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7 - 나를 진단하다.
자, 그래서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문제인식은 지난 시간동안 글에 너무 많이 토해낸 것 같다. 삶에 대한 깊은 회의. 더 이상 나아지지 않을 것 같은 절망감과 두려움. 이런 감정이 내 삶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
목적도 명확하다. 나는 ‘확실하게’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는 열망. 그 열망을 실현시키는 ‘파괴적이어도 무조건 효과적인’ 방법을 찾는 것. 방향성과 추진력을 동시에 가지는 것.
이제 그럼 나를 파헤쳐야 할 시간이다. 보통 프로젝트에서도 이 부분이 가장 막막하고 힘든 부분이다. 무언가 잘못한 부분에 대해 계속 마주해야 하고, 또 일말의 가설이 모든 Data에 대한 왜곡을 일으킬 수도 있어서 이런 것도 조심 해야하기 때문이다. (또 너-무 조심스러우면 될 일도 안된다는 것에 맹점이 있다.)
나를 어떻게 파헤칠까? 나는 나 자체를 하나의 살아있는 Business라는 생각을 기반으로 분석하려고 한다. 회사 일도 아닌데 굳이 이렇게 하는 것은 이런 업무를 살아온 내가 할 줄 아는 것이 이것 뿐이라는 솔직하고 수동적인 이유도 있지만, 이 방법이 갖는 명확성과 용이함이 있기 때문이다. 나 자신을 MECE하게 바라보는 Framework. 맨날 회사 책상머리에서 고민하던 그 말이 나 자신에게 씌울 굴레가 될 거란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렇지만 아마 이 글을 읽어보며 자기 자신에 대한 답답함을 가지고 있는 누군가도 틀림없이 쉽게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Business를 분석하는 첫번째 방식은 Value Chain을 확인하는 것이다. 보통 에너지 산업에서는 원료 도입 – 정제 – 판매라는 아주 큰 틀의 Value Chain을 가지고 있고, 나는 비슷하게 Input – Process - Output이라는 틀로 나를 바라보려고 한다. (대체로 생산을 할 수 있는 대부분의 모든 것을 이 틀에서 분석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Input은 사람으로서 구동하기 위해 필요한 어떤 ‘원료’로 체력, 시간, 기회, 감정적인 에너지, 지식과 기술 같은 것이 해당한다.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료’라고 생각한다.
Process는 획득한 Input을 활용해 ‘일하는 영역’이다. 주로 일을 하거나 아이를 키우거나,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 방식이 이 부분에 들어간다. ‘내가 움직이는 방식’ 인 셈.
Output은 말 그대로 나의 ‘수확물’이다. 내가 Process를 통해 ‘만들어 낸 모든 결과’ (물리적이든 손에 잡히지 않는 감정이든)이며, 다시 Input을 마련할 모종의 원천이 된다.
그리고 이 모든 Step 내의 요소들을 외적 요소/내적 요소로 나누어서 분석하려고 한다. 외적 요소에는 내가 컨트롤 할 수 없이 주어지는 조건들 (회사 및 사회 상황, 그리고 더 좁게는 내 가족 내의 변화) 이고, 내적 요소는 내가 이미 가지고 있거나, 혹은 컨트롤 하는 조건들 (내 정신적/육체적 건강과 기술 등)에 해당된다.
즉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료 (Input) - 내가 움직이는 방식 (Process) - 내가 만들어낸 것 (Output)을 외적요소와 내적요소로 나누어서 나를 해체해 보는 것이다. 과연 MECE하게 나올지? 그래도 기대되는 바는 적어내려가며 적어도 머릿속에 정리함을 하나 만들어놓고 최대한 넣다보면, 어떤 문제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보일 때가 있다는 것.
이러한 프레임에서 날 바라보았고, 아래는 그 결과로 나온 기-다-란 나의 현재 상황이다.
