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감각 찾기
내 휴대폰에는 이사철마다 사라졌다 등장하는 어플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오늘의 집’이다. 넉넉잡아 세 달 앞으로 다가온 이사를 준비하며 오늘의 집을 다운로드하였다. 역시나 이번에도 잊어버린 비밀번호 찾기부터 했다. 로그인에 성공해 이 집 저 집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다 노란 수선화를 꽂아둔 둥글고 하얀 꽃병이 눈에 들어왔다. 당장 이걸 사야겠다는 구매욕이 끓어올라 찾아보니, 사람들은 이걸 ‘달 항아리’라고 부르고 있었다. 도공예 분야에서 꾸준히 인기 있는 소재인 듯했다. 둥근 꽃병으로 시작한 검색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밤늦도록 나를 초록창 항아리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만들었다. 그날 밤 나는 달 항아리를 살 수 있었을까?
달 항아리는 본래 커다랗기 때문에 한 번에 물레로 만들기 어렵다고 한다. 위와 아래의 몸통을 따로 만들어 붙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가 사려던 달 항아리는 화병 크기로 아주 작은 편이다. 작업 과정을 줄일 수 있어서인지 가격도 꽤 합리적인 편이었다. 요즘 시세로 라테 세네 잔 마실 돈이면 살 수 있는 것들도 많이 보였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달 항아리가 하나같이 보름달처럼 둥글기만 했으면 그중에서 가장 저렴한 걸 사려했는데, 제각각 모양새가 달랐다. 어떤 건 구슬처럼 동그랬고, 또 어떤 건 볼링핀처럼 길쭉하게 둥근 모양이었다. 사진에서 본 그 달 항아리가 너무 갖고 싶기는 한데 뭘 고를지 몰라 잠든 남편을 굳이 깨우기까지 했다. 뭐가 더 낫겠느냐는 질문에 남편은 시큰둥한 표정만 지어 보이고 등을 돌렸다. 어떤 디자인이 우리 집 쓰임에 좋을지 뭐가 더 끌리는지 모르겠어, 결국 장바구니를 모두 비워버렸다. 그렇게 한밤중의 달 항아리 소동은 끝이 났다.
달 항아리 대신 마음속에 콕 찍힌 의뭉스러운 점 하나를 얻었다. 나는 달 항아리에 첫눈에 반했던 걸까, 아니면 사진으로 본 그 집이 좋아 보였던 걸까. 남의 것을 시새우는 태도를 지양하는 세상에서 조금 부끄러우나 고백하자면, 난 그 집이 좋아 보여 달 항아리를 찾아 헤맸던 것 같다. 우리 식탁에도 나의 서랍장 위에도 그 달 항아리를 두면 그 집처럼 근사한 느낌이 들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진에서 본 것과 똑같은 상품을 찾지 못했기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달 항아리를 찾아보다 끝내는 사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이사한 곳에서 지금보다 더 나은 집을 꾸리고 싶어 집 꾸미기 어플을 열듯, 종종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어 다른 이의 조언을 구하곤 한다. 인생 책이라 추천된 것들을 들춰보면서. 원하는 대로 사는 데 성공한 사례는 쉽게 접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걸 나의 이야기로 만들기란, 집 꾸미는 데서나 인생살이에서나 좀처럼 되질 않는다. 마치 인기 집들이 글을 작성하신 분은 달 항아리를 가지고 있지만, 나는 끝내 달 항아리를 사지 못했던 것처럼. 내게 어떤 화병이 잘 어울리고 어떤 그릇을 질리지 않고 아껴줄 수 있는지 알고 있었더라면, 지금 내 책상 위엔 꽃과 함께 달 항아리가 놓여 있지 않았을까.
어쩌면 가장 필요한 건, 본보기나 노하우를 찾는 일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자기 감각에 집중해 더 나은 선택지를 찾아 나서다 보면, 집도 인생도 마음에 꼭 드는 것들로 채워지고 있을 것이다. 일단, 달 항아리는 잠시 안녕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마침내 ‘나의 달 항아리’를 알아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