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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비 Jul 08. 2022

#3 어머니라니

20대에 얻은 어머니라는 호칭이 아직 낯설다.

  아이와 소아과에 갔다가 근처 돈가스 집에 들렀다. 새로 생긴 돈가스 집 앞에는 잘 가꾸어진 화분이 차례로 놓여 있었다. 안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하얀 톤의 배경에 주황, 노랑 등 감각적 색상의 쿠션이 눈에 띄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식탁 외에도 작은 소파 두 개를 마주한 자리가 있었다. 불편할 것 같기도 한 자리였지만 색다른 자리를 즐겨보자며 자리에 읹았다.


  아이와 주문을 하고, 숟가락과 젓가락을 꺼내 기분 좋게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곧이어 나온 돈가스와 밥, 장국, 말린 단무지와 작은 고추 절임. 더운 여름 몸에 기운을 주는 적당한 염기의 장국이 입맛을 당겼다. 추가로 국을 주문했다.


  서빙을 하던 청년은 따뜻한 국을 가져다주며 말했다.


  “더 필요한 거 있으시면 말씀하세요, 어머니.”


  다른 말은 안 들리고 내 귀엔 어머니라는 명확하게 말만 들렸다. 아이들에게 음식을 덜어주고 식사를 하면서도 귓가에 '어머니'라는 단어가 자꾸 맴돌았다. 아이를 낳고 처음 들은 말도 아니건만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 거지. 아이 둘을 키우고 있으니 어머니가 맞잖아.


  

  청년은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에서 그리 불렀을 것이다. 그 말을 떠올리며 나는 어머니의 역할을 하기 위해 자세를 다잡곤 했다. 떨어진 포크 하나를 새 걸로 바꾸어 달라고 하는 것도, 소스를 더 달라고 할 때도 말이다.


  첫째의 나이가 벌써 아홉 살이니 호칭이 익숙할 때도 되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낯설다. 서른다섯. 내 나이를 핑계 삼기도 애꿎다. 아이를 처음 가졌을 때, 낳고 내 배 위에 올려졌을 때 느꼈던 엄마라는 이름의 막중한 책임감이 다시 생각났다. 이제는 '어머니'라는 호칭에 걸맞는 사람이 되었을까. 






  나오기 전 큰 알갱이의 하얀 가루가 무엇인지 물었다. 소금이라고 했다. 그걸 들은 둘째는 종이컵에 옮겨 담으며 가지고 놀다 결국 바닥에 다 쏟고 말았다. 나는 ‘어머니’처럼 아이에게 호통도 치지 않고 조용히 쓸어 담았다. 











(어머니라는 이름에는 힘이 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어머니라고 불리고 싶진 않은가보다. 집단적 정체성보다는 그저 지금 내 상황에 맞는 ‘손님’ 정도의 호칭으로 나를 줄러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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