(1)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료
(1-a) 외적 요소
회사: 프로젝트/교육 참가 기회, 부수직 (이건 기회일까..ㅎ), 이 외에도 평범히 일할 기회, 인정 받음 일텐데, 지금 현재 내가 원하는 Input이 주어지지 않고 있음. 가장 좋은 원료는 왠지 다른 사람이 다 가져가고 나는 남은 걸로 이럭저럭 살아보려하는 상황.
시장/사회: 이직 혹은 교육 관련 Offer, 시황의 상승 통한 즐거운 Project의 발생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아기 낳은 이후로 이직 시도는 번번히 실패 중. 그래서 시도도 안하게 되더라. 그 와중에 내가 몸담은 산업의 시황은 침체기로 우울감 Max. 이 외 트럼프 Issue 때문에 투자 환경도 녹록치 않음 (이 얘기는 Output에서 다시 한번 나올 예정)
가족: 내가 사랑받는다는 기분, 티격태격되지만 늘 나를 지지해준다는 기분, 필요하다면 물질적 지원도 쏟아준다. 나의 Fundamental 유지를 위해 부모님과의 관계 개선을 통한 유년기 극복과 Partner와의 관계 개선에 부단히 힘을 써왔고 소기의 성과를 달성 중임.
(1-b) 내적 요소
육체적 건강: 항노화, 방탕한 횟수를 줄여보기 등으로 구체적인 Plan을 통해 강화 중
정신적 건강: 우울 및 조울이 있는 상황이었음. Self-motivation 레벨이 낮고, ADHD의 면모가 두드러진 나.. 이대로 괜찮을까.. 후 이 모든 ‘질병’의 대환장 콜라보로 육체적 건강이나 기술/기회 획득을 위한 개인적 Project의 추진력은 여전히 낮음. (지금 이 글도 겨우겨우 짜내고 있다는 것을 제발 알아주셔..ㅠㅠ 왜 나는 이렇게 뭔갈 꾸준히 하는게 고통스러운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진짜 누가 날 좀 알아줍쇼 하는 인정욕구 끝판왕으로 이게 가장 목마른데 채워지지 않는 수준의 갈증임.. 이거 도대체 어떻게 없애는겨...
Skillset: 답보 중. 가지고 있던 엄청 강력했던 Tool은 세월의 역풍을 맞고 더 이상 Sharp 한 Point가 되지 못하고 있음. 많은 부분 대체되었거나, 누구나 할 수 있는 영역이 되고 있음. 돌파구를 위한 새로운 기술 획득이 필요한 상황. 이 부분이 타개되면 연쇄적으로 다른 부분도 타개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고민이 있음.
(2) 내가 움직이는 방식
(2-a) 외적 요소
회사: 일하는 방식을 돌이켜 보면 만족스럽지 못함. 10년이나 되었는데 일처리에 대한 구조화가 덜 되어있고 직무/산업에 대한 지적 깊이가 얕음. 일을 통한 성장을 추구하지만 어찌되었던 일을 하는 부분만 알고 있고, 또 기억하는 부분이 RAM인건지 휘발이 빠른 것 같다. Mumbling이 주특기. 알고 있는 척은 혐오하지만 내 강점이 아닐지. 일을 스킬로 바꾸는 역량에 대해 고민 필요.
시장/사회: 약간의 변명을 하자면, 시장이나 사회를 향해 일할만큼 한갓지지 못함. 회사, 가정만으로도 너무 벅찬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반기동안 한가지 몸부림을 쳤던 것은 개인적인 금융투자였는데, 감과 사람에 의존하는 투자 방식을 취했음. 이유는 진짜 이상한 감-이 지만 잘 맞는다는데 있었고, 내 주변 사람들이 좀더 Data 분석적이었기 때문에 합치면 잘 맞을 거라는 이상한 논리. 과연 결과는 어땠을까-? ㅎㅎㅎㅎㅎ
가정: (덜 싸우기 위한 모든!!) System 구축 중으로 나름의 성공… 조금의 Topping point가 필요하지만, 대충 안정적인 영역에 들어서는 기분
(2-b) 내적 요소
육체적 건강: 안 좋은 습관은 Fade-out 시키고 좋은 습관은 불을 지피기 위한 Golden Rule을 수립. 운동이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 ‘좋은 사람’이 되어가기 위해 스트레스 없이 좋아하는 운동을 좋아하는 강도에 따라 해보고 있음. 실제로 좋은 결과를 얻고 있음 � + 잠을 ‘잘’ 자기 위한 실험도 순항 중.
