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지 않게 기억에서 멀어질 것
나는 편지 쓰기를 좋아했다. 방학 숙제인 일기는 곧 죽어도 못 쓰겠다던 아이였지만, 편지는 틈 나는 대로 썼다. 일기 쓰고 있는 줄 알았는데 또 편지냐는 엄마의 핀잔을 들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편지를 일기 쓰기와 맞바꾸다시피 하며 써 보낸 어린 시절 덕에, 나의 오래된 책상 서랍 속에는 받은 편지들이 수북하다. 오랜만에 꺼내 읽어 보다 20년도 더 된 이름에 시선이 한참 머물렀다. 단편적이지만 너무나 생생하게, 그들과 함께였던 어느 하루가 그려지는 이름들이었다.
[2000. 12. 20. 수 소영이가] 기억력이 그다지 좋지 않아 유치원 때를 생략한다면, 내가 처음으로 사귄 친구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초등학교 입학식 때 같은 줄에 서 있었는데 마침 옆 동에 살고 있어 등하굣길을 함께하며 친구가 되었다. 우리는 2년을 꼬박 붙어 다녔다. 그리고 열 살 되는 새해를 열 밤 남겨둔 어느 날, 소영이는 먼 곳으로 이사를 갔다. 아직도 단발머리에 머리띠 하는 걸 좋아하는지 궁금하다. 그때 소영이는 색깔별로 머리띠를 가지고 있었는데. 어디에서 무얼 하며 살고 있을까.
[보내는 사람 :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 oo아파트 11동 302호 김혜주] 11살이 되던 해, 혜주는 이사 간다는 말도 없이 하루아침에 떠났다. 두 달쯤 지난 어느 4월, 우리 집 우편함에 혜주로부터 온 편지 봉투 하나가 꽂혀 있었다. 집에 도착하기 전까지 그 편지를 많이 읽고 싶어 일부러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았다. 5층이었던 우리 집 앞까지 계단을 오르며 몇 번이고 읽었는데, 눈물 나도록 기뻤다. 가슴 벅찬 느낌을 처음 알게 해 준 친구였다. 그리고 그땐 몰랐는데 지금 보니, 은마 아파트 근처로 이사 갔었나 보다. 혜주는 차분하고 성실한 친구였으니 아마 뭐든 잘 해냈을 거다.
내가 그랬듯, 편지에 적힌 나의 이름 세 글자를 보고 그 시절의 나를 떠올려 주는 사람이 있을까? 왠지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이셨던 김미경 선생님은 한 번쯤 그러셨을지도 모르겠다. 말수 적은 11살의 나를 엄마처럼 챙겨주셨던, 따스하고 섬세한 분이셨으니까. 선생님 말고도 편지를 보고 어떤 하루가 떠오를 법한 사람이 더 생각나면 좋겠다.
앞으로 20년 뒤인 2042년의 나는 또 누구의 이름을 소영이와 혜주처럼 그리고 있을까. 이렇게나 선명한 오늘이 내년이면 가물가물해질 텐데, 무언가를 그리워한다는 건 조금 무서운 일 같기도 하다. 누군가에게서 희미해진다는 것 역시 조금 싫은 일이다. 하지만 기억 속에서 멀어지는 걸 막아설 방법은 없는 듯하다. 매 순간이 보물 같고 기적 같았던 우리 아이와의 나날조차 점점 끄집어내기 어려운 어느 하루쯤에 묻혀가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그럼에도, 다시 오지 않을 순간순간을 그저 아쉬움과 그리움이라는 말에 묶어 흘려보내고 싶지 않다.
9살의 소영이가 적어준 편지의 한 구절을 다시 한번 눈으로 쓸어 본다.
[아쉬워하지 말고, 네가 나랑 놀았던 일을 생각하면 나를 잊어버리지 않을 거야.]
멀어지는 게 아쉬워질 이름을 가진 모든 이들과 최선을 다해 놀아야겠다. 그리고 가끔은 최대한 구체적으로 우리가 어떤 곳에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냈는지, 그때 당신의 얼굴은 어떠하게 보였는지 말해줘야겠다. 또 가끔은 그걸 편지로 써서 보내야겠다. 사라질 듯 사라지지 않는, 따뜻하면서도 서늘한 그 이름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