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아니지만 대학 땐 꽤 얼리어답터였나 보다. 대학에 입학하던 스무 살, 봄바람에 떨어지던 벚꽃의 분홍 비가 눈에 선하다. 동아리에서 MBTI 성격유형 검사가 한참 유행이었다. 새로 들어온 신입생들을 성격 유형에 따라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아보고, 네가 이래서 이렇구나 하는 이해도 해볼 수 있었다. 선배들의 권유에 학교 상담실을 찾아가서 나도 해보았다.
결과는 ISFJ였다. ISFJ의 별명은 전통적 현모양처 유형. 선배들과 동기들은 나에게 딱 어울리는 성격유형이라고 했다. 겉으로 보기에 조용하고, 규칙도 잘 따르고, 자기 할 일도 야무지게 하는 것 같은 나에게 딱 맞는 성격 유형이라는 거다.
전통적 현모양처로 규정해 놓은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나는 어딘가 모르게 제 멋대로인 모습이 종종 보였다. 동아리 요리 대회를 하던 날이었다. 조별로 나눠서 요리 메뉴도 정하고, 요리도 하는데 나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있었다. 할 줄 아는 요리가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ISFJ, 즉 ‘전통적 현모양처’라는 기대는 그때부터 약간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그 유형은 집에 있기 좋아하는 유형이라는데 나는 틈만 나면 집 밖으로 돌아다녔다.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나의 호기심에 못 이겨 나가 다녔다. 국내는 너무 좁아서 교환학생, 어학연수, 선교 여행 등의 기회를 틈타 해외로 마구 다녔다. 대학교 1학년 때 사귄 친구들과 오래 우정을 같이 했지만 학교 생활을 거의 같이 하지 못했다. 친구들은 나에게 ‘역마살’이 끼었다고 했다. 어쩌면 나, 역마살이 낀 ISFJ였던 걸까.
헌신적이고 책임감 있으며 완벽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구멍이 많았다. 친한 친구는 나에게 급기야 ‘너는 참 완벽해 보이는데, 실은 빈틈이 많다’라고 했다. 그 말이 기분 나쁘지 않았다. 그 빈틈 사이로 그제야 숨을 쉴 수 있게 된 느낌이랄까. 나의 빈틈을 싫어하지 않고, 바꾸려고 하지 않고, 바라봐준 친구에게 고마웠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다. 또래에 비해 조금 일찍 결혼을 한 나는 육아로 여념이 없었다. 밖으로 돌아다니던 패기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상실한 채 의미는 있지만 나는 없는 일상을 보냈다. 아이는 분명 소중하고 예쁜데 왜 나는 소중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나와 연결을 하지 못하고 역할만 남은 것 같은 일상을 보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뭐였는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혼란스러웠다. 우연히 MBTI 강사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ISFJ라는 것을 뻔히 알고 있는데. 그래도 10년 만에 해보는 검사로 옛날 추억이 떠올라 설레는 마음으로 참여했다. 다시 한 검사에서 나의 결과는 INFP였다. 으잉?
INFP유형은 잔다르크였다. 전통적 현모양처가 잔다르크가 되어있었다. 10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MBTI 검사 결과가 바뀌어있었다. 성격 유형이 바뀐 것이다. 당시 상태에 따라 결과가 조금씩 바뀌어서 나올 수는 있다고 했다. 그렇다 해도 내가 바뀐 두 성격의 유형은 정 반대에서 만나는 성격이라 이렇게 바뀌어 나오는 결과는 드물다고 했다. 대학 때 만난 몇 명의 INFP가 떠올랐다. 나와는 좀 다른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강사님은 아마 기존에 있었던 성격을 학창 시절에는 학교에 적응하느라 바꿔서 살았을 거라고 했다. 어렸던 그때 모범적인 아이가 되기 위해 애썼던 내가 있었구나.
INFP로 살아가는 지금, 나는 ISFJ가 보기에 빈틈 있는(많은) 내가 꽤 마음에 든다. 세세한 계획보다 뜬 구름 같은 꿈을 꾸는 나도, 계획보다 느낌대로 움직이는 나도 말이다. 앞으로 또 10년이 지나면 MBTI가 또 한 번 변해있으려나. 그래도 빈틈은 꽉 채워지진 않을 것 같다. 그런 나도 그런대로 사랑해 주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