정신적 건강: 지긋지긋한 ADHD와 Demotivation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아직도 모르겠음. 사실 이 진단도 결국 이 정신적 건강을 타개하기 위해 시작한 것인데, 이 전에도 이런 시도 들은 계속 있었으나 꾸준할 수 없었음. 어언 20년 째 답보 상태지만, 무언가를 해야 내 육체적/정신적 건강이 나아진다는 것을 인지하고 짜내듯 앞으로 전진하고 있음. Breakthrough를 끝없이 찾고 있음. 아마 모종의 ‘성공경험’만이 돌파구가 되지 않을까 싶음.
Skill: Idea Generation 측면에서는 늘 번뜩이는 부분이 있으나, 이걸 꾸준히 해서 Output을 만들고 정교화하는 Skill이 무딘 편. 결국 정신적 건강과 연결되어있는 꾸준함과 섬세함. 그리고 치열함에 대한 Skill이 부족함. 내가 원하는 수준과 Output의 괴리를 줄이기 위해서는 Skill에 대한 부분 보강이 반드시 필요.
(3) 내가 만들어 낸 것
(3-a) 외적 요소
회사: 이 부분이 가장 크리티컬한 요소인 것 같은데, 지난 평가 중 내 맘에 드는 평가는 없음. 항상 정말 열심히 한 것은 아는데,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주어진 성적표는 나에게 큰 회의감을 줬다. 수많은 기회들이 나에게는 오지 않았고, 쿨한척하는 나만 남았을 뿐. 정말 괴로운 부분. 약간의 Legacy는 생기고 있지만 옆을 봐도 뒤를 봐도 앞을 봐도 나보다 더 빨리 잘 달리는 사람들만 있어서, 이 정도 돌맹이를 쌓아올리는 탑이 무슨 소용인지 모르겠다.
시장/사회: 상반기 동안 이직 자리에 한번 이력서를 내봤지만, 서류 광탈. 호기롭게 시작한 금융투자는 -80%.. 이 상황을 나도 믿을 수 없음.
가정: 그래도 평화로운 가정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시스템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하고 있음. 그리고 더 솔직해져도 상처를 덜 받을 수 있는 환경을 가지고 싶어서 내적 요소를 강화하며 선순환을 그릴 수 있게 내가 먼저 기반을 닦아내는 중 (다른 가족구성원의 마음도 생각해 봐준다는 말..)
(3-b) 내적 요소
신체적 건강: 건강의 지속을 위해 진짜 매일 조금씩 운동하기 시작. 얇은 명주실처럼 얇지만 질긴 것을 목표로 매일 5분이라도 운동하면 운동 스티커를 붙여주고 있음. 결과는? 진짜 좋아하는 운동도 찾게 됐고, 싫어한 줄 알았던 운동도 간헐적으로 해보면서 체력이 점점 증강 중! 숙면은 덤. 먹는 것도 MSG가득 두 끼니에서 ‘내 몸 내가 챙긴다 Concept’의 아침을 추가하며, MSG를 줄이고 영양소는 늘려냄. 숙면이 뒷받침되면서 아침밥을 차리는 루틴도 가능하게 되었고, 그걸 먹는 순간의 뿌듯함과 또 맛있어서 오는 행복감을 즐기는 중. 포만감에 점심을 덜 먹는 것도 아주 좋은 습관화! 결론적으로 술을 조금 더 줄여봐야겠지만 매우 순항 중.
