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지 않는 아이들, 그리고 잠들지 않는 남편.
뭘 그렇게 쓰고 싶어서 안달이 났었던걸까.
그렇게도 귀한 아이들인데 매일매일 아이들이 잠들기만 기다리고 남편이 먼저 잠들기를 기다리고 그렇게 고대하던 나만의 시간이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던가.
뭐 대단한 작품을 써보겠다고..
결국 이렇게 몇 줄 쓰지도 못하고 시간을 버릴 것을 왜 그렇게 아이들을 들들 볶고 못살게 굴었나 나 자신이 한심하고 또 초라해지는 날.
바람이 적당해도 햇살이 따사로와도 그 어떤 것들이 다 적절하게 조화로와도 소용없다.
내가 내 아이에게조차 친절을 베풀지 못하면 그 어떤 것들도 소용없는 것이 되고 만다.
뒤 돌아서면, 당장 그 자리를 벗어나기만 하면 분명히 알게 되는 이 사실이 그 자리에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만다. 나를 또 저 밑바닥까지 끌고 가서 못볼꼴까지 다 보고 나서야 내 마음은 파도치기를 멈춘다. 그래서 독박육아가 힘든 것이다. 독박육아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 남편에게 이런 말은 할 수 없다. 어차피 내 아이 아닌가?그런데 왜 내 혼자 키운다고 독박이라고 하는거지?라고 말하는 남편에게는 나의 그 어떤 말도 내 분노를 합리화하기 위한 궤변으로 밖에 들리지 않을 것 같아 시작도 하지 않고 접고 만다. 나의 변은 내 상황을 해결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지금 나를 좀 봐달라고. 내가 이렇게나 힘이 드는 걸 ‘네가’ 알아달라고 말하는 것인데 끝끝내 그것을 알지 못하고 나를 돌아선다. 아니 알고도 돌아서 버리는 것일까.
꽃잎이 흐드러지게 날리는 날에도 한바탕 비가 쏟아지는 날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써야만 한다는 것.누구도 내게 쓰라고 강요하지 않았지만 아무것도 써내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며 구덩이 속으로 몸을 숨기는 요즘.
때때로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아이들보다 내가 더 소중해서. 아이들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사실이 나를 나쁜 엄마로 몰고 가기도 했다.
회사를 다닐 땐 내가 인내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적어도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그 말은 유효했다. 남에게 싫은 소리도 잘 못하고 웬만하면 두루두루 모두와 잘 지내고 싶었고 못되게 구는 상사가 있어도 꾹 참고 웃었다. 그 자리를 벗어나면 그만이었다. 허나 육아는 달랐다. 나는 언제까지나 엄마였다. 도망칠 곳도 없고 나를 대신해 줄 사람도 없는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엄마였다. 마음이 저만치 도망가면 아이들이 나를 다시 제자리로 붙잡아 오기가 일쑤였다.
언제나 육아는 지금이 제일 힘들었다. 지나보면 그 때 그 길이 꽃길이었고, 언제나 지금이 제일 힘든 것만 같은 고통의 시간인 것이다. 왜 그때의 예쁨은 그때 보이지 않았을까. 왜 지나야만 그 예쁨이 보이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