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가장 빛날 시간을 기다리며
막연했던 경력 단절의 두려움은 내게 현실로 다가왔다. 결혼하면서 잘 다니고 있던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 원하지 않는 업무에 치이는 삶을 살 것인가, 사랑하는 남편을 따라갈 것인가 저울질한 결과였다. 군인 남편을 따라갈 곳이 듣도 보도 못한 어느 시골의 오래된 관사일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으니 이 저울질은 삽시간에 끝나버렸다. 남편에게 속아 결혼했다는 건 절대 아니다. 남편은 충분히 자신의 인생에 대해 내게 설명해주었다. 그러나 그 이야기가 미화될 만큼 그 당시 나는 지독하게 서울을, 그 직장을 벗어나고 싶었다.
퇴사하던 날의 통쾌함이란. 아침마다 지옥철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가벼운 음악과 함께 산책길에 오를 수 있다니. 그러나 자유로운 인생에 흡족했던 시간은 생각보다 길게 가지 못했다.
퇴사 3개월 차, 결혼 2개월 차, 극심한 우울감이 찾아왔다.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어김없이 찾아오는 아침이 야속하기만 했고, 가슴이 답답해 잠을 이룰 수 없는 밤이 늘어갔고, 창밖을 내다보며 이유 모를 눈물을 훔치는 새벽이 쌓여갔다. 그러던 중 남편이 먼저 내게 재취업을 제안했다. 그렇게 다시 시작한 재취업기. 규칙적으로 생활하며 자기소개란을 채워나가며 시간을 보냈다. 남편 역시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대망의 디데이 날, 나는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이런 시골에서 사는 걸 앞으로 몇십 년간 해야 한다니 벌써 지긋지긋해. 벌써 반년째 난 아무것도 이뤄낸 게 없어. 점점 사회에서 멀어지고 있어. 난 설거지하고 밥하러 당신을 따라온 게 아니란 말이야.’ 애꿎은 남편을 향해 원망의 화살을 쏘아붙인 날도 있었다. 그렇게 추락한 자존감 자리엔 형체 모를 압박과 두려움이 채워졌다.
한참을 방황하다 어느 날 시계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는데, 오후 4시를 가리키는 시곗바늘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주황 빛깔의 햇살을 집안에 기다랗게 들여놓았다. 보고 있으니 마음에 끼어 있던 성에가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당장 나의 시곗바늘이 그쪽의 것과 맞지 않을 뿐, 지지리도 못나서 이렇게 슬퍼해야 하는 건 아닐 거라는 생각과 함께.
아무것도 도전하지 않았던 퇴사 초창기가 마치 건전지 빠진 시계처럼 멈춰진 시간이었다면, 이리저리 흔들리고 고민하는 지금이야말로 내 인생의 시계태엽이 한참 감기고 있는 때가 아닐까 싶었다.
한 번 끊어진 사회인으로서의 끈을 다시 이으려면 이전보다 곱절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안다. 하지만 이렇게 나의 시계태엽을 감아 나가다 보면 내가 가장 빛날 시간에 오래 머물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그러니 지금의 좌충우돌을 너무 미워하지 말자.
여전히 나는, 앨리스가 떨어진 이상한 나라에서처럼,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굴 속을 지나오고 있다. 하지만 기억하자. 터널을 지나오는 길이 어두울 뿐이지, 터널 그 자체는 그리 길지 않다는 걸. 지금이 아니라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