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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섬 Oct 07. 2024

[단편소설] 네가 여행을 떠난다면 11

어느 날, 제주도에 여행을 떠난이들에게 일어난 환상적인 세가지 이야기

세번째. 여행을 만드는 책 _ 2



 보세요.

 지금 제가 살아있는 걸 느끼는데

 이게 현실이 아니면 뭐에요?



 

 뚜렷하게 세상에 부각되지 않은 32년의 인생이 너무나 허무해서 다시 태어나고 싶었다.

 그녀에게 남은 시간 동안 뭘 할지 고민하는 것 보다 여행을 가서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이

죽더라도 행복할 것이다.

 시간이 없지만 단 몇 달만이라도 다시 태어나야 했다.


 그래서 여행지를 알아보니 난관에 부딪쳤다. 직장생활 7년 동안 워크숍으로 석모도를 간 것이 그녀가 다닌 여행의 전부였고 당장 여행을 떠나고 싶었지만 여권 하나 없던 것이었다.

 시간이 얼마 안 남은 다윤은 그나마 국내에서 최대한 멀리 갈수 있는 여행지로 제주도를 선택했다.

 사실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모르는 나라에서 어설픈 영어를 쓰면서 시간을 보낼 자신이 없기도 했다.


 제주도에 있는 5성급 호텔을 바로 예약하고 땅콩항공의 비즈니스석을 타고 바로 제주도로 떠났다.

 비행시간이 한 시간이 미처 되지 못함을 아쉬워하며 비행기에서 내린 그녀는 렌트한 붉은색 오픈카를 타고 해안도로를 달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바로 오픈카의 뚜껑을 내렸다.

 아주 매서운 봄바람이 부는 제주도였고 그날따라 드물게 한반도 서쪽의 미세먼지가 제주도까지 내려 왔기 때문이었다.

 차를 세우고 TV에 나왔던 명소인 유채꽃밭에 내려서 입장료 천원을 내고 셀카를 찍었는데, 사진 속 다윤 의 얼굴은 추위에 새하얗게 질려 나왔다.

 가뜩이나 아픈 다윤이가 오늘 아니면 내일 삶을 마감하는 사람처럼 나왔다.

 죽을 날이 가까워 오지만 당장 죽는 것도 아닌데 죽을 사람처럼 사진이 나오니 기분이 이상했다.

 봄바람은 계속 바닷가의 한기를 품고 이리저리 휘젓고 다녔고,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강한 바람에 다윤이가 걸어 다닐 때마다 떠밀려 다녔다.


 점심시간이 지나 추위와 허기를 느끼고 근처 식당을 찾아갔지만 가고 싶던 식당은 3시가 넘어 브레이크타임이었다. 간신히 할머니들이 운영하는 향토 식당을 찾아 들어갔지만, 1인분은 안 된다며 눈치를 줘서

2인분의 갈치조림을 시켰다.

 2인분을 시켜놓고 배불리 먹고 싶었지만 의외로 속이 꽉 차지 않고 허전했다.

 옆에 똑같이 갈치조림을 시킨 커플의 테이블을 보니 다윤이의 갈치조림이 더 적게 나온 것 같았다.

 2인분을 시켰지만 1인이 시켰기에 1인분같이 준 2인분이었다.

 그래도 맛은 있었다며 애써 좋은 마음을 가지며 한적한 바닷가 주변의 산책로를 따라 어촌 마을에 들어섰다.


 봄이지만 바람이 불어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등산복을 입은 올레꾼 몇몇이 시골 동네의 올레길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들을 따라 올레길을 따라 걷다보니 초록색 슬레이트 지붕의 창고를 개조한 작은 상점이 보였다.

 입구에 ‘모레책방’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제주도의 까만 돌로 만들어진 투박한 외관에 어울리지 않게 큰 창가 앞에는 예쁜 소품과 책이 진열되어 있었다.

 책방의 주인으로 보이는 여자가 조그만 전기난로를 쬐고 있었다.

 주인은 다윤을 보고 “어서 오세요.” 라고 말하고 청바지에 묻어있던 먼지를 툭툭 털며 일어섰다.

 그리고 서가로 다가가 진열하다가 만 책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책방을 구경하던 다윤 씨는 구석에 놓인 낡은 책 한 권을 발견했다.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하는 제주 여행> 이라는 평범한 제목이었지만,

 여행을 오기 전에 여행사 포스터에서 본 광고 문구와 통하는 부분이 있었기에 책을 집어 들었다.

 특히나 제주에 온지 반나절 동안 춥고 배고프고 눈치를 보며 고생을 한 다윤 씨에게는

 꼭 필요한 여행 서적 같았다.


 책을 읽으려 첫 페이지를 넘기자 그녀의 행동에 무심하던 책방 주인이 갑자기 말을 걸었다.

 “여행이 힘드신가요?”


 다윤은 수줍게 대답을 했다.

 “계획을 세우지 않고 무작정 왔더니 조금 힘드네요.”


 책방주인은 곁으로 다가와서는 벽에 있던 스위치를 켜며 말했다.

 “그럼 당신에게 꼭 필요한 책이네요. 당장은 안 사도 된답니다. 이 책은 힘든 여행을 하시는 분에게 무료로 빌려드리는 책이에요. 특히 행복한 여행에 어울리도록 이 굿즈도 같이 빌려드려요.”


 스위치를 켜서 불이 비추는 곳에는 다윤이가 평생 입어보지 못한 하늘거리는 진한 꽃무늬 원피스와 내추럴한 모자, 진감색 빈티지 코트와 핑크색 메리제인 슈즈, 앤틱버클로 장식된 가죽 캐리어가 눈부시게 자태를 빛내고 있었다.

 “이게 굿즈라고요?”


 특별한 조명이 아닌데도 옷 자체에서 빛이 발산되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다윤이가 여행을 오기 전에 백화점에서 세트로 사 입고 온 보라색 등산복이 초라해 보여서 멋쩍게 자신의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그 옷은 마치 영화에서 보는 아름다운 여배우들이 여행을 다닐 때 입는 그런 옷 같았다.

 그녀들처럼 이렇게 화려한 옷을 입고 다닌다면 오늘처럼 힘든 여행이 반복되지 않지 않을까?

 순간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다.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자아내며 옷을 몸에 대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다윤이는

눈을 반짝이며 주인에게 말했다.

 “이렇게 예쁜 옷을 무료로 같이 빌려주면 안 돌려주는 사람도 많겠어요?”

 그러자 주인은 희미한 웃음을 띠며 말했다.


 “놀랍게도 전부 다 돌려주셨답니다. 돌려주기 싫으시면 다시 오셔서 책값 만원을 주시면 되세요. 물론 책을 사게 되면 이 옷들과 함께했던 시간도 무료로 가지게 되지요.”


 무료로 빌려주는 책과 옷이라 혹시나 나쁜 마음을 먹고 안 돌려 주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은데, 모두가 돌려주었다니!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나중에 생각할 일이었다.




3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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