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태풍 힌남노가 오고 있다.
태풍 소식으로 마음이 요란하다. 본격적인 비바람이 오기도 전에 계속 들어온 일기예보 때문에 더 긴장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긴장 상태가 지속되는 것 같아 약간 피곤하기까지 하다.
제주도 우리 집은 다행히 지대가 높다. 평소에도 시내 중심가보다 온도가 2-3도 정도 낮은 동네이다. 제주에서는 산에 가까워 지대가 높은 곳을 중산간이라고 지칭한다. 여기에 사는 우리는 아마 비 때문에 잠기는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도 태풍 피해를 입은 적이 있다. 몇 해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을 태풍이 왔더랬다. 평소와 같이 비가 많이 오고 바람이 많은 태풍이었다. 다행히 아기돼지 삼 형제 중 막내 돼지가 지은 집처럼 벽돌로 단단하게 갓 지은 집이라 걱정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간 이식 수술을 위해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살던 집,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남기고 간 집이었다. 태풍이 불어 닥치고 우리 집에는 빗물이 넘치는지 눈물이 넘치는지 모르게 비가 쏟아졌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우리 집 현관까지 물이 차 있었다.
앞 집에 사는 친정어머니와 허둥지둥 물을 퍼냈다. 어머니는 빗물을 퍼내는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퍼내는지, 바가지에 물을 끓어 담으며 계속 아버지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가 있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자신이 칠칠 맞고 정신이 없어서 빗물이 배수되지 않은 것도 몰랐다고 했다. 어머니만 몰랐던 게 아니라 함께 살던 남동생도, 앞집 사는 딸과 사위도 몰랐는데 그녀에게는 없는 남편의 빈자리만 크게 느껴졌나 보다.
제주에는 해마다 태풍이 온다. 태풍이 올 때면 물건 창고에 가서 배수로를 파내고, 천막이 날아갈까 봐 끈을 단단히 동여매던 아버지 모습이 떠오른다. 어두울 때 따라가 플래시를 비추거나 빗방울을 가려 드리려고 우산을 들고 곁에 서 있기도 했다. 대충 해도 될 것 같은데 뭘 그리 꼼꼼하게 돌아보고 돌아보는지. 이해가 안 되던 아버지의 야무진 태풍 채비는 그가 먼 길을 떠나자마자 빈자리를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