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은 언제나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다

Under One Roof : 데이비드 살레 회고전 감상

by 김정승

전시 정보

<David Salle: Under One Roof>는 데이비드 살레의 국내 최초 회고전으로 1999년부터 최근작까지 약 40여 점의 작품이 소개된다. 서울 이태원의 현대카드 스토리지에서 2025년 9월 7일까지 전시.


세 개의 흐름으로 구성된 전시

전시장은 세 개의 공간으로 나뉘어 구성된다.

첫 번째 공간은 1999-2015년의 주요 회화작으로 이미지의 병치와 구도적 배치가 두드러진다.

두 번째 공간에서는 상징성과 구성의 깊이가 더욱 강조된 <Tree of Life> 연작이 이어지며,

계단을 따라 내려간 지하층에는 NFT 기반의 비디오 설치작 <Party of Animals Apartment House>와 <Windows> 시리즈가 전시되어 있다.


데이비드 살레의 회화는 단순히 '보는 그림'이 아니다.

이미지가 겹치고, 잘리고, 튀어나오고, 때로는 서로를 가리며 말을 건다.

한 장면에 너무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어 당황스러웠다면, 그게 바로 살레식 정답이다.

아래 네 가지 포인트는 그 안에서 조금 더 유쾌하게 길을 잃는 방법에 대한 제안이다.


네 가지 관람 포인트

1. 프레임과 장면의 구성 방식

하나의 작품 안에 여러 개의 이미지와 장면이 나란히 혹은 위아래로 배치된다. 어떤 장면은 인물 중심이고 어떤 장면은 오브제 위주이다. 이러한 병치는 하나의 시점을 중심으로 감상하던 익숙한 회화 읽기를 낯설게 만든다. 화면 안에서 중심과 주변, 전경과 배경 사이의 위계가 흐려지고, 이미지들은 나란히 혹은 어긋난 상태로 병렬적으로 놓인다. 그 결과 관람자는 무엇을 먼저 보고 어떻게 이해할지를 스스로 구성해야 하며, 이미지 간 관계 역시 고정된 서사가 아닌 자신의 연상과 연결 방식에 따라 유동적으로 만들어진다.

2. 생략된 형상, 상상의 단서

살레는 종종 인물의 얼굴이나 손, 발을 그리지 않는다. 병의 일부분만 그려진 장면도 있고 몸의 실루엣만 남은 형상도 있다. 이러한 생략은 무언가 빠져 있다는 느낌이라기보다는, 그림이 말하지 않는 부분을 관람자가 스스로 상상하고 채워 넣을 수 있도록 남긴 여백에 가깝다. 얼굴이나 손, 발처럼 인물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요소들이 생략되었기에 오히려 그 인물과 관람자 사이에 더 많은 해석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

3. 다층적인 표현, 다중적인 감정

살레의 화면은 굵은 드로잉 선, 평면적인 색면, 정교한 묘사, 만화적 윤곽선 등이 한 작품 안에 동시에 등장한다. 어떤 선은 추상적으로 보이지만, 전체를 바라보면 인물의 형상이나 사물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처럼 서로 다른 표현 방식들이 병렬적으로 혹은 중첩되어 나타나면서 하나의 감정이나 장면도 단일한 어조로 전달되지 않고 다양한 시각 언어로 분해되고 재조합된다. 관람자는 이 이질적인 표현의 조합 속에서 복수의 감정과 해석이 공존하는 회화적 리듬을 경험하게 된다.

4. 이중 구조 속 상징의 풍경 - <Tree of Life> 연작 중심으로

<Tree of Life> 연작은 상징적 요소들과 화면 구성 자체가 유기적으로 엮여 있는 구조를 보여준다. 나무의 뿌리와 기둥은 표현 방식부터 확연히 구분된다. 뿌리 아래는 거친 붓질과 엉킨 색채로 감정의 기원이나 무의식을 떠올리게 하며, 기둥과 가지, 인물들은 보다 명확하고 정제된 형태로 사회적 역할이나 정체성을 암시한다. 이처럼 화면의 위, 아래는 서로 다른 감정의 층위를 병치하며 관람자는 그 사이에서 감정과 해석을 오가게 된다. 이 연작에 반복 등장하는 사다리, 가시 없는 장미 줄기, 모자와 같은 기호들도 눈여겨볼만하다. 이들은 인물과 직접 연결되거나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배치되어 정체성, 역할, 위계, 감정의 흐름을 상징하는 장치처럼 기능한다.


