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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웜띵 Oct 22. 2022

당신과 나의 거리

멀어져도 마음은 늘 곁에

0km :

속 썩이는 자식에게 ‘너 같은 자식 낳아봐라.’라고 하는데, 우리 부모님께 나는 그런 딸이었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성질을 부렸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러지 않으면서 가족들에게 고약하게 굴곤 했다. 너무 편한 사이라서 그랬는지 도통 착해지려야 착해지지 못했다. 엄마 아빠라면 나의 모든 면을 사랑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부모님의 역할이라고 여겼다. 그런 나를 보며 엄마 아빠의 마음은 많이 버거우셨을까.


171km :

입학을 앞둔 2월의 어느 날, 엄마와 나는 하숙집을 구하러 서울길에 올랐다. 아침부터 방송 여기저기서 전국적으로 강추위가 예상된다고 했는데, 정말 너무 추웠다. 거기다 학교 근처에서 마음에 드는 집을 찾기는 무척 어려웠고, 왜인지 모르게 나는 뾰로통해졌다. 그렇게 내리막길을 걷다, 엄마는 추우니 카페에 들어가자 하셨고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주문하시고는 두 손에 얼굴을 묻으셨다. 좋은 집에서 시작하게 해주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시면서. 엄마가 눈물을 닦으시던 그때, 가장 괜찮게 보였던 하숙집의 주인 할아버지께 전화가 왔고 다행히 난 그 집에서 졸업할 때까지 살 수 있었다. 엄마한테 울려서 미안하다고 할 줄은 모르고 철없게도 이제 서울에서 학교 다닐 수 있는 거냐며 그저 신나 했다. 시간이 흐른 지금도 내게 가장 추운 곳은 지독한 한파에 엄마 손을 끝내 잡지 않고 앞만 보고 걸었던 그 길목이다. 그때 우리 엄마는 내 뒷모습을 보며 무슨 마음이었을까.


161km :

결혼을 하고 군인 남편을 따라 전라남도의 작은 마을로 가게 되었다. 남편이 교육을 받는 동안 엄마 아빠를 신혼집에 초대했다. 30년은 족히 넘은 듯했던 18평의 작은 관사였다. 부모님은 곰팡이 선 계단을 올라 집에 들어오시자마자, 둘이 살기 딱 좋아 보인다고 하셨다. 내가 보기엔 딱 좋아 보이기까지 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내가 차려낸 된장찌개를 남김없이 드시면서, 너무 맛있다고 잘했다고 하셨다. 내 입맛엔 맹탕이었는데. 딸이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이미 엄마는 싱크대 앞에서 분홍색 주방 장갑을 끼고 계셨다. 엄마 있을 땐 엄마가 해주는 거라면서. 자리를 정리하고 엄마 아빠와 나는 핑크뮬리 축제에 갔다. 엄마 아빠 사이에 서서 사진을 찍는데, 꼭 그냥 엄마 아빠의 딸이기만 했던 때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바람이 차니 나오지 말라는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기는 척 베란다 창문 너머로 손을 쭉 내밀어 흔들어 보였다. 그렇게 엄마 아빠를 배웅하고 창문을 달칵 닫으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211km :

강원도와 맞닿아 있는 경기도 끝 지역으로 이사를 갔다. 11월 초겨울에 나는 출산했다. 엄마께 전화드려 조리원 퇴소일에 맞춰 올라오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정말 엄마는 내가 집에 도착하기 전에 와계셨다. 이미 한차례 청소를 마치신 듯하셨다. 아빠는 금요일에 엄마를 데리러 오셔서 본가에 내려가셨다가 일요일 아침에 다시 엄마를 내가 있는 곳에 데려다주시고 바로 내려가셨다. 너무 어린 아기에게 혹여나 바이러스가 옮겨갈세라 들어오시지도 않으셨다. 아기의 시도 때도 없는 울음소리에 잔뜩 날 서 있던 나를 보며 엄마는 늘 조심스러운 낯빛을 하고 계셨다. 엄마도 출산한 딸을 보는 게 처음이었을 텐데, 너무 나의 처음만 생각했었던 건 아니었을까. 자그마치 3,165km를 오가셨던 아빠를 안아드리며 따스하게 배웅해드렸더라면 어땠을까.


255km :

친구들은 새로 이사한 집에 놀러 오면서, 지도상에서 우리 집이 북한 개성보다 위에 있다는 우스갯소리를 했다. 그렇다, 나는 또 부모님 댁에서 조금 더 멀어졌다. 딸의 집에 다섯 시간 걸려 도착하셨는데, 오시는 길이 나무도 많고 꽃도 피어 있어 좋으셨다고 하셨다. 짐을 푸시던 부모님은 서둘러 내게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오라셨다. 엄마 아빠 있을 때 쉬지 언제 쉬냐며. 그렇게 말씀하시던 뒷모습에 얼핏 시선이 닿았는데, 혼자 나가고 싶지 않아졌다. 다 같이 코스모스와 국화가 가득 핀 곳에서 아이를 중심에 두고 사진을 남겼다.

코스모스 꽃밭에서, 2022. 10.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 엄마 아빠를 보고 있으면 가끔 낯선 느낌이 들지만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내가 몰랐던, 어쩌면 내가 보려 하지 않았던, 표정을 짓고 계셨기 때문이다. 손자가 그렇게도 좋으시냐고 알면서도 자꾸 여쭤보게 된다. “좋지, 그럼!”

‘나도 엄마 아빠가 좋아요.’




  부모님이 계신 곳에서 내가 지내는 곳까지의 거리는 수백 킬로미터까지 멀어졌다.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엔 어쩌면 그 거리를 계산할 수 없어지는 날도 올 것이다. 부모님은 내가 어디에 있든 언제라도 달려와 주셨는데, 그때 나는 어떻게 부모님께 닿을 수 있을까. 아이를 키우면서 생긴 입버릇 중 하나가 있다. “천천히 자라주었으면.” 이 말이 오늘만은 부모님에게로 향한다. “천천히 늙어주셨으면.” 아니, “늙지 않아 주셨으면.” 그럼, 나는 너무 이기적인 딸이려나.


부모님 댁에 심겨진 천일홍 (꽃말:변하지 않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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