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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스히 Oct 08. 2021

나름 열심히 살고 있어요

프리랜서를 시작한 지 몇 해가 지났다. 프리랜서를 하면 내가 하고 일 하고 싶은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막중한 책임감이 나를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게 했다. 오히려 회사에서 보다도 구체적이고 주도적으로 시간을 알차게 쓰려고 했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여 간단히 세수를 하고 컴퓨터 앞에 앉는 일은 직장에 다닐 때와 큰 차이가 없었지만 남 눈치 볼 것 없는 편안한 복장과 휴식시간을 내 맘대로 편히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아주 큰 장점이었다. 어느 날과 다름없이 오늘도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며 컴퓨터를 켰다. 컴퓨터 배경화면이 열리고 내게 익숙한 사이트를 검색해 접속하고 작업을 위한 프로그램들을 켰다. 아직도 난 다양한 플랫폼에 나를 알리기 위한 여러 도전들을 꾸준히 하고 있다. 당장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나와 약속한 것들을 지키려 일러스트 작업과 이모티콘 제안 등 하며 나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나조차도 프리랜서는 내가 원하는 시간에 일어나서 놀고 싶은 만큼 놀고 일하고를 반복하는 행복한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루를 보내기엔 생각보다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그렇게 게으른 하루를 보낸 날이면 그런 내가 죄스러워 다음 하루를 알차게 보낼 수밖에 없었다. 프리랜서라는 직업은 생각보다 자유롭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내 프리랜서의 삶이 여유로워 보이다 못해 걱정되었는지 내 미래에 대해 말을 해주는 사람이 있었다. 반대로 몇몇은 일부러 나를 위해 나에 대 묻지 않고 피하는 이들도 있다. 나 나름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지만 가끔 그런 소통에서 내가 쌓아온 시간이 무색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아직 과정을 살아가는 내게 어떤 이는 결과를 묻곤 했다.



혹은 내 앞날을 걱정하여 다른 일을 권유하기도 했다. 나를 위해 하는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난 왜인지 모르게 억울했다. 꼭 큰 성과가 있어야지만 열심히 산 것이며 맞는 삶일까? 직장생활과 다를 바 없이 하루를 시작하며 오히려 더 착실히 쌓아 온 내 시간이 의미 없게 느껴지는 것 같아 억울해졌다. 도 나 나름 잘 열심히 살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건 의미 없는 일인 것 같았다. 우리는 각자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며 그 가치관은 변하기 어렵다. 나를 위해 걱정해주는 이들의 생각도 나와 다른 것일 뿐이기 때문에 내 노력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인정보다는 내 스스로의 만족이 더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아직 불완전하지만 내가 정한 방향대로 살아내는 삶이 좋았다. 내가 느꼈던 억울함은 단지 다른 이들에게 내가 보내온 시간들이 인색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마음 아팠 때문이다.



그때 일 년에 한 번 연락하는 내 어릴 적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그 친구는 매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뭐하고 지내냐는 연락의 첫물음에 언제나 그렇듯 내가 살아내고 있는 이런저런 이야기 해주었다. 평소 그림에 관심이 많았던 친구는 내 꿈에 대해 진심으로 응원해주며 내게 필요한 정보들을 찾아주었다. 어느 때보다도 힘들었던 내게 친구의 진심 어린 응원은 큰 힘이 되었다. 그 친구의 마음이 담긴 문자에 보답하듯 나 또한 친구에게 진심을 눌러 담아 답장했다. 난 꿈이 있는 삶을 진정 응원한다. 과정을 살아내고 있던 고달픈 우리에겐 따뜻한 응원이 필요했나 보다. 당장 좋은 결과가 없더라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면엔 많은 성장을 했으리라 확신한다. 비록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삶을 이해받지 못하고 그 관계 속에서 상처 받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도 깨달음은 있고 깨달음 안엔 성장한 내가 있으며 그런 나는 마음 깊이 자리 잡아 단단한 내가 되어 수많은 시간을 쌓아간다. 그 시간은 내게 값진 경험을 내어 주고 그 경험은 다시 깨달음이 된다.




난 삶에 대한 다양한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내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물론 요즘엔 조금씩 그런 사회가 만들어지고 있지만 아직까진 우리는 행복한 삶에 대한 보편화된 가치관이 강하게 자리 잡아있다. TV 프로그램 속 한 사례로 꿈을 좇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비춰지지만 막상 주변을 둘러보면 내가 원하는 삶을 선택해 사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러다 보니 우린 나이가 먹을수록 꿈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도 내 꿈에 대해 말하는 것이 어색하고 이상한 주제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삶의 여러 가치관이 사회 속에 자라나 당연하다는 듯 어우러졌으면 한다. 무엇이 옳고 틀리다는 정답을 찾기보다 여러 정답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 그 여러 정답이 옳은 가치관이라면 모두 포용되어 다양한 꿈이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같은 시간을 조금 다른 내 방식대로 열심히 살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잘 살아가고 있다고 이 글로 내 안부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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