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요구되는 졸업과 입학
졸업만 하면 다 되는 줄 알았다.
고등학교를 졸업만 하면 대학생이 되어 멋진 20대를 보낼 수 있을 줄 알았다.
초등학생과 중학생 사이였던 그때,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어렸을 때. 저녁이면 엄마아빠를 따라 TV앞에 앉아서 시트콤을 봤다. 세 친구, 남자 셋 여자 셋, 논스톱을 보면서 무슨 내용인 줄도 잘 모르겠으면서 괜히 웃긴 것 같아서 깔깔거리며 봤던 기억이 있다. 대학생들이 기숙사처럼 한 군데 모여 살면서 일상을 공유하고 연애하고 공부하고 미래를 꿈꾸고 서로를 응원하는 그 삶이 얼마나 멋져 보이 던 지.
고등학교를 졸업만 하면 매일 똑같이 입는 이 교복을 벗고,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시간에 같은 과목을 공부하는 이 학교를 떠나 대학에 들어가고 곧바로 그런 시트콤 같은 삶을 살게 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은 조인성, 송승헌 같은 남자도, 교수님과 절친한 사이가 되지도, 눈물 나는 사랑을 하지도, 꿈을 곧바로 결정하고 실행하는 것도 없었다. 분명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시트콤 같은 대학생활을 꿈꿨으면서 신기하게도 대학생이 되고 나니 바로 직전까지 꿈꿔왔던 것을 잊어버린 것이다. 현재의 내 대학생활을 마음껏 즐기고 누리기에는 또 다른 미래의 삶을 걱정해야 하고 대학을 졸업하기 위해 준비를 해야만 했었다.
고등학생 때 막연한 대학생의 삶을 꿈꿔왔던 것처럼, 대학생 때는 섹스 앤 더시티 미드를 열렬히 시청하면서 대학만 졸업만 하면 바로 취직이 되어 도시 속 바쁜 커리어 우먼이 되는 줄 알았다.
아침에 스타벅스 커피를 들고 출근하며 회사에서도 즐겁게 일하고 퇴근 후 애인과 맥주 한잔을 즐기는 그런 삶.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모두 취업을 한다고 하니까 좋은 직장도, 멋진 삶을 사는 것도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고등학교 졸업을 하면 당연히 대학을 가듯이...
그렇게 대학을 졸업하면 자연스레 취업이 되는 줄 알았고, 그러다 보면 자취를 하고, 자취생활을 졸업하고 나면 결혼을 하는 줄 알았고, 결혼만 하면 어른이 되는 줄 알았고, 월세살이를 졸업하고 전세로 옮기고 나면 한시름 덜어놓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인생은 정말
끝도 없이 끊임없는 졸업을 하고
새로운 입학에 실망을 하고
또다시 거기서 졸업을 요구한다.
도대체 이 끝없는 졸업과 입학 굴레의 시작은 어디서부터였을까?
아마 지금은 절대 기억이 안 나고, 실제로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엄마 뱃속에서 약 10달을 살기 시작하면서부터이지 않았을까. 나는 나 나름대로 이 뱃속을 빠져나가 신생아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면부터가 첫 시작이었을 테고 부모님은 나를 키우며 쪽쪽이만 떼면, 기저귀만 떼면, 걸음마만 시작하면, 말만 하게 되면, 유치원만 졸업하면, 초등학교만 졸업하면 등등 수 없이 졸업 이후 끝없는 성장에 대한 기대를 품으며 나를 키우셨을 것이다.
그렇게 무언가 해내기만 하면 다 될 것만 같고 다 되는 줄 알았다.
무언가를 해내기까지 그 99%에 있을 때의 기대감이란 정말 한 치 앞의 절벽을 못 보게 하는 것만 같다. 뭐든지 다 될 것만 같은데 다 망쳐버릴 것만 같은 그 아찔한 기분.
나는 미술을 전공하며 서울에 있는 대학을 졸업하고 해외로 1년 동안 선교도 다녀오고 회사도 다니고 이후에는 대학원도 졸업했다. 하지만 지금은 독일에 사는 그냥 백수 아줌마고 이제 또 학생이 된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분명 지금까지 계속 준비를 해오고 졸업을 해왔는데.
왜 지금은 백수라는 타이틀로 살고 있는 거지?
처음에 대학을 입학할 때는 지금과 같은 미래를 상상해 본 적도 없고, 가장 마지막 업적이었던 대학원을 졸업하기 직전까지만 해도 졸업만 하면 바로 이쪽 업계에서 활발하게 일을 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독일에 오면 독일어를 쏼라쏼라 뿜어내며 내 것을 또 잘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백수 생활을 길게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졸업만 하면 다 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무수하게 경험해 왔으면서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다니, 심지어 무엇을 시작해야 할지도 무엇을 끝내야 할지도 모르는 단계가 되어버렸다.
마치 목적을 향해 항해를 하다가 암초를 만나서 이 암초만 피하면!! 폭풍우를 만나서 이 폭풍우만 잘 헤쳐나가면!!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해결했다고 생각했는데 숨 돌릴만하니 목적지를 잃어버린 체 망망대해에 낙오된 느낌.
졸업만 하면 다 되는 줄 알았는데.
도대체 이 헛된 망상은 어쩌다 생겨난 것일까.
과연 독일에서 학생을 잘 졸업한다고 해서 나는 내 것을 잘 찾아낼 수 있을까. 또 다른 입학이 날 기다리고 있진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