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달픈 하원 노동자의 육아 반성문
아이들의 하원을 위해 집에서 출발하는 일정은 2시 20분에 시작한다. 점심을 먹고 뭔가 할라치면 컴퓨터를 끄고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하던 일에 5분만 시간이 더 있으면 쓰던 글도 마무리하고 등록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다 끝내지 못한 일은 아이들을 태우고 다시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엉덩이가 떨어지지 않아 머뭇거리다 출발 시간을 지체하면 아이를 데리러 가는 30분의 운전 길 내내 마음이 조급하다. 신호를 몇 번이라도 덜 받고, 5분이라도 단축해서 아이의 학교까지 일찍 도착하기 위해 지름길을 알아두었다. 오등동에서 아라동 그리고 영평을 지나 황사평으로 이어지는 길목은 좁은 골목을 지나야 할 때가 많은데, 마음이 급하면 나도 모르게 속도를 내다 ‘아차!’한다. 여유 있게 조금 일찍 나갔어야 하는데.
오늘은 마음이 더 바쁘다. 몇 번이나 영유아 검진 통보서를 내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다. 기한이 한참 지난 터라 아침에 일을 하러 가기 전에 병원에 들렀다 가려고 했는데, 아이가 책을 더 읽겠다고 떼를 쓰는 터에 시간이 늦어져 가지 못했다. 오후에라도 가야 한다. 첫째 아이를 학원 앞에 내려다 주고 서둘러 둘째 어린이집으로 갔다. 아이를 차에 태우니 언제는 ‘엄마는 맨날 늦게 온다.’며 서운한 기색이더니 오늘은 ‘친구랑 다 놀지도 못했는데 데리러 왔다.’며 투정이다. 아이가 좋아하는 겨울왕국 OST를 틀고 속력을 낸다. 몇 백번은 들은 것 같은 노래라 내 귀에는 들리지 않는 노래다.
5살이 된 둘째 아이는 이번에 처음으로 시력검사도 했다. 체구는 작지만 근육과 언어의 발달도 정상적으로 잘 이루어지고 있어 감사했다. 갑자기 진물이 나기 시작한 발가락에 염증이 심해진 바람에 의사 선생님에게 여쭤보았다. 아무도 뭐라고 한 사람이 없는데 발가락에 살이 다 까져 속살이 발갛게 보이는 둘째의 조막만 한 발을 보며 괜히 엄마가 제대로 관리를 못해준 탓은 아닐까 생각이 든다.
“항생제는 먹이고 있죠?”
둘째가 장이 약해 먹이지 않았다. 염증이 있는데도 왜 항생제를 안 먹이느냐는 타박을 들을 것만 같아 먹고 있다고 거짓말을 하곤 낯이 부끄럽다. 5분만 일찍 나왔다면 급하지 않게 첫째 학원으로 데리러 갈 수 있었는데 괜히 시간을 끌었다. 이 와중에 일 때문에 걸려온 전화를 받고, 제주로 이사 오는 지인에게 어린이집과 병원정보를 묻는 전화에 부지런히 답을 한다.
학원 앞에 도착했다. 서두른 덕분인지 다른 날보다 일찍 픽업을 했다. 운동장에서 2-30분은 놀다 차에 타야 직성이 풀리던 아이가 순순히 따라와 공덕도 있다. 피아노 마치고 나온 아이를 태워 발레 스케줄을 가는데 아이가 어디로 가는지 물었다. 오늘부터 발레가 시작되니 엄마가 데려다주고 있다고, 다음 주부터는 학원차가 데리러 오고 엄마는 동생을 태우고 가서 기다릴 거라고 말했다. 몇 달 전부터 두 아이가 발레를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는데 알아보는 것도 번거롭고 두 아이나 발레에 보내는 것이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도 부담스러워 미루었다. 다행히 복지관에 예약해두었던 수업이 시작했다. 그마저도 스케줄이 추가된 것이 부담스러워 고민했으나 꼭 하고 싶다는 첫째 아이의 말에 여름 방학이 있는 두 달만 해보자며 나를 달랬다. 그런데, 아이는 발레복이 없다며 가지 않겠다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어제 얼핏 그런 말을 하긴 했던 것 같은데. 발레복 없이 가도 된다며 오늘만 가보고 생각해보자며 실랑이를 했다.