정신적 건강: 관계에 있어서 스트레스 Management는 한단계 Level-up. 나는 관계지향적이고 관계를 근본으로 선 사람이라 어떠한 형태의 관계든 흔들리는 경우, 부정적 영향을 크게 받았었는데, 끊임없는 자기 자신에 대한 반성과 상황에 대한 복기, 그리고 관계를 먼 발치에서 바라보는 연습 등을 통해 개선해냄. 그렇지만 업무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ADHD와 조울은 아직도 답보 중. 이건 정말 어떡하지? 이것 뿐 아니라 삶에 대한 긍정적 Signal이 없다는 판단에 절망감과 답답함이 삶 전체를 지배 중. 성공에 대한 확신이 점점 줄어가서 이제 공포스럽기까지 해서 이걸 이겨내고 무엇인가를 시작하기 힘듬. 이 부분이 아마 삶의 전환을 어렵게 하는 영역으로 생각 됨.
Skill Set: 입사 이후 더 잘해진 것이 있나? 업무적으론 약간의 잡지식을 획득했지만 오히려 새로 얻은 Skill은 없음. 집안일 측면에선 요리를 정말 잘하게 되었고, 아이가 태어나고는 사진술도 늘었음. 남편과 이야기하면서 상대를 덜 화나게 하고 상대의 현 상황을 내 상황보다 먼저 생각할 수 있는 힘도 조금 얻게 됨. 자산화 하면 좋을 것 같은 것들. 그러나 손에 잡히는 것은 아직 없음.
막연히 문제가 있다고 느꼈던 삶을 이렇게까지 방법을 고민해서 펼쳐보는 것은 처음이다. 해보니까 문제가 왜인지 잘 보이네. 닭이냐 달걀이냐의 문제겠지만, 나의 문제적 순환고리는 아래와 같다.
1. 첫번째로 내보낸다는 것이 조금 어색하지만 결과론적으로 제일 핵심이 되는 부분 – “타인의 평가”
2. 그리고 타인의 평가를 반영한 “나 스스로의 평가”
3. 갑자기 증폭되는 불안감을 안고 치는 발버둥 – “급작스런 삶의 전환”
4. 당연하겠지만 이 상황에서 생기는 “나의 경쟁력 약화 및 Performance 저하”
다시 그리고 “타인의 평가”
이제까지 나는 누군가의 말에 따라 내 자신을 평가해왔고, 그 평가를 기반으로 삶의 방식이나 방향을 바꿔왔다. 그렇게 자주 방향을 전환하다 보니 당연히 한 우물을 진득히 판 사람보다 깊이도 얕고, 감도 없는 상황. 그리고 이런 상황이 지속되다보니, 몸도 마음도 지쳤고, 이것저것에 마음을 둬야하니 ADHD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 순환고리를 보니, 1. 내가 나 스스로에 대한 평가를 지극히 타인에게 의지해왔다는 것과 2. 삶의 근본적인 방향성이 없다는 것 이 두가지가 나의 문제를 만들어 눈덩이처럼 계속 쉬지도 않고 굴려왔다. (이런건 왜 쉬지도 않는걸까 ㅎㅎ)
그래도 알아서 다행이다. 버텨서 여기까지 온 것도 다행이고. 이 순환고리를 단박에 잘라낼 수 있는 것이라는 자만은 없다. 그렇지만 내 어깨도 아닌 이제 머리 위에 어디가 끝인지도 모를, 이 무언가를 조금씩 덜어내면 다시 설 수 있지 않을까. 그럼 또 걸을 수 있겠지, 걸으면 또 더 덜어지겠지. 그럼 가벼운 내가 다시 어디 날아가고 싶은 곳이 생기든, 안고 싶은 것이 생기든 하지 않을까?
어차피 산산히 조각난 김에 버릴 건 버리고 남은 조각으로 날 다시 붙여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