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치 방세의 거리
“아저씨이~, 쉬었다 가!”
손바닥만큼 열린 세면장 쪽창으로
한껏 톤을 높인 여자의 콧소리가 넘어왔다.
남자들의 웃음소리와 들뜬 여자의 목소리가 잠시 뒤엉켰다가,
발자국 소리가 한 방향으로 함께 사라졌다.
나는 웅크려 앉아 세수를 마치고 일어났다.
쪽창으로 손을 뻗었다.
끄윽-
습기에 뒤틀린 나무틀 쪽창이 닫히며 울었다.
비틀린 채 닫히며 창틀 사이로 틈이 벌어졌다.
비에 젖은 골목 바닥에 붉은 등이 군데군데 번졌다.
세숫대야에 양말을 툭 던져 넣었다.
수도꼭지에 달린 짧은 파란 호수를 당겨 잡았다.
꼭지를 돌려 대야에 물을 받았다.
발가락이 굳은 나일론 양말은 소용돌이치며 천천히 가라앉았다.
바닥에는 엄지손가락만 한 옅은 하늘색 타일이 깔려 있었다.
달방 식구들의 발에 닳은 타일은 반들반들했다.
타일 틈의 백시멘트는 노랬고, 수채구멍에 가까워지며 짙은 갈색이었다.
바닥과 벽이 붙은 구석의 줄눈엔 검은곰팡이가 피어있었다.
바닥에서 무릎 높이까지 손바닥만 한 파란 타일이 올라가 있었다.
천정까지는 회색 시멘트벽이었다.
벽은 군데군데 혈관처럼 갈라져 있었다.
그 틈에 버려진 땅거미의 하얀 집이
천장등 아래에서 희미하게 반짝였다.
똑- 똑-.
수도꼭지를 꽉 잠가도 물방울이 떨어졌다.
반대 방향으로 살짝 풀자 물이 멈췄다.
손끝에 닿는 고무는 이미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나는 한동안 그걸 바라봤다.
어디를 더 조여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
“아버지 먹을 거 좀 사 왔어요.”
쌀과 라면 그리고 반찬거리를 담은 박스를 부엌방에 내려놓았다.
“꽁초 피지 마세요. 몸에 안 좋아요.”
88 담배 한 보루를 뜯어 한 갑을 꺼내 아버지에게 건넸다.
“라면 끓여서 같이 점심 먹어요.”
담배를 집어 드는 아버지 곁에 재떨이를 가져다 놓았다.
“끝에 쪽방 치워놓고 가방 거기에 두었다.”
아버지는 방바닥에 손을 짚었다.
몸을 옮겨 부엌 벽에 기대었다.
“아버지, 저 당분간 여기서 함께 못 지내요.”
아버지는 눈꼬리를 내리고 힘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아… 다른 게 아니고 여천공단에 일자리를 구해서요.
거기 숙소에서 잠시 지낼 거예요. 주말마다 올게요.”
아버지를 보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버지 드세요.”
참치캔 하나를 따서 상에 올렸다.
“라면에 파도 넣어서 그런가? 더 맛있네.”
아버지는 익은 계란을 건져 나에게 건넸다.
“아버지 카레랑 짜장도 있으니 라면만 드시지 마세요.”
라면을 먹으며 그 말을 하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너도 밥 잘 챙겨 먹어. 살이 너무 많이 빠졌어.”
젓가락으로 참치캔을 내 쪽으로 밀었다.
“아버지 다음 주말에 올게요.”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일어섰다.
“이거 가지고 덕충동사무소 한 번 들러라.
사회계 담당 아가씨인데…
어떻게 내 사정을 알고 많이 도와줬다.
쌀이며 생활비를 챙겨주었어.
이제 네가 성인이라 뭐가 달라진다는데….”
아버지는 작은 수첩을 나에게 내밀었다.
‘생활보호대상자’
표지에 녹색으로 정직한 글자가 박혀있었다.
수첩 안쪽에는 단아한 글씨로
정부미와 생활비가 지급된 날짜가 적혀있었다.
“네, 아버지. 방문할게요.”
나는 수첩을 넣으려 가방주머니를 열었다.
결핵관리수첩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서둘러 수첩을 포개고 주머니를 닫았다.
“아버지, 갈게요. 이거 비상금 가지고 계세요.”
봉투를 방바닥에 두고 출입문으로 향했다.
좁은 판자촌 통로는 볕이 들지 않아 어두웠다.
판자촌 통로 끝을 바라보았다.
봄볕이 눈이 따갑도록 밝았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다른 세상이 열릴 것 같았다.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다.
통로 끝으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봄볕은 부드러웠고 아지랑이는 사라져 버렸다.
‘어디로 가야 하지…’
나는 발끝을 보며 걸었다.
걸음마다 연탄재 먼지가 피어올랐다.
그 자리에는
다 타버린 것들이 남아 있었다.
