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낯설게 보는 법 : 톰 삭스의 조립된 우주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29 - 톰 삭스 展 감상

by 김정승

톰 삭스의 전시는 그 자체로 하나의 우주선이었다.

낯선 행성에 착륙하듯 전시장에 들어선 순간, 익숙했던 사물들의 생경한 모습을 마주했다.

마치 외계인이 지구를 처음 마주했을 때 느낄 법한 거리감,

그 이질감을 견지하면서도 이내 몰입하게 되는 전시의 동선은, 단순히 '관람'이 아닌 '탐사'에 가까웠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전시의 공간 구성이다.

하이라이트 공간을 향해 이어지는 동선은 관람자의 발걸음을 자연스럽게 이끌었고,

작품 존(zone), 포토 존, 굿즈샵이 단절 없이 연결되어 전시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설치 작품처럼 느껴졌다.

공간적 리듬감과 감각적 편집이 어우러지며 관람객은 전시장 안에서 한 편의 서사를 '걷고 있는'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작품의 배치 방식은 낯섦의 감각을 더욱 극대화시켰다.

마치 육류처럼 가공된 듯한 조각들이 진열되어 있는데, 그것들은 한때 '있었던 것들'처럼 보이지만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우리가 보는 것은 단지 형체와 라벨링 된 이름일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라벨링에 속고 있는 것 아닐까.

'그러한 것'처럼 보이도록 꾸며진 진열장 속 오브제들이 실제로 무엇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름표가 붙는 순간, 존재는 형태를 넘어 신뢰를 획득한다.

그러나 사실 그 속의 오브제가 서로 뒤바뀌어 있어도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명명된 것, 분류된 것에 의해 판단한다.

부피가 좀 더 크거나 작고, 모서리가 어떻게 서로 다르게 각져 있는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으며, 구획된 타이틀과 네이밍만이 존재의 위계를 결정한다.

그 순간, 오브제는 개별적 실체가 아니라 선택받은 '대상자'가 된다.

이 눈속임 같은 설정은 톰 삭스가 지적하는 현대 소비사회의 기만성과도 맞닿아 있다.

존재의 본질이 아닌, 그것에 붙은 이름과 진열 방식이 '실제'처럼 받아들여지는 아이러니.

이 모든 것이 지극히 생경하면서도 어딘가 익숙하게 다가온다.


흥미를 끈 또 다른 섹션 중 하나는 'BOOK OF LIVES'였다.

미니카 위에 인물의 사진과 이름 등을 매치해 전시한 방식은 마치 인간 생애가 하나의 오브제, 하나의 데이터로 요약될 수 있다는 인상을 남겼다.

또한 전선의 컬러로 인물의 특징을 표현하고 그것을 케이블처럼 전시한 작품들은

인간이라는 존재마저 하나의 회로로 축소시키는 작가의 냉소적 유머를 보여준다.

그 자체로 전기적 생명체이자 소비 시스템의 부속품 같은 인간의 초상을 보는 듯했다.


이 전시는 마치 먼 우주에서 지구를 관찰하듯, 존재의 본질을 벗겨낸 낯선 시선을 제공한다.

그리고 그 낯섦은 해체가 아니라 우리 감각과 인식의 구조를 재조립하는 일이다.

사물과 존재를 보는 방식, 의미를 부여하는 기준에 대한 의심.

톰 삭스는 그 불편한 질문을 유쾌하고도 날카롭게 던진다.


톰 삭스의 세계를 걷고 나서야 알게 됐다.

우리가 보는 세계의 낯섦은, 그 세계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붙인 이름들 때문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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