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무언가가 있나요?"
내년이면 대학원 졸업이다. 작년 첫 해는 어리바리 적응하느라 한 해를 보냈고, 올해는 상담 실습을 하며 인턴 생활을 하며 허덕이며 보냈다. 두 아이를 키우며 하는 학업이라 끝맺음을 염두에 두지 못하고 과정에만 몰두했다. 어느덧 시간은 한 번도 멈추지 않고 흘러 졸업이 눈앞이다.
졸업을 앞두고 미래를 그려보다 자격증 준비를 하기로 했다. 원래 1개의 자격증만 취득하려고 했는데 과목이 비슷비슷하다는 말에 2개의 자격증을 더 염두에 두고 계획을 세웠다. ’할 수 있을까.‘ 합격률이 50% 전후를 왔다 갔다 하고 대략 6-10개월의 준비기간을 거친다는데, 아마 육아와 학업을 병행하는 데다 시험을 위한 공부는 오랜만이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과물이 보이는 목표를 삼자 일시적으로 행복 호르몬이 흐르는 것 같았다. 육아를 하는 지난 10년 동안 결과물이 보이지 않는 가사와 육아 노동을 반복하며 지친 나에게 신선한 도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과정을 모호하게 그리는 동안 자꾸만 아랫배 아팠다.
이 아픔은 뭘까. 두뇌 회전이 빨라지고 일을 성공시키기 위한 정보를 하나둘 모으는 동안 기대와 설레감 끝에 배꼽 아래로 조여 오는 아릿한 통증. 새로운 일을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일까. 가슴을 콩닥 이게 하는 긴장감일까. 아랫배 밑이 묵직해오는 이 느낌은…
불안이구나…!
육아를 하며 공부를 하는 환경이, 투자한 시간에 아깝지 않게 결과를 내야 하는 상황이. 하고 싶은 일 하며 살겠다더니 해야 하는 일에 끌려 굴복하는 건 아닐까. 새롭게 살겠다며 정한 기준이 흔들리는 것만 같았다.
고등학교 때, 그 해 처음 설립하고 100명이 입학한 학교에서 10명이 자퇴를 했다. 90명이서 내신을 내니 전교 1등도 1%가 아닌 상황에서 분리된 공간 없이 기숙사 생활을 하던 시절. 체력이 부족한 나는 친구들이 밤을 새우고 공부하는 틈에도 잠을 자야 한다며 불을 꺼야 했고, 누워 잠을 자면서도 불안감에 시달렸다. 잦은 화장실 출입은 불안이 신체적 증상으로 나타난 거였다. 마음을 물어줄 사람도, 내 몸의 상태를 확인해 줄 사람도 없이 온몸으로 불안이 찾아왔다. 수능 시험을 보던 날, 화장실에 몇 번씩 가고 싶으면 어떡할지 수없이 시뮬레이션을 그려야 했다.
학업에 대한 불안은 더 어릴 때부터 있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숙제를 다하지 못하면 몹시 짜증을 내면서 밤이 늦도록 그걸 붙들고 있었다. 때론 아침 일찍 일어나 눈도 뜨지 못한 채 심통 난 얼굴로 연필을 잡곤 했다.
아직 다가오지 않은 내년의 하루 일상을 떠올리다 다시 아랫배가 아파왔다. 동료에게 기출문제집을 묻고, 강의를 찾아보는 건 불안하기 때문이었다. 누군가 잡아당기면 아득한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 같은 불안함. 어디서부터 온 거더라. 어린 시절 한 장면이 떠올랐다. 동생을 훈육하던 어머니, 뭔가 훔쳤던 모양이다. 어머니는 도마를 가지고 와서 손가락을 자른다고 겁을 주고 있었다. 그리고 떠올랐던 말 '공부를 안 하면 너는 알아서 살고, 엄마 아빠는 등록금으로 여행이나 가지.'
어머니가 자녀를 양육했던 방법은 '위협'이었다. 실패하면, 노력해도 성취하지 못하면, 넘어지면 아무도 나를 잡아줄 사람이 없을 것 같은 느낌. 힘들어도 혼자서 어떻게든 매달려야 한다는 생각.
불안함에 떨고 있는 그때의 작고 여렸던 나에게 다가가 말해주고 싶다.
'실수해도 괜찮아. 네가 잘하지 못해도 내가 몇 번이고 기회를 줄 거야. 잘하지 못하면 어때. 해내지 못하면 어때. 못한다고 해서 멀리 떨어뜨려 놓지도 않을 거고, 영영 실패자가 되는 것도 아니야. 언제까지나 몇 번이고, 네가 잘할 수 있을 때까지 내가 도와줄 거야. 걱정하지 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