특히 모자는 <Tree of Life> 외의 섹션에서도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미지로 인물과의 관계에 따라 각기 다른 사회적 의미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기호들은 고정된 해석을 강요하지 않는다. 살레는 다양한 상징을 느슨히 병치한 채, 관람자 스스로 연결을 구성하도록 여백을 남겨둔다.


욕망은 언제나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단순하지 않은 인상을 남긴다.

전시장 자체는 조용하지만, 작품들은 동시에 너무 많은 말을 건네며 관람자의 생각을 분주하게 만든다.

화면 곳곳에서 이미지들이 끊임없이 말을 걸고, 인물들의 몸짓과 생략된 표정, 겹쳐진 프레임은 멈추지 않고 상상을 요구한다. 어떤 장면은 빠르게 친숙해지고, 어떤 장면은 설명되지 않은 채로 오래 머무는 감각을 남긴다.

관람자는 마치 복잡한 사건이 끊임없이 벌어지는 뉴욕의 거리 한복판에 떨어진 듯한 감각에 빠져든다.

프레임 속 인물들은 각자의 방향을 향해 시선을 던지지만, 그 시선은 어디에도 닿지 못하고 화면 안에 고정된 듯 보인다. 그 모습은 마치 동물원의 우리 안에 나란히 놓인 채 서로 다른 생각에 잠겨 있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이때 관람자는 인물과 자신 사이의 거리를 점점 좁혀가게 된다. 그들만의 고립이 아니라, 관람자 자신의 일상과도 연결된 단면처럼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 감각은 화면 구성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Tree of Life> 연작에서 눈에 들어오는 것은 나무의 뿌리와 기둥이 다른 층위로 표현되어 있다는 점이다.

거칠고 뒤엉킨 색채로 묘사된 뿌리 아래에는 감정의 원형 같은 이미지들이 놓여 있고, 그 위로는 인물과 상징들이 보다 정제된 윤곽 속에서 사회적 정체성의 한 조각처럼 자리한다. 이 구조는 무의식의 뿌리에서 자아의 표면까지, 관람자의 내면을 따라 차츰 올라가게 만든다. 그림을 바라보며 나는 내 감정이 이 구조의 어디쯤 머물고 있는지를 자문하게 된다.

이러한 시선과 감각의 흐름은 회화에만 머물지 않는다.

살레는 영상 설치작업을 통해 감상의 방향성과 몰입의 깊이를 더욱 확장시킨다. 스토리지 지하 계단을 따라 내려가며 마주한 NFT 디지털 아트워크 <Party of Animals Apartment House>는 관람자의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른 인상을 남긴다.

계단 위에서 내려다볼 때에는 마치 동물원의 우리를 관찰하듯, 인물들의 움직임이 다소 우스꽝스럽게 느껴진다. 하지만 계단 아래, 거대한 영상의 문 앞에 다다라 올려다보는 순간, 관람자는 어느새 그 장면 속에 포함된 하나의 인물이 된 듯한 감각에 빠진다. 살레의 화면은 시선을 통해 감각을 바꾸고, '보는 것'에서 '경험하는 것'으로 전환된다.


살레의 작품은 관람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만약 내가 이 프레임 속에 있다면, 어떤 장면에서, 어떤 시선으로, 어떤 욕망을 품은 채 그려질까.

나는 과연 이 프레임의 바깥에 있는 관찰자인가, 아니면 그 안에 놓인 인물 중 하나인가.


그 인물들은 특별한 얼굴을 하고 있지 않다.

지나치게 평범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감정의 잔해와 욕망의 서사가 중첩되어 있다.


살레의 작품은 말하고 있다.

욕망은 언제나 극적인 얼굴을 하고 오지 않는다.

그것은 늘 우리가 익숙하게 마주하는 일상과, 내 안의 가장 평범한 모습 속에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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