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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섬 Oct 07. 2024

[단편소설] 네가 여행을 떠난다면 12

어느 날, 제주도에 여행을 떠난이들에게 일어난 환상적인 세가지 이야기

 세번째. 여행을 만드는 책 _ 3



 보세요.

 지금 제가 살아있는 걸 느끼는데

 이게 현실이 아니면 뭐에요?일어난 환상적인 세가지 이야기



 조금 뒤 이미 다윤은 옷을 갈아입고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고 있었다.

 “진짜 신기해요. 옷만 갈아입었는데 머리도 헤어샵에 갔다 온 것처럼 웨이브가 생겼어요. 얼굴도 왜 이리 환하고 입술도 생기 있어 보일까요?”

 주인은 웃음을 지으며 다윤이에게 책을 안겨 주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벽에 걸린 시계를 가리켰다.

 “명심하세요. 이 책과 옷은 24시간 안에 돌려주셔야 해요. 내일 오후 5시까지. 꼭이에요."

 다윤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고 입고 왔던 옷을 서둘러 빈티지 가죽 캐리어에 담았다.

 그리고 책을 가슴에 안고 책방 밖에 나왔다. 태양이 갑자기 다윤의 머리위로 쏟아져 내렸다.

 어디서인가 꽃잎이 흩날리며 그녀의 주변에 흩어졌다. 다윤은 서둘러 주차된 차의 운전석에 앉아 뒤늦게 책방에서 빌린 책에 무슨 내용이 적혀 있는지 읽어 보았다.


 그런데 책 속에서는 마치 다윤을 내려다보고 쓰고 있는 것처럼 주인공이 불치병에 걸리고 여행을 하다가 어느 시골마을에서 산책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을에 있는 책방에 들어가서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내 얘기 같잖아?’ 라고 생각하는 중 갑자기 차의 뒤에서 작은 충격이 느껴졌다. 놀라서 차에서 내려 보니 한 남자가 안절부절 하며 서있었다.


 “죄송합니다. 잠시 딴생각을 하다가”

 남자의 차가 살짝 다윤의 차의 뒤 범퍼에 닿아 있었다.

 “아, 저는 괜찮아요.”

 라고 말하며 남자의 얼굴을 쳐다본 다윤은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남자는 한국인도 아니고 외국인도 아닌 것처럼 금빛이 도는 갈색 머리에 하얀 피부가 빛나고 있었고,

큰 키는 차 뒤에 있던 트럭이 안 보일 정도였다. 연갈색 트렌치 코트를 입은 남자는 코트자락을 펄럭이며 다윤 을 걱정하는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순간 다윤은 무릎이 휘청거려 쓰러지려고 했다. 누가 뒤에서 미는 것처럼 느껴졌다.

 갈색 머리 남자는 다윤의 어깨를 붙잡으며 자신의 가슴에 다윤의 머리를 갔다댔다.

 상큼한 향기가 느껴졌다. 주변에는 차가운 바람이 불지만 그의 품안에서 따뜻함이 느껴졌다.

 몸이 녹아버리는 기분이 들었다. 책을 손에 쥔 다음부터 정신을 차릴 수가 없는 다윤이었다.

 “저, 놀래서 잠시 쉬고 싶어요.”


 항상 목소리가 쉰 것 같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 콤플렉스였던 다윤이었는데,

 목소리마저 청량하고 부드럽게 들려서 다윤이는 내 목소리가 맞는지 고개를 돌리고 헛기침을 해보았다.

 남자는 차에 있던 체크무늬 모포를 가져와서 어깨에 감싸주었다. 그리고 명함을 내밀었다.

 

“저는 브링브링호텔 총괄이사 장성준이라고 합니다. 안심하세요. 일단 렌터카 회사에 전화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운전을 하기 힘드실까 걱정되는데 차는 여기 두시고 병원까지는 제가 데려다 드릴게요.”

