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이를 낳으면 안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내겐 그런 깜냥이 없다는 것을
매일매일이 전쟁이라는 말을 한다. 육아란 실로 그러하다. 조금 물러서서 보면 행복해 보이지만 그 안에 있는 사람은 여러모로 고통 속에서 싸운다. 마흔이라는 나이에 고작 여섯해를 살아온 아이와 싸우고 그런 아이와 싸우는 내가 한심해서 나 자신과도 싸운다. 그것도 매일매일 싸운다. 오늘을 후회하면서도 내일이 되면 또 싸우고 있다.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방송인 김나영씨는 육아를 하며 매일매일 자신이 별로인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한다고 했는데 그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매일매일 형편없는 나 자신과 마주하는 느낌, 보고 싶지 않아도 그 자리에 끌려와 보아야만 하는 것이 육아의 현실이다. 힘들다고, 내가 산산이 부서져 사라져버리는 것만 같다는 말을 할 때마다 남편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짓기도 했고 때때로 위로하기도 했고 자주 답답해하기도 했다.
순전히 나의 의지로 태어나게 한 이 아이를 나는 감당해낼 힘도, 자신도 없으면서 그렇게나 아이를 원했던 그 시간의 나마저 원망하게 만든다. 그러나 너무 늦게 알았다. 나는 아이를 키울만한 깜냥이 안된다는 걸 말이다. 이렇게도 마음이 찢기고 상하고 체력은 너덜너덜해 지는 것이 육아라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난 어떤 선택을 했을까.
간혹 육아가 수월했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는데 그들에게는 어떤 마음이 있을까. 어떤 생각으로 육아에 임하기에 수월했다고 말하는건지 사무치게 궁금했다. 단 한 번도 내겐 육아가 수월했던 시간이 없었다. 첫 출산에 쌍둥이였기에 더 했겠지만 그걸로 모든 것이 설명되어 지는 것은 아니다. 분명 같은 상황 속에서도 빛을 발견해 내는 사람들은 있게 마련이니까.
왜 엄마들은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울게 될까
왜 엄마들은 아이들의 지나간 사진을 보면서 울게 될까(아빠들도 울까?)
그땐 분명 최선을 다하고 있었을테지만 돌아보면 그게 아니었던 것 같아서 미안함이 커지는 것일테지.
최선을 다한다는 말은 어떤 의미에서는 참 멋진 말인데 육아에서만큼은 최선을 다한다는 말이 끝내 통하지 않는 것 같다.
어떻게 해도, 무엇을 해도 최선, 그 최선이란 무엇인지 결국 아무도 모르는 것일수도 있다.
이 글을 쓰고 다짐하면서도 내일이 되면 또 아이들과 싸우고 혼자 울고 있을테지. 그러다가 어느 순간 아이가 크고 방문을 걸어 잠근채 나오지 않는 날이 오게 되면 지금의 시간들을 또 그리워 할테지. 그때 후회하지 않으려면 지금 더 많이 사랑하고 안아주어야 한다는 걸 너무 잘 알지만 내일이 되면 또 싸우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