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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보스: 피드백의 힘을 알려준 매니저

어쩌다가 마케터 (5)

by 로하

무식한 콘텐츠 리서치의 힘

한국 로컬 웹사이트를 빠르게 구축한 후, 독일 웹사이트까지 맡게 되었고, 이어서 콘텐츠를 만들었다. 이름만 들어봤을 뿐, 원리도 모르는 기술이었지만 어디선가 책에서 본 내용을 떠올리며 먼저 리서치를 시작했다. 콘텐츠 갭을 확인하고, 필요한 콘텐츠 리스트를 만들어냈다.


B2B 슈퍼파워 콘텐츠 만들기 https://brunch.co.kr/@claire-another/16


3년이 지난 지금은 협회 소식이나 마켓 인사이트를 기준으로 매출, Engagement, Conversion Rate 등을 보며 필요한 콘텐츠를 판단하겠지만, B2B 마케팅이 처음이었던 기존 경험들을 살려 열심히 구글링을 했다. 키워드 하나를 검색하면 10페이지까지 다 훑었고, 수십 개의 연관 키워드와 배포된 콘텐츠를 찾아내 엑셀에 콘텐츠 맵을 정리했다. 무식하지만 그렇게 시장과 경쟁사, 그리고 그들이 배포하는 콘텐츠 전략을 빠르게 익혔다. 3년 전 챗GPT가 있었다면 좀 더 수월했을까?


그렇게 손 빠른 프리랜서는 능력을 인정받아 한국지사 근무를 제안받았다. 약 3년 간의 독일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멘토를 만나다

다시 한국에 정착하기로 마음먹은 건 절반은 개인적인 이유였지만, 나머지 절반은 내 클라이언트이자 상사였던 Wei 때문이었다. 링크드인에서 나를 찾아 면접 기회를 주고, 제안서를 받아 채용한 싱가포르에 사는 내 매니저 Wei. 첫 몇 달은 클라이언트로 만났고, 회사에 합류 한 후로는 나의 첫 외국인 매니저가 되었다.

커리어에서 멘토가 없어 늘 아쉬웠던 내게 웨이는 그 역할을 해주었다. B2B 마케팅과 업계 경험이 20년이 넘은 그녀는 생태계와 시스템을 명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중국계 싱가포르인인 웨이는 중국어는 못했지만 왠지 중국 엄마들의 ‘센 기운’이 느껴졌다. 좋게 말하면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 솔직히 말하면 파이터 같은 느낌이었다. 회의에서도 논쟁을 자주 벌였는데 한 번은 영업팀이 웹사이트에 챗봇을 운영하자는 제안에 ‘영업팀은 바쁘다’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날카롭게 이야기했다.


“그럼 이걸 누가 해? 고객을 만나는건데 세일즈팀이 해야지. 바쁜건 모두가 다 바빠. 회사에서 안 바쁜 사람이 어딨어?”


순간 정적이 흘렀고, 결국 영업팀이 챗봇 운영을 맡았다. 그녀 앞에서는 어느 팀도 바쁘다며 일을 다른 팀에 떠넘길 수 없었다.

이메일로도 논쟁은 끊이지 않았다. 가끔 한국지사장과 의견이 달라 메일로 설전을 벌였는데 둘의 메일을 참조로 받던 나는 괜히 중간에 껴서 불편했지만, 놀라웠던 건 그녀가 단 한 번도 논쟁 상대의 험담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한국지사장이 없는 자리에서 한국지사장의 능력을 칭찬했었다.


까다로운 보스

Wei는 동료들에게도, 팀원에게도 엄격했고 과중한 업무를 주곤 했다. 일본 마케터는 퇴사했고, 이어 싱가포르와 대만 마케터도 과도한 업무와 마이크로 매니징에 버거워하며 그만뒀다. 나중에 들어보니 그 전 회사에서도 아래 직원들이 못 견디고 나가는 악명 높은 상사였다고 한다. 모두 나에게 “넌 어떻게 버티냐?”고 물었다.