 명함을 받은 다윤은 깜짝 놀랐다.


 “어머 제가 오늘 묵는 호텔에서 일하시는군요.”

 갈색 머리 남자도 다윤처럼 깜짝 놀라며 말했다.

 “마침 잘되었습니다. 운전은 위험할 수 있으니 제가 병원에 데려다 드릴게요. 여행하시는 동안 힘드시지 않게 모든 것을 에스코트 해드리고 싶습니다.”


 근처의 병원에 도착을 했다.

 어차피 몇 달 뒤 죽을 운명인데 조금 다친 것이 다윤에게 큰 문제가 될 것 같진 않았다.

 응급실 의사는 아주 친절하게 다윤의 몸 상태를 살폈다.

 그리고 내키지 않지만 장 이사가 자리를 비웠을 때, 자신이 얼마 전 서울에서 위암 말기 진단을 받고서 여행 중이라고 솔직히 말했다.

 다윤의 얘기를 듣고 세밀히 검사를 몇 가지 더 해보겠다던 의료진은 검사 후 그녀의 몸은 아주 건강하다고 암 같은 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뱃속은 아까 전부터 아주 편안하고 따뜻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몸의 에너지도 생기가 돌아서 지금 마라톤을 하라고 하면 당장 런닝화를 신고 뛰어나갈 것만 같았다.

 서울의 병원이 돌팔이던가 제주도의 병원이 돌팔이던가 둘 중에 하나이지만 지금 다윤은 아프지 않음에 감사했다. 만약 서울에 돌아가서 병원을 다시 갔을 때 암이 그대로 남아있다면 그건 그 때 어떻게 할지 고민하기로 했다.


 다윤을 기다리고 있던 장 이사는 그녀가 다치지 않았다는 얘기에 무척 기뻐했다.

 그녀의 인생에서 이렇게 그녀를 걱정해준 남자가 있던가 싶어 미소가 절로 나왔다.

 “워낙 느껴지지도 않는 작은 사고였답니다. 장 이사님이 너무 걱정하시니 미안하기까지 하네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갈색 머리는 다윤의 말에 웃으며 말했다.


 “너무나 배려 있으신 데다 다정하기까지 하시네요.”

 갑자기 다윤과 장 이사의 눈빛에 강한 스파크가 튀고 두 사람의 콧김이 뜨거워졌다.

 과거의 다윤은 이성과의 썸이 생기려다가 이뤄지지 못하고 수그러들었던 적이 많았다.

 주로 다윤이가 흥분해서 넘어지거나, 컵이 엎어지고, 목소리가 갑자기 이상하게 나오는 등 연애에서 을이 되는 힌트를 상대방에게 들켜버렸기 때문이라 짐작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장 이사의 눈빛이 다윤보다 더 강렬했다. 분명히 과거의 썸과는 다른 운명적인 느낌이었다.


 “오늘 하루 저 때문에 여행을 망쳤을 텐데, 제가 같이 동행하고 싶어요. 거절하신다면 다음 목적지까지만이라도 태워드리고 싶습니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운명, 다윤은 오늘 처음 만난 이 갈색 머리 남자를 따라가서 벌어질 일들이 두렵지 않았다. 다윤은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웃으셨으니 허락하신 걸로 알겠습니다.”

 사실 목적지는 없었다. 워낙 추운 날 여행을 했고 몸이 피곤했기 때문에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바다가 보이는 해안도로 옆에 자리한 카페에 도착했다. 갈색 머리 남자는 서둘러 내려서 다윤이가 내릴 옆 좌석의 문을 열어 주었다.


 순간, 자연스럽게 내리던 다윤의 눈에 건너편에서 이쪽으로 하얀 강아지가 건너오는 모습이 보였다.


 강아지는 태연하게 길을 건너고 있었고, 그걸 보지 못한 덤프 트럭이 전속력으로 질주해 오고 있었다.




4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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