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균형한 시간이 위안이 될 때

정찬민 작가의 <행동부피> 감상

by 김정승

정찬민 작가의 <행동부피>(2023)는 반복되는 일상 속 신체의 움직임과 그 시간성을 조형적으로 재구성한 설치 작업이다. 작가는 64명의 루틴에서 수집한 행동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를 '행동풍선'이라는 입체 구조로 시각화하였다.

각 풍선은 다양한 행동 루틴을 나타내며 그 부피는 해당 행동에 소요된 시간에 따라 결정된다.

산책 겸 운동, 소파와 한 몸 되어 누워있기, 마트 다니기, 평생학습관 가기, 영양제 먹기, 라이딩하기, 남편과의 담소 등 경제적 가치로 환원되지 않는 행위들이 이 작품의 중심에 놓여 있다. 작가는 이와 같은 사소한 행동들이야말로 인간적 주체성을 회복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하며 효율 중심의 사회 구조에 질문을 던진다.

관람자는 바닥에 적힌 루틴의 문장들을 따라 풍선 사이를 걷게 된다. 이 움직임은 작품 안에서 하나의 루틴으로 편입된다. 정적인 감상이 아니라 관람자의 몸이 공간 안을 이동하면서 작품과 연결되도록 유도하는 구조다. 이 과정을 통해 관람자는 자신이 구성해 온 하루의 리듬을 자각하고, 반복적이지만 경시되었던 일상의 행동들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풍선 하나하나는 누에고치처럼 독립된 호흡을 가진 듯한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단순한 조형물이라기보다는 각각이 독립적인 시간의 밀도를 품고 있는 구조이며 시각적으로 숨을 쉬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러한 방식은 하루라는 시간의 덩어리 속에 묻혀 있던 행동의 조각들을 물리적인 형태로 가시화함으로써 일상의 감각을 다시 음미할 수 있도록 한다.


쪼그라든 풍선은 반복되는 루틴 속에서 소외되거나 미처 인식되지 않았던 행동들을 환기시킨다. 부피의 차이가 제거된 상태였다면 시간의 밀도와 삶의 다양성이라는 주제는 조형적으로 설득력을 잃었을 것이다. 풍선들의 크기 차이는 삶의 밀도와 속도가 사람마다 다름을 드러내며, 그 불균형 안에서 현실적인 위안이 발생한다.

이 작업은 감정을 직접적으로 자극하기보다는 시선을 일상의 층위로 돌리고, 신체적 리듬과 사회적 조건 사이의 간극을 조용히 드러낸다. 특히 자본주의 질서 안에서 가치가 부여되지 않았던 행동들이 조형적으로 전면에 놓이는 방식은 그 자체로 현대사회의 기준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자 대안적 삶의 제안이 된다.


<행동부피>는 설치 구조이자 시간적 장치로 작동하며 관람자와 함께 구성되는 작품이다.

개인은 이 안에서 자신만의 루틴과 실천을 다시 들여다보게 되고, 소소한 행동들이 어떻게 주체성을 회복시키는 가능성으로 작용하는지를 사유하게 된다.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섬 프로젝트: Linking Island'에서 - 7.13까지 작품 관람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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