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 내가 나를 깨뜨린 이유

Ep 9. 아니 오빤 무슨 이런 얘기를 순대국 먹는데 하니

by 밤 Warm

“뭐라고?”

“미국 갈래?”

그 바람에 내가 의도했던 새우젓 양보다 더 많은 양을 순대국에 넣어버렸다.

“아니 오빤 무슨 이런 얘기를 순대국 먹는데 해..?”

“너 순대국 좋아하잖아.”


그렇지. 나 순대국 좋아하지. 순대국에 소주 마시는 것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 중 하나이다. 나와 남편은 참 많은 순대국을 마주하고 대화를 했다. 대충 생각하기에 시끄럽고, 허름한 곳이고.. 대화가 될까 싶지만, 가장 전략적인 선택이다. 순대국과 소주와 함께인 나는 이해심이 극대화된 상태이고 이성적이다. 그리고 십년 넘게 회식의 끝자락을 담당하던 순대국집은 내게는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는 곳이기도 했다. 그래서 중요한 이야기는 늘 순대국과 소주와 함께일 때가 많았다. (순대국과 소주가 없이 분위기 잡고 이야기하려던 때도 많지만 왜인지 그때마다 싸움이 수반되었던 것을 기억하면 더더욱)


그렇게 남편이 순대국을 앞에 두고 결연히 양념을 치던 나에게 미국을 가자고 했다. 내가 앞서 말한 삶에 대한 회의와 스트레스로 혼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이 때. 남편은 회사에서 좋은 기회가 주어졌다고 설명했다. 생각보다 더 머리가 복잡해서 소주를 한 잔 마셨는데 목으로 뭐가 넘어가는지도 몰랐다. 생각 좀 해보겠다-고만 답했다.


그 뒤로 여러 날을 다양한 음식과 술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해왔다. 늘 좋게 끝났던 것은 아니다. 나는 나의 커리어가 걱정되었다. 그래서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대답을 미루었다. 10년차라는 회사 생활은 사실 중요한 지점으로 달려가는 중이었고, 매년 조금씩 더 해가는 무게에 벅차면서도 올해는 조금 더 참고 멀리 가자고 다짐하던 찰나였는데, 갑자기 떠나자니. 이거 맞나.


하지만 남편은 돌이킬 수 없이 가는 것이 좋은 상황이었고, 당연히 아이에겐 좋은 기회였다. 그래서 나만 결정하면 되었는데, 혹부리 영감처럼 계속 미련이 한 개, 두 개 붙어갔다.


또 순대국을 먹었던 어느 날, 이 날은 ‘거기 가면 이렇게 순대국을 못 먹잖아! 머리고기 도..! 이거 가겠나..?’ 하며 또 다른 혹을 붙이고 있었는데, 갑자기 속에서 ‘아, 진짜 이제 그냥 말 좀 그만하고 다르게 살고 싶으면 그냥 다르게 살아라 ㅡㅡ!’ 하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 나, 혼난건가..?


이직을 하겠다고 1년차부터 줄기차게 말했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 아이 핑계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 이번 프로젝트만, 한번만 더 이러면서 Self-호구가 되어가는 나. 어떤 Trigger가 있다면 무조건 잡아야 하는 것 아닌가..? 나의 어떤 조각은 알고 있었다. 이것이 나에게 좋은 기회라는 걸. 다른 조각들이 전부 반대편에 서있을 때, 그 삐딱한 조각만 나한테 자꾸 시비를 거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도 그냥 말했다.

“나도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가야되는거면 가자.”

그 순간 멋지게 무언가를 계획해낸 것도 아니고, 그가 원한 분명한 (희망적인, 그를 지지하는) 대답을 준 것도 아니어서, 이 우유부단하고 “안 멋진” 대답이 또 짜증났지만. 그런건 차치하고서라도 그냥 내 삶에 갑자기 날아온 짱돌을 한 번 맞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회사에도 이야기하고, 아이에게도 이야기했다. 부모님께 말씀드렸을 때, 부모님은 나에게 물었다.

“그럼, 너는 가서 뭐 하고 싶어?”

…. 두 분을 시작으로 정말 우리 가족의 미국행 소식을 들은 99%의 사람이 같은 질문을 했다.


“ㅎ.. 글쎄요.”하고 겸연쩍게 팔자주름을 지어보이는 것도 한 두번이지. 이제는 질문하는 사람이 미워질 지경인데, 사실 질문하는 사람 잘못은 아니다. 전적으로 내 잘못이지. 그래서 이렇든 저렇든 나를 위해서도, 남을 위해서도 난 나만의 이유를 찾아야하는 것이다.


왜 사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돌이켜보면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 10대엔 오히려 분명한 목표가 있었던 것 같은데, 살아보니 내가 잘하는 것과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한 간극이 날 지치게 했다. 매일 꿈꾸지만 거절당하는 사람으로 남는 것이 싫었다. 그러다 보니 꿈을 꾸지 않게 된 것 같다. 10대에 내가 알면 까무러칠 일이다. 너 이정도였냐 하고 비웃는 18살의 내가 눈에 선하다.


가만히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가끔가다 무엇인가를 새로운 것을 떠올리면 주변의 말이 무수해졌다.

“그거 하는 사람 너무 많잖아.”

“그거 이제 별로 소용 없잖아.”

“그 자격증..? 글쎄” 등 수 많은 말들이 내 옆을 스쳤고, 내 꿈을 조각 내 가져갔다.

난 조각들이 스러져가는 것을 그냥 보기만 했다. 겁쟁이처럼 이 모든 상황을 합리화하며.


근데 미국가면 좀 덜 그럴 수 있는 것 아닌가? 진짜 나만 좀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머릿속으론 또 금세 ‘와 뭘해야 잘 했다고 소문날까’ 하는 타인에 절여진 내 뇌였지만 이런 것도 좀 덜어내는 연습도 하고 말이다.


여러가지 생각이 겹쳐 들었지만, 일단 온 가족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면서. 나보다 서른살 어린 우리집 꼬맹이보다 왜 내가 더 걱정되는 상황인건지. (우리집 꼬맹이는 아주 멋져서 걱정할 필요가 하나도 없다. 미국에 간다니까 벌써부터 디즈니+에 있는 모든 디즈니를 섭렵하는 걸 보니 특히..)


과연 나는 미국에서 내 삶의 이유를 찾아올 수 있을까? 미국 생활의 끝에 나는 조금 마음이 편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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