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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일상 Apr 17. 2023

무한한 지지를 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는 말.

 

  자신의 뜻과 신념을 잊지 않고, 또 잃지 않고 흔들림 없이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것은 비단 삶을 대하는 자세에서뿐만 아니라 아이를 양육하는 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여기저기서 하는 얘기들에 휘둘리지 않고 아이를 옳은 방향으로 잘 걸어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자주 느낀다. 내년이면 시작될 학교교육과 사교육의 열풍에서 나는 아이들을 얼마나 잘 키워갈 수 있을까? 누구는 영어학원에 다니고 누구는 공부방에 다닌다는데 우리 아이들은 개의치 않고 여전히 밖에서 뛰어 논다. 그래서 때때로 불안해지기도 하고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하지만 교육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을 단단하고 바르게 키우는 것이겠지.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지금보다 더 단단하고 때로는 유연한 엄마가 되어주어야지 하는 생각도 했다. 


힘든 일 앞에서 주저 앉아 울고 싶을 때, 그저 기대어 펑펑 울고 싶을 때 울 언덕이 되어 주는 엄마. 엄마 앞에 오면 괜찮지 않았던 일도 괜찮아지는 일이 되는 그런 엄마가 되고 싶었다. 생각해보면 나의 부모는 그런 언덕이 되어 주지 못했다. 삼남매의 장녀이기도 했고 내게 무슨 일이 있다는 상황 자체가 무슨 일이 되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만큼 나의 삶은, 우리 가족의 삶은 힘겨웠다. 


내 생채기의 근원은 돌아보면 대부분 부모로부터 온 것이었다. 

중학교 2학년 시절, 내 부모의 채권자들은 학교 수업시간을 무참히 짖밟았다. 수업중이던 교실 문을 열고 반 마다 돌아다니며 나를 찾아댔다. 결국 내가 있던 교실까지 그들은 들이닥쳤고 선생님의 만류로 상황은 종료되었지만 그 불씨는 하교길까지 꺼지지 않았다. 나를 쫓아오며 우리 부모님의 행방을 물었고 그로부터 얼마 뒤 시작된 여름방학을 기점으로 다시는 학교에 갈 수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그때 우리 부모의 나이가 되고 아이를 양육해가다 보니 멈칫하는 지점들이 생긴다. 그때 나의 부모는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을까. 더 좋은 길은 없었을까 하는 생각들은 내 생 전반을 따라다녔다. 


아이들에게 사랑을 많이 주어야지 생각하면서도 어느샌가 잔소리만 하고 있는 나를 볼 때마다 불안해지기도한다. 혹시 내가 받아보지 못해서 주지 못하는 건 아닐까, 내가 그런 사랑을 받아보지 못해서 아이에게 주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내가 느껴보지 못한 무한한 지지를 아이에게 과연 전해줄 수 있을까. 

아이가 자라면서 나도 같이 자라가야겠지. 작고 여린 것들을 소중히 여길 줄 알고 때때로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당당하고 단단한 아이로, 나도 그런 엄마로 같이 자라가고 싶다. 


나무에 나이테가 있듯이 사람에게도 인생을 살다보면  보이지 않는 영혼의 나이테가 생긴다고 믿는다. 알 수 없는 생의 이야기들로 인해 저마다 다르게 새겨지는 인생의 나이테.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내 인생을 돌아보면 아주 멋진 나이테가 생겼으면 한다. 우리 아이들도 그렇게 멋지게 자라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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