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 내가 내 조각을 찾는 방법

Ep 1. 나파밸리에는 포도나무가 많이 있다

by 밤 Warm
Chapter 1 세줄 요약
1. 나는 삶이 불행하오 우엥 ㅠㅠ
2. 왜 그렇나? 알고 보니 나는 남의 말이 너무 중요한 사람이라 불행한 것이었소. 아직도 나는 내 삶의 목적을 말하지 못하오. 모르기 때문이오 우엥 ㅠㅠ
3. …야 그럼 미국 갈래 (???????????????????)


전-혀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지만, 그렇게 난 지금 미국에 와 있다. 서울에서 못 찾던 그 삶의 목적이란 것이 여기엔 있을까? 그래도 서울보다 더 큰 곳이라면, 새로운 상황과 사람들, 장소들에서 어떤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미국 서부에 간다고 하니 사람들이 모두 와인 많이 마시겠다며 부러워했다. 와인을 잘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꽤나 좋아하는 나는 들떴다.


더운 여름, 나에게 쌉쓰름한 맛과 함께 시큼한 포도향을 건내며 코에 힘껏 바람을 부는 차가운 샤도네이와 쇼비뇽블랑. 크리스마스의 레드와인들은 애정을 담아 맑은 소리로 부딪히는 와인잔들로 기억되는데, 그래서인지 따뜻하고 퍽 정감있다.


하지만 특히 좋아하는 와인은 늦여름-초가을에 처음으로 수확한 포도로 담근 풋풋한 와인이다. 그 시기에 와인을 마시면 친구들과 와인잔 하나 달랑달랑 들고 오솔길에 있는 와이너리들을 주정뱅이처럼 쏘다녔던 기억이 덩굴째 내게 굴러온다. 와인의 가짓수만큼 수많은 기억이 있는 것 같다.


내가 살아갈 곳과 가까운 나파는 ‘그 유명한 나파’로 와인을 위한 포도나무가 참 많다. 그 많은 포도알 중 나의 삶의 조각 하나도 있지 않을까.


조각을 찾기 위해, 혹은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 것인지. 11시간의 비행을 하며 정신없고, 불안한 와중에도 사실은 저 생각 때문에 머리가 복잡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휴직을 결정하고 참 많은 사람들을 오랜만에 찾고, 만났을 때 제일 들은 말은 ‘무엇을 하려고 생각하지 말 것’ 이다. 그런데 무엇을 안하는 나 자신은 상상만으로도 불안해 미간에 주름이 짙게 잡혔다.


아무래도 여러 개를 할 순 없을 것 같고… 딱 하나 해야한다면 뭘 해야할까? 계속 고민 끝에 나는 결국은 다시 한국에 돌아와 회사를 다니고 이럭저럭 삶을 살아가겠지만, 미국에서 돌아올 때는 마음에 느낌표를 들고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살아야 하는 이유 하나만 딱 찾아오자고.

과거에도 나는 삶의 이유를 찾기 위해 왕왕 떠났다. 특히 혼자 이동하는 시간동안 내 옆을 스쳐가는 풍경들을 흘려보내며 머릿속으로 같은 속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마다 그냥 그 당시의 생각만 쏟아냈을 뿐, 삶의 변화는 없었다. 이상적인 삶이나 당시 유행하는 삶을 내 꿈이라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당시의 내 삶의 목표와 방식을 들은 주변사람들은 나에게 엄청 ‘있어보인다’ 라고 이야기했었다. 그러나 내겐 맞지 않은 옷이었고, 당연히 흘러내리든 조이든 오래 입을 순 없었고 결국 옷장에 처박혀 더 이상 빛을 보지 못했다.


세월이 흘러 나는 체형이 변했다. 그리고 유행에 맞는 옷보단 오래 입을 클래식한 옷들이 옷장을 채웠다. 마찬가지로 삶도 클래식한 목적과 방식을 찾고 싶은 모양이다. 오래도록 (아마 이제 죽을 때까지 함께 할) 내 삶의 방향과 그 방향을 걸어나갈 방식. 남들한테 보여줄 자랑거리가 아닌 내가 계속 들여다보고 나랑 함께 숨쉴 이유인 것이다.


미국이라는 새로운 상황은 이전에 내가 했던 방식 (e.g 자기개발을 위한 사소한 행동형 다짐 : 필라테스 하기. 책 읽기. 술 줄이기)을 통한 통상적인 꿈 (e.g 행복하기. 남을 돕는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삶 살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동안은 한정된 에너지와 시간을 쪼개서 나에 대해 고민했기 때문에 빨리 답을 내고 그 해답에 대한 실행계획을 짜는데 더 혈안이었다면, 지금은 무엇보다 나에게 집중할 시간과 에너지가 많다. 여유를 가지고 나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나를 둘러싼 가족, 친구, 배경 등까지 천천히 바라볼 수 있다. 생각을 깊게 하는 내모습이 마치 고치처럼 웅크리고 있는 모습일지 몰라도, 그 속에서 고치를 찢고 나올 날개가 생긴다는 사실이 날 너무 설레게 한다.


무엇을 생각하게 될까? 나는 이제까지 내 세상에서 만날 수 없던 수-많은 사람들과 내 귀에 들려오지 못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보고 들게 될 것이다. 수많은 색이 나에게 다가와 나를 물들인다. 그 퍼져나가는 색을, 물드는 나를 찬찬히 들여다보며, 앞으로 나아갈 길도 그려낼 수 있겠지.


타인의 시선에 메인 것이 문제라고 생각하면서 또 내가 아닌 바깥에서 내 삶의 이유를 찾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겠지만, 어떤 문제도 Best Practice를 얻는 과정은 중요하다. 좋은 표본은 좋은 결과를 낳는 경우들이 많으니까. 그리고 지금 내가 가진 이 에너지와 시간을 통해 많은 조각들을 이어 붙이며 삶의 이유를 찾아낼 것이다. 최대한 많은 조각들을 주울 것이고, 이 과정들은 전부 기록될 것이다. 미래의 나를 위해 준비하는 와인인 셈이다.


나파밸리에 있는 수많은 포도나무와 포도알 속엔 그 만의 비밀이 있다. 나는 내가 불시착한 이곳에서 매일 그 포도알을 터트리고, 밟으며 와인을 담그는 사람처럼 내 발을 물들이고 내 손을 물들일 것이다. 그리고 내 손으로 만든 그 맛있는 와인 한 병과 함께 집에 돌아올 것이다. 매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그 와인으로 기념하게 되길.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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