—
사창가 골목 끝, 달방으로 돌아왔다.
여수역 건너편 공화동, 좁은 골목 안에 있던 여인숙이었다.
불과 반년 전,
나는 길 건너 여수고 3학년이었다.
어렴풋하게나마
나은 내일을 생각하던 때였다.
“들어와. 앉아.”
성원형이 안쪽으로 들어가며 방 한구석을 손으로 가리켰다.
방바닥에 놓인 버너 위 냄비에 물이 끓고 있었다.
그는 라면 세 봉지를 냄비에 넣었다.
남은 봉지를 하나에 모두 담아 구겼다.
방문 옆 쓰레기통으로 아무렇게나 던졌다.
봉지는 벽에 부딪혀 바닥으로 떨어졌다.
부탄가스통 몇 개가 벽에 붙어 나란히 서 있었다.
하얀 벽지는 담배연기에 절어 끈끈한 누런 빛을 띠었다.
왼쪽 벽엔 사진액자 자국이 한 군데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오른쪽 벽엔 작년 맥주 광고 달력이 걸려 있었다.
1994년 5월이 그대로 멈춰 있었다.
그 안에서 수영복을 입은 여자가 청량하게 웃고 있었다.
“소주 한 잔해.”
성원형이 빨간 왕관이 새겨진 맥주잔을 내밀었다.
“저는 술을 못 마셔요.”
맥주잔을 받아 뿌연 주둥이를 소매로 닦아 형에게 다시 건넸다.
“스무 살이라고 했지? 난 스물아홉이야.”
그는 맥주잔에 소주를 따랐다.
“형, 그런데 술 드셔도 괜찮아요?”
나는 그의 누런 얼굴을 바라보았다.
“간염인데, 뭐 괜찮아질 거야.
술 먹어서 걸린 게 아니거든.
죽어라 살아도 이렇더라….”
허공을 바라보는 그의 노란 눈에 짧은 형광등이 맺혔다.
“형 티브이가 있네요?”
그가 바라보자, 나는 얼른 시선을 그의 등 뒤로 옮겼다.
창 아래 방바닥에 두꺼운 이불이 접혀 쌓여 있었고
그 옆에 바로 티브이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응 올 때부터 있더라고, 선이 없어 티브이는 안 나오고
머리에 비디오가 붙은 티브이라, 가끔 비디오테잎을 빌려서 봐.”
그는 이외수의 낡은 소설책 한 권을 밥상 위에 올렸다.
그리고 냄비를 그 위에 올리고 뚜껑을 열었다.
“가끔 술 취해서 비디오를 틀어놓고 자버렸는데…
옆 방인데, 안 시끄러웠어? 이것도 벽이라고.”
텅-텅-
그는 베니어합판 벽을 주먹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비디오 몇 개 빌렸는데, 볼래?”
그는 ‘퐁네프의 연인들’을 티브이 머리에 집어넣었다.
—
퐁네프 다리 위, 포도주에 취한 연인의 행복한 춤.
그 위로 파리의 밤하늘을 수놓은 불꽃놀이.
그는 이별이 두려워 그녀의 얼굴 포스터를 모두 태워버렸다.
시력을 잃어가던 그녀는 다시 보게 될 거라는 희망으로 그를 떠난다.
그들의 사랑과 이별, 재회는 잠시 깜박이다 사라졌다.
단 하나의 장면만이 나를 그곳에 오래 세워 두었다.
그들은 퐁네프 다리 밑에 쓰레기처럼 포개져 누워있었다.
왼쪽 눈에 안대를 한 그녀는 다리기둥에 등을 기대고 있었고
무릎이 뜯겨 나간 그는 얼굴을 쥔 채 그녀 위에 쓰러져 있었다.
술이 깨지 않은 그들에게 햇빛은 괴로웠다.
연등천 다리 아래 움막이 생각났다.
시민회관 건너편에 연등교가 있었다.
그 아래는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았다.
어릴 적, 어느 여름 우연히 그곳으로 내려가는 할아버지를 보았다.
바닥으로 연결된 돌층계를 조심히 몇 개만 내려가 다리 밑을 보았다.
천막조각과 담요를 얼기설기 붙여 만든 움막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주변을 살핀 뒤 그곳으로 들어갔다.
폭우가 쏟아진 다음날, 집 앞 고랑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그 할아버지와 움막이 떠올랐다.
움막이 있던 자리엔 나무기둥 하나만이 기울어져 박혀 있었고,
그 끝에는 천막 조각이 넝마처럼 걸려 있었다.
고약했던 하수구 냄새가 사라진 연등천엔
맑은 물이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다리 밑? 저기일까?
더 내려갈 곳이 있을까?
그곳과 이곳의 차이는
한 달치 방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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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기록합니다.
매일의 삶, 지나온 기억, 그리고 작고 소중한 온기들.
이야기의 다음 장은 곧 찾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