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주관적이며 개인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내 나이 20대 중반을 열심히 달리는 중. 그리고 설이었던 오늘, 세뱃돈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혼란스러웠다.
돈에 개념이 어렴풋이 접하기 시작했던 미취학 아동 시절에서부터 꽤나 여러 가지 이유로 명절이 기대되었다. 어른들의 감시에서 벗어나 사촌들과 재밌게 놀 수 있었고, 맛있는 음식도 잔뜩 먹을 수 있었으며,
그리고 무엇보다 여러 친지 어른들께 '세뱃돈'이라는 명목으로 꽤 짭짤한 수입을 거둘 수 있었다.
새벽부터 바쁘게 제사를 지내도 그날만큼은 피곤함은 현저히 적었다. 제사를 지내고 내 나이 또래의 사촌들과 함께 방에 들어가지도 않고 쭈뼛쭈뼛 각자 부모님 곁을 서성이었다. 그리고는 어른들이 쭉 나란히 앉히기 위한 각자의 노력을 이어갔다. 어른들은 그 모습을 다 알고서도 모르는 척 거실에 착석해주셨다.
아버지는 흔치 않은 8남매셨다. 그 말인즉슨, 평균적으로 더 많은 세뱃돈을 받았었다. 절을 올리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며 큰 소리로 외친 후, 무릎을 꿇고 훈화 말씀을 경청(하는 척)했다. 머릿속으로는 '올해는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바쁘게 계산기를 두드렸다 (어쩌면 나 꽤 어릴 때부터 자낳괴였을지도...?). 아무리 듣기 싫은 잔소리에도 귀 기울였다. 흔히 요즘 말로 칭하는 '금융 치료'가 함께 동반되기 때문이었다.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면 친구들과 만나면 우스갯소리로 듣기 싫은 말 돈 주면서 하면 충분히 듣겠다의 실제를 겪어왔었다. 다소 좋았다고 느껴진다.
어른들의 훈화 말씀이 끝나면 나이 순서대로 봉투를 받아갔다. 그 나이에는 용돈으로 아무리 받을 수 없던 그 액수를 손에 쥐어들면, 세상에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어릴 때부터 '내 자산'에 대한 인식이 확고했던 나는 받은 세뱃돈을 내 외투 주머니 어딘가에 아주 꼼꼼히 보관했다. 즉, '내 자산'을 부모님께 위탁하지 않았다. 현명했던 선택인 것 같았다. (엄마 아빠를 못 믿는 건 아니었지만... 아무튼 그렇다.)
어린 나이에는 사고 싶었던 것을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선택권을 '세뱃돈'으로 쟁취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리고 성인이 되고, 특히 대학까지 졸업하고 나니, 세뱃돈이 그다지 달갑지 않아 졌다. 돈을 받으면, 괜히 초라해지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물론 '돈'이라는 재화는 언제나 반갑다. 하지만, 이제는 어른들에게서 받는 돈이 더 이상 돈이라는 가치만을 전달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내가 노동의 힘듦을 알게 되어서 일수도, 혹은 나중에 더 크게 갚아드려야 한다는 부채감 일수도 있다. 아무도 나에게 강요한 적은 없지만 말이다.
사실상 이제는 내가 어른들께 드려야 하는 나이라고 생각한 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다. 세뱃돈을 받음으로써 내가 나를 성인이라고 인지하는 것과 세뱃돈은 어린아이들에게 행해지는 것이라는 둘 사이의 충돌이 일어나는 것 같다. 내부적인 '나'에 대한 인식이 외부적인 인식과 다를 때, 복잡하고 좋지만은 않은 감정들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어찌 되었든, 세뱃돈 하나에도 이런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이 뒤엉켜 느껴지는 것을 보니, 정말 나이가 들어가는 중 이긴 한가보다.
얼렁뚱땅 내린 결론: 적어도 내년에는 나도 당당히 돈 봉투를 드릴 수 있길 바라며, 취뽀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