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따스한 골방 Jan 05. 2024

본캐와 부캐 사이에 고민입니다

정신과 의사와 작가 사이

#1. 부캐의 뜻, 부캐를 키우는 이유

  최근 현실에서 부캐를 키우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이제는 많이들 아실 수도 있겠지만 설명을 하자면, 부캐는 원래 게임 용어였지요. RPG 게임에서 하나의 캐릭터만 키우면 아쉬운 경우가 많았습니다. 검을 휘두르는 캐릭터를 하면 괜히 마법을 쓰는 캐릭터가 좋아 보이죠. 마법을 쓰는 캐릭터도 다를 건 없어요. 마법을 쓰다 보면 검을 휘두르고 싶어 지는 게 사람 마음이잖아요. 예전부터 견물생심이란 단어가 존재해 왔듯이, 나와 다른 무언가를 보았을 때 갖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원래 키우던 캐릭터(본캐릭터)를 두고 새로운 계정(부캐릭터)을 키우는 경우가 많았어요. 본캐릭터는 줄여서 본캐, 부캐릭터는 줄여서 부캐라고 부릅니다.


  저를 예로 들면 현실 본캐는 정신과 전문의이고, 현실 부캐는 브런치 작가가 되겠네요. 이렇게 현실 본캐, 부캐의 개념을 생각하시면 이해가 되실 것 같습니다. 그런데 최근 기사들을 보면 현실 부캐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해요. 왜 그럴까요?


  분명히 본캐는 우리의 삶에서 정말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정신과적 증상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는 방법 중 하나가, 평소에 비해 직장생활을 얼마나 잘 유지하고 있는지를 볼 정도지요. 하지만 그만큼 본캐는 잘 해내야 된다는 부담감이 있습니다. 본캐가 휘청하면 우리의 삶도 함께 흔들거리죠. 그래서 본캐는 할 수 있는 일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주어진 일부터 제대로 해내는 것이 우선순위인 경우가 많으니까요. 물론 반대의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에요. 적성과 흥미가 모두 맞는 직업을 찾아 본캐만으로 충분히 보람차고 즐거운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느끼기로는 본캐만으로는 뭔가 아쉽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지는 듯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의 내면에 숨어있던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에서 올라오는 감정을 나누면서 도움을 드리는 것은 일반적인 관계에서는 자주 볼 수 없는 일이에요. 그래서 저는 본캐에 만족합니다. 다시 태어나서도 원하는 직업을 할 수 있다면 이 본캐를 또 키울 것 같아요. 하지만 본캐는 진료실에서만 활동할 수 있습니다. 진료실에서 함께 있었던 환자와 의사, 이 두 명의 이야기는 진료실에만 남아있어야 합니다. 만약 이야기가 진료실 밖으로 샌다면 그 환자의 치료에도 큰 방해가 되고, 윤리적으로도 큰 문제가 되니까 당연한 일이에요. 그런 이유로 진료실 안의 본캐가 주는 안정감 속에서도, 진료실 밖에서도 활동하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브런치에서 활동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2. 정신과 의사가 자기 노출을 조심하는 이유

  1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꾸준히 글을 썼고 감사하게도 예상보다 정말 많은 분들이 봐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글감이 점점 메말라가는 것을 느끼고 있어요. 자기 노출에서 올 수 있는 문제가 많기에 부캐는 사적인 저의 이야기를 다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부캐보다는 본캐가 최우선입니다. 지금은 환자를 보고 있지 않지만, 나중에 저를 찾아올 사람들에게 제 부캐가 문제 되지 않았으면 해요. 정신과 의사는 자기 노출(self-disclosure)을 잘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환자에게 이런 질문을 받기도 합니다.


 이제까지 제 사적인 얘기를 했는데, 왜 선생님의 얘기는 안 하시나요?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의 마음도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상담에서 정신과 의사가 자기 개방을 지나치게 한다면 치료에 방해가 될 수 있어요. 특히 환자가 의사에게 느끼는 감정, 즉 전이(transference)의 문제가 생기거든요. 가벼운 예시를 깻잎 논쟁으로 들어보려고 합니다.

<깻잎 논쟁>
한 부부와 그 부부가 다 아는 친구인 여자가 같이 식사를 하는데, 친구가 여러 겹의 깻잎에서 한 장을 떼지 못하고 낑낑대는 걸 도와주려고 남편이 깻잎을 잡아주었다. 이게 아내가 화낼 일인가?

  저도 사람인지라 저 깻잎 논쟁에 대한 저만의 가치관을 담은 대답이 있겠지요. 만약 제가 이 일은 아내가 화를 내야만 하는 일이라고 대답했고, 제 진료실을 찾아올 환자들이 저의 대답을 알고 있다면 어떨까요? 저와는 반대의견을 가진 환자들은 저를 잘 신뢰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 명백히 드러났으니까요. 그래서 정신과 의사가 지나치게 자기 노출을 하면 그 의사를 신뢰하는 것, 즉 긍정적인 전이 형성이 어려울 수 있어요.


  이런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정신과 의사들은 자신이 드러나지 않도록 말을 조심합니다. 마찬가지로 저도 향후에 진료실을 찾아올 모든 분들이 제 부캐가 했던 말들로 피해를 받지 않길 바랍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 에세이와 같은 글들은 쓰지 못할 것이고, 현재 쓸 수 있는 글감들도 한계가 있다고 느낍니다.


#3. 앞으로 써나갈 글의 방향성?

  사실 이번글도 자기 노출의 일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 정도 수준이면 본캐와 공존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앞으로도 본캐와 공존할 수 있는 부캐가 될 수 있도록 자기 노출의 범위를 계속 고민이 필요하겠지요.

  이제까지 제 수준에서 설명할 수 있는 정신분석이론들은 많이 다뤄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주변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고민들에 대해서 정신의학에서 드릴 수 있는 답변들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 답변들을 통해서 나만 가지고 있는 외로운 고민이 아니고, 충분히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고민들이며, 해결을 위해 노력할 수 있는 고민들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일단 계획은 거창하긴 한데요, 막상 다음번에 글은 어떤 고민으로, 어떤 설명으로, 어떤 해결책으로 도움을 드릴 수 있을지 고민이 됩니다. 사실 이번 글도 앞으로의 방향성을 정리하는 의미와 함께, 여러분께 괜히 푸념하고 싶은 사심이 좀 들어있던 것 같아요. 그동안 관심있게 글 읽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매거진의 이전글 독립과 의존, 둘 다 필요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