복지관에 도착해서도 아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둘째를 이끌어 먼저 차에서 내리게 했다. 더운 여름날 땡볕 아래 아홉 살 첫째와 옥신각신하고 있자니 속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 겨우 설득해서 발레교실 앞까지 갔는데, 첫째는 들어오지 않았다. 하아. 누가 하라고 했냐고. 발레 발레 노래를 하니 겨우 데리고 갔는데 고작 발레복이 없어서 안 들어가겠다니.
수줍음이 있고, 완벽한 모습만 보이고 싶어 하는 아이인 줄 알면서도 용납이 안 되었다. 이 시간을 위해서 내가 오후 내 마음 졸이며 운전을 했던가. 내가 원하지 않은 일을 아이 때문에 하고 있자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얼떨결에 혼자 발레교실에 들어간 둘째는 마스크를 안 가지고 왔다며 입을 틀어막곤 얼음처럼 서있었다. 저보다 한두 살 많은 아이들이 하는 동작을 흘끔흘끔 지켜만 볼 뿐 꼼짝을 안 했다. 잠깐만 기다리라고 해놓고 햇볕 아래의 길을 뛰어 차에서 마스크를 가져다주었다. 엄마를 본 아이는 몸에만 매달리고 팔을 끌어당기며 안 하겠다고 했다. 처음이라 어색해서 그렇겠거니 하고 아이와 한쪽 의자에 앉았다. 조금 지켜보다 보면 괜찮아지겠지. 머리가 지끈해져 오는 것 같기도 하고 선생님을 쳐다보고 있기도 보기도 민망해서 가져온 책을 펼쳤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첫째 아이가 마음에 걸렸지만, 한편 괘씸했다. 둘째를 혼자 두고 첫째에게 다녀올 수도 없었다. 둘째도 내 주변만 맴돌고 있으니 한 명이라도 먼저 적응할 시간을 주기 위해 앉아 있기로 했다.
시간이 지나니 둘째는 쿵쿵 소리를 냈다. 수업에 방해가 될 것 같아 고개를 저으며 데리고 나오는 데 따라 나왔다.
“어머니, 가시게요?”
“아 네. 첫째는 발레복을 안 가져와서 부끄러워 못 들어오겠다고 하고 둘째는 어렵다고 하네요.”
“그랬군요. 발레복은 안 가져와도 괜찮은데... 한 번 더 이야기해보시고 다음 주에 오세요.”
인원이 안 돼서 열리지 않을 뻔한 발레 교실에 우리 아이들이 등록해서 열리게 된 거였다. 처음부터 안 한다고 했으면 열리지 않았을 수업인데 왠지 모를 미안한 마음이 있었나 보다.
밖으로 나와 보니 첫째 아이가 주차장을 맴돌고 있다. 외려 자기가 더 심술이 난 표정이다. 그 모습이 보기 싫어 서둘러 차에 올라탔다. 제가 가지고 온 색종이를 둘째가 만지려고 하자 왜 만지냐며 쏘아붙인다. 짜증스러운 마음에 아이들이 언성을 높이기 시작하니 결국 터지고 말았다. 지금 제일 화나는 사람이 누군데!
“엄마한테 미안해 하기는커녕 왜 화를 내는 거야! 도대체 뭐가 불만이어서 그렇게 짜증이야. 엄마가 너희한테 못해준 게 뭐가 있어. 응! 작은 일에 싸우고 불평불만하고! 네가 오겠다고 했잖아. 발레복이 없어도 오늘 여기까지 왔으니까 하고 가면 엄마가 사준다고 했잖아. 엄마가 몇 번이나 이야기를 했는데 왜 그렇게 짜증을 내고 그래!”
아이가 미안할 건 뭐고, 저라고 기분이 나쁘지 않을 이유야 없지. 사람 마음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바뀌는 게 사람 마음인데 이게 아홉 살짜리 아이한테 할 말인가 싶으면서도 터진 소화전처럼 말이 멈추지가 않는다. 부모가 자녀를 보살피 당연한 내 일을 했을 뿐인데 나야말로 뭐가 불만인 걸까. 첫째는 나에게 혼이 날 때면 입을 꾹 닫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말끝마다 말대꾸를 하면 받아주지도 못할 거면서 저렇게 제 생각을 이야기 못하고 엄마가 말을 하는 대로 속에 꾸역꾸역 쑤셔 넣는 아이를 보자니 더 화가 나는 이상한 심리다.
