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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웜띵 Oct 26. 2022

이름에게

슬프지 않게 기억에서 멀어질 것

  나는 편지 쓰기를 좋아했다. 방학 숙제인 일기는 곧 죽어도 못 쓰겠다던 아이였지만, 편지는 틈 나는 대로 썼다. 일기 쓰고 있는 줄 알았는데 또 편지냐는 엄마의 핀잔을 들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편지를 일기 쓰기와 맞바꾸다시피 하며 써 보낸 어린 시절 덕에, 나의 오래된 책상 서랍 속에는 받은 편지들이 수북하다. 오랜만에 꺼내 읽어 보다 20년도 더 된 이름에 시선이 한참 머물렀다. 단편적이지만 너무나 생생하게, 그들과 함께였던 어느 하루가 그려지는 이름들이었다.




  [2000. 12. 20. 수 소영이가] 기억력이 그다지 좋지 않아 유치원 때를 생략한다면, 내가 처음으로 사귄 친구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초등학교 입학식 때 같은 줄에 서 있었는데 마침 옆 동에 살고 있어 등하굣길을 함께하며 친구가 되었다. 우리는 2년을 꼬박 붙어 다녔다. 그리고 열 살 되는 새해를 열 밤 남겨둔 어느 날, 소영이는 먼 곳으로 이사를 갔다. 아직도 단발머리에 머리띠 하는 걸 좋아하는지 궁금하다. 그때 소영이는 색깔별로 머리띠를 가지고 있었는데. 어디에서 무얼 하며 살고 있을까.


  [보내는 사람 :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 oo아파트 11동 302호 김혜주] 11살이 되던 해, 혜주는 이사 간다는 말도 없이 하루아침에 떠났다. 두 달쯤 지난 어느 4월, 우리 집 우편함에 혜주로부터 온 편지 봉투 하나가 꽂혀 있었다. 집에 도착하기 전까지 그 편지를 많이 읽고 싶어 일부러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았다. 5층이었던 우리 집 앞까지 계단을 오르며 몇 번이고 읽었는데, 눈물 나도록 기뻤다. 가슴 벅찬 느낌을 처음 알게 해 준 친구였다. 그리고 그땐 몰랐는데 지금 보니, 은마 아파트 근처로 이사 갔었나 보다. 혜주는 차분하고 성실한 친구였으니 아마 뭐든 잘 해냈을 거다.




  내가 그랬듯, 편지에 적힌 나의 이름  글자를 보고  시절의 나를 떠올려 주는 사람이 있을까? 왠지 초등학교 4학년  담임이셨던 김미경 선생님은  번쯤 그러셨을지도 모르겠다. 말수 적은 11살의 나를 엄마처럼 챙겨주셨던, 따스하고 섬세한 분이셨으니까. 선생님 말고도 편지를 보고 하루 오를 법한 사람이  생각나면 좋겠다.


  앞으로 20 뒤인 2042년의 나는  누구의 이름을 소영이와 혜주처럼 그리고 있을까. 이렇게나 선명한 오늘이 내년이면 가물가물해질 텐데, 무언가를 그리워한다는  조금 무서운  같기도 하다. 누군가에게서 희미해진다는  역시 조금 싫은 일이다. 하지만 기억 속에서 멀어지는  막아설 방법은 없는 듯하다.  순간이 보물 같고 기적 같았던 우리 아이와의 나날조차 점점 끄집어내기 어려운 어느 하루쯤에 묻혀가고 있는  보면 말이다. 그럼에도, 다시 오지 않을 순간순간을 그저 아쉬움과 그리움이라는 묶어 흘려보내고 싶지 않다.


  9살의 소영이가 적어준 편지의 한 구절을 다시 한번 눈으로 쓸어 본다.

[아쉬워하지 말고, 네가 나랑 놀았던 일을 생각하면 나를 잊어버리지 않을 거야.]


멀어지는 게 아쉬워질 이름을 가진 모든 이들과 최선을 다해 놀아야겠다. 그리고 가끔은 최대한 구체적으로 우리가 어떤 곳에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냈는지, 그때 당신의 얼굴은 어떠하게 보였는지 말해줘야겠다. 또 가끔은 그걸 편지로 써서 보내야겠다. 사라질 듯 사라지지 않는, 따뜻하면서도 서늘한 그 이름들에게.

당신과 나, 여기에 영구 동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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