나도 업무가 Wei의 매니징 스타일이 부담되는 순간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피드백이 좋았다. 낯선 B2B엔지니어링 업계지만 새로운 과제마다 내가 가진 이전 경력을 토대로 업무를 수행하고 나면 그 결과에 대해 다양한 피드백을 줬다.


한국에서는 일을 잘 하면 “수고했다.” 못 해도 “수고했다.” 라면 Wei는 내가 정확하게 어떤 부분을 잘 했는 지 상세하게 짚었다. 못한 부분이 있으면 격려로 대신 했다. “다음엔 이런 점을 개선하면 좋겠어.” 누군가에겐 이런 피드백이 잔소리처럼 들렸을 수도 있지만 한국 회사에서 지내는 10년동안 선배들에게 자세한 피드백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라떼는 “고생했다”가 최고의 피드백 아니었나?


C급에서 마케팅 부서의 실수를 지적한 날, 그 일의 담당자였던 나는 나를 자책했다. 그때 Wei는 단호하게 말했다. “네 탓이 아니야. 내가 최종 컨펌했잖아. 내가 못 봤어. 내가 잘못한거야.”

피드백이 직원의 동기부여에 큰 역할을 하고, 심리적 보상감을 느끼게 해준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가 '내 탓'이 아니라 '내 책임'을 말하며 앞장서는 모습을 보고 믿을 만한 상사라고 느꼈다. 특히 아무리 논쟁을 해도, 뒤에서 상대방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는 모습도 멋져 보였다.


나는 마음속으로 늘 상상했다. 언젠가 회사를 떠나는 날, Wei에게 말해야지. '당신은 최고의 상사였어요. 당신과 함께 일한 것은 제게 큰 행운이었고, 정말 많이 배웠고, 오랫동안 생각날 거예요.' 언젠가 꼭 그렇게 말하고 나가야지 다짐했었다. 왜 내가 먼저 회사를 떠나고, Wei는 남겨질 것이라고 생각했는 지는 모르겠지만 멋진 멘트를 남기며 회사를 나가는 순간을 꿈꿨었나보다.


이별의 순간

어느 날 Wei가 물었다.

“나랑 2년 일하는 동안 어땠어?”


불쑥 던진 질문에 당황했지만, 나는 용기 내서 마음속에 품었던 말을 꺼냈다.

“Wei, 당신은 내가 만난 최고의 보스야. 일에 대해 피드백을 잘해주는 것도 좋고, 잠재력과 가능성을 보는 관점도 정말 좋아. 당신과 함께 일해서 행운이라고 생각해. 우리 엄마한테도 그 얘기했어.”


Wei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 고마워. 근데 친구들한테는 얘기 안 했어?”


서로 웃던 그 순간, 그녀는 폭탄을 던졌다.

“근데 그거 알아? 나 그만둬.”


내가 그동안 마음 속에 품었던 멋진 멘트를 이렇게 말하는 구나! 감정이 올랐는데 마침 그녀가 떠난다고 하자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녀는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며 같은 업계의 더 큰 회사로 간다고 했다.

당황한 나를 다독이며 MBTI에서 세번째 자리가 분명 T인 상사 웨이는 말했다.

“감정적으로 굴지 마. 넌 잘할 수 있어.”

그리고 마지막으로, 또 하나의 피드백을 남기고 떠났다.


남은 마음

내 커리어의 중요한 전환점에 Wei가 있었다.

지금 회사에 합류하던 그 해 초에 본 신년운세에 귀인을 만난다고 했었는데 잊고 있다가 그 점괘를 다시 보니 그 귀인이 웨이였던 것 같다.

함께했던 시간은 2년 남짓이었지만, 그 시간 동안 나는 B2B 마케팅을 익히고, 피드백의 힘을 경험하고, 신뢰를 주는 리더십이 무엇인지 배웠다.

아마도 Wei에게 배운 좋은 상사의 모습이 나에게도 스며들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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