"이야기해봐. 네가 생각하는 게 있으면 ‘엄마, 이래서 오늘은 못하겠어요. 엄마가 이런 부분을 도와주면 좋겠어요.’라고 서로 대화를 해야지. 갑자기 그렇게 안 한다고 떼만 쓰면 어떻게 하자는 거야. “
언성이 높아진다. 아이의 마음의 마음을 읽고 있으면서도 오늘따라 왜 이리 스탑 버튼이 눌러지지 않는 거지. 자꾸 커지는 내 목소리가 차창 밖으로 터져 나가는지 멈춘 차 앞에 서 계시던 할머니가 고개를 돌리고 있다.
일단 뭐라도 먹어야겠다. 날도 더운데 속이 비면 화가 더 많이 나니까.
이대로 두었다간 내가 차 밖으로 튕겨나갈 것 같다. 맛있는 걸 먹으면 나도 마음이 좀 풀리고 아이와 대화를 할 수 있겠지. 저녁에 나갈 약속도 있어서 밥 준비할 시간도 부족하고, 집 안에 들어가면 아이에게 더 크게 화를 낼까 봐 아슬아슬하다. 아이를 데리고 아라동의 유명 돈가스집으로 차를 몰았다. 그러나, 몇 번을 잡아끌어도 아이는 눈물을 글썽이며 내리지 않았다.
“그래! 알겠다 알겠어. 진짜 안 되겠다. 엄마가 너무너무 속이 상하다. 집에 가서 맴매 좀 맞아야겠다. 어떻게 이렇게 말을 안 듣니. 너희들 정말 너무 한 거 아니야!”
쌓았던 화가 결국 터졌다.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이 갈 줄 알면서도 멈추기가 힘들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향했다. 아이들과 고군분투하는 일상에 지칠 대로 지쳤다. 이 정도로 화가 날 일이 아닌데 싶으면서도 오늘은 가슴이 터져버릴 것만 같다. 이러다 나가 정말 아이들에게 매질이라도 하지는 않을까 내 자신이 조마조마했다. 어떤 고약한 괴물이 마음에 살고 있는 걸까.
집에 오니 물병 정리를 하려고 주방 앞을 서성이는 첫째가 보인다. 어느새 목소리가 한 톤 낮아졌다. 설거지통에 세제를 풀어 물병을 씻는 법을 알려주는 내 목소리가 어느새 차분해졌다. 당장 매질이라도 할 것처럼 집에 왔는데 그새 좀 가라앉았던 걸까. 아까 같은 마음엔 크게 실수라도 할까 봐 내가 조마조마할 지경이었는데.
올라오는 계단에 누군가 두고 간 귤 봉지가 보였다. 과일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아이들이다. 귀한 여름 귤을 아이들에게 줄 생각을 하니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귤을 하나 깠다. 그리고 아이에게 입을 크게 벌리라고 한 뒤 쏙 들어갈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입에 던져 주었다.
“이거. 귤 맴매야. 엄마가 너무너무 속상했어.”
귤 맴매라는 말에 아이들의 웃음보따리가 터졌다. 별로 웃긴 말도 아닌데 아이들 얼굴에 긴장기가 사라지고 깔깔 웃음이 터졌다. 이 정도로 웃고 넘어가도 될 별일 아닌 일에 왜 그리 악을 쓰려고 했던 걸까.
그날 밤. 나는 아이에게 성을 냈던 일이 마음에 걸려 새벽 2시가 넘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손에 잡히지 않는 일들을 끄적여도 낮의 일에 자꾸만 생각이 머물렀다. 아이의 투정보다 내 화가 더 커진 괴로운 날의 밤이었다. 이 날의 귤 맴매는 몹시 아팠다. 때린 내가 더 아파 다시는 쓰고 싶지 않은 맴매였다.
다음날 아침, 아이는 학교 가는 차 안에서 발레복을 사서 발레에 가고 싶다고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먼저 이야기를 꺼내 준 아이가 고마웠다. 알겠다고 답하곤 이어 진심으로 사과했다. 엄마도 시간이 있으면 하고 싶은 일이 있노라고. 어제 속상했던 네 마음은 이해하지만 엄마도 당황스럽고 힘이 들었다는 말도 전했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 못지않게 네가 하고 싶은 걸 돕는 것도 엄마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 좋은 마음으로 기다려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엄마가 화를 내고 실수했던 점을 용서해줄 수 있느냐는 말에 아이는 언제나 그랬듯 웃음으로 답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