신하고 크기도 한쪽 벽에 딱 맞았다. 아이보리색 바탕에 밝은 카키색 쿠션이 포인트인 소파는 집 안에 한층 더 생기를 불어넣었다. 어머니에게 묻지도 앉고 친구 분의 추천대로 아버지가 사 오신 부모님 집 가구보다 디자인이 괜찮았다.
물어보지도 않고 왜 소파를 사 왔냐고 아버지를 타박했지만 소파는 금세 우리 집의 일원이 되었다. 별 볼일 없는 체력으로 집안일을 하다 지쳐 있을 때면 소파는 나를 감싸 안아주는 둥지가 되었고, 이런저런 걱정으로 어깨가 무거워진 날이면 안락한 쉼을 주는 그루터기 역할을 했다. 남편이랑 투닥거리다 축 쳐진 마음으로 소파에 앉을 때면 왜 그리 날을 세우고 사느냐고 훈계를 하는 것 같다가, 힘을 내기를 가만히 기다려 주기도 했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된다. 너무 애쓰지 말아라.”
쉬어가도 괜찮다고 했지만, 본인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행동으로 보여주셨던 아버지. 어쩌면 아버지를 닮은 내가 버거운 책임감을 짊어지고 살아갈까 봐 안쓰럽게 여기셨던 건 아닐까.
아버지는 소파를 사주시고 일 년 후에 세상을 떠나셨다. 아버지가 떠나고 집에 들어올 때면 늘 소파가 먼저 눈에 띄었다. 울고 싶은 날이면 그 자리에 가서 주저앉았다. 그러면 살아계실 때도 미처 나누지 못한 한숨 섞인 이야기들이 절로 나왔다. 소파가 아버지가 나에게 준 마지막 선물일 줄 알았더라면 소파를 가져오시던 그날, 고맙다는 말이라도 제대로 전할 것을.
한정된 크기의 거실에서 생활하다 보니 소파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는 물건들이 생겨났다. 아이들이 자라고 바깥으로 나갈 일이 많아지자 소파에 앉게 되는 시간도 줄어들었다. 버릴까 말까 몇 번이나 고민했던 소파. 이별할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시간이 흐름을 따라 추억마저 사라질까 겁이 났다. 결국 버리지 못한 소파는 다락으로 올리기로 마음먹었다. 가로로 눕혔다 세로로 세우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며 간신히 이층 다락에 올려두었다.
다리가 무거운 날이면 다락에 올려둔 소파로 가서 털썩 앉는다. 이제는 어디서도 느낄 수 없는 아버지의 포옹을 소파에게 받는 것만 같다. 소파를 사 오신 아버지에게 투덜거리던 그날의 내 모습과 가져다주시고 만족스러워하던 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른다.
다시 한번 아버지의 웃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