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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섬 Oct 17. 2024

[단편소설] 네가 여행을 떠난다면 14

어느 날, 제주도에 여행을 떠난이들에게 일어난 환상적인 세가지 이야기

 세번째. 여행을 만드는 책 _5



 보세요.

 지금 제가 살아있는 걸 느끼는데

 이게 현실이 아니면 뭐에요?어난 환상적인 세가지 이야기



  실망하는 다윤의 손을 장 이사가 다정하게 잡고 이야기 했다.

  “저희 리조트가 애완동물 동반 가능한 리조트를 건설 중에 있어요. 개, 고양이부터 햄스터, 도마뱀까지 머무를 수 있는 아주 행복하고 획기적인 곳이죠. 신관은 이미 공사가 되어 준공을 마치려 하고 있습니다. 마침 마케팅이 관건이었는데 다윤씨 같이 동물을 사랑하여 몸을 내던진 인재가 저희 리조트의 마케팅을 담당해 주신다면 어떨까요?”


  장 이사의 제안은 희한한 이 세상에서 머무를 것인지 결정을 내리라는 메시지와도 같은 것이었다.

  “예? 저는 그냥 광고회사에서 전단지 같은 걸 디자인 하던 사람이었는데…….”

  “다윤씨, 그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데요. 저희 애완동물 동반 가능 리조트의 홍보 전단지를 만들어 주세요. 그건 정말 아무나 못 하는 일이에요! 연봉 10억에 스위트룸에서 평생을 지내시도록 해드리겠습니다.”

 숨이 턱 막히는 제안에 장 이사는 쐐기를 박았다.


 “다윤씨, 여기는 그런 곳이에요. 아무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하지 않는 선의의 일을 하는 사람에게 백배 천배의 보상이 이루어지는 세상이에요. 아무도 그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고요.”


 “저 잠시 나갔다 올게요. 어제 장 이사님을 처음 봤던 그곳에서 확인할 게 있어요.”

 서둘러 뛰어가는 다윤의 뒤통수에 대고 장 이사가 소리쳤다.


 “다윤씨만 생각하세요. 오늘 5시까지 결정해 주셔야 해요. 안 그러면 우리는 다시 기다려야 할지도 몰라요.”


 다급하게 뛰어가는 다윤의 뒷모습을 슬프게 바라보던 장 이사는 통로를 터덜터덜 걸어가며 말했다.

 “나도 사라질 지 모른다구요.”


 다윤은 가방 속에 들어 있던 책을 꺼내어 펼쳐봤다. 책에는 어제 다윤이 봤던 페이지보다 훨씬 더 많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다윤과 똑같은 일을 겪은 주인공은 역시나 호텔에서 스카우트 제안을 받았고 거기서 이야기는 끊겨 있었다.



 


책방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어제처럼 주인은 물건을 정리하고 있었다.

 다윤이가 들어오는 것을 보자 약간 놀라듯이 말했다.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책을 반납하러 오셨네요.”

  “저…… 뭔가 이상해요.”

  “무엇이요?”

  “이곳에서 이 책을 빌린 후 주변의 모든 것들이 변했어요.”


  주인은 놀라지 않았고 책의 비밀을 알고 있는 듯 했다.


 “그래요. 그 책을 빌리는 순간부터 인생이 변하기 시작하죠. 자신이 원하는 삶이 있으면 그렇게 펼쳐지게 만들어 주는 게 그 책이에요.”

 주인은 손을 내밀었다.

 “이제 책하고 옷, 모든 걸 돌려주세요. 다시 돌아가셔야죠.”


 다윤은 한발 물러섰다. 불안한 눈빛을 하며 주인에게 물었다.

 “만약 당신이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면, 갈 건가요?”


 주인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난 이곳을 선택해야만 했었죠. 당신은 달라요?”


 “전 아주 힘들었거든요. 전 어차피 몇 달 뒤 죽어야 하는 사람이에요.”


 주인은 다윤이가 물러난 만큼 다시 다가갔다.

 “지금 당신의 모습은 환상일지도 몰라요. 냉정하게 생각해봐요. 현실 속의 당신의 삶이 기다리고 있어요.”


 다윤은 이렇게 숨 쉬고 말을 하고 있는데 무엇이 환상이고 무엇이 현실일까 생각해 봤다.

 확실한 것은 지금 다윤은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


 “지금 이곳에서 저에게 행복이 시작되고 있어요.”


 주인은 꼭 책을 받아야 하는 사람처럼 간절하게 다윤을 설득했다.

 “여기서 살고 있으면 살아 있는 것 같을까요? 그리고 아깝지 않아요? 그동안 살아온 나날들이?”


  “제가 이 책을 반납하면, 어떻게 되나요?”


 “그냥 어제의 저 렌트카를 타고  여행을 다시 하시면 되죠.”


 주인의 시선이 향한 책방 창밖으로 어제 다윤이가 타고 왔던 렌트카가 그늘이 내려앉은 채 서있었다.


 “제가 이 책을 사게 되면요?”

 “글쎄요. 당신이 가지게 되는 거죠. 그 책과 함께 그 거짓 같은 환상을요.”


 다윤은 주인의 흔들리는 눈빛을 보고 무언가를 깨달았다.


 “이 책을 샀던 사람이 그동안 없었던 건가요?”


 주인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내가 산 이후로는 없었죠. 이 책과 함께 환상이 시작된 걸 알게 된 사람들은 대부분 현실로 돌아가려 허겁지겁 책을 반납하러 와요. 돌아갈 곳이 있으니까, 그렇지만 난…….”


 주인은 말을 잇지 못했다.

 다윤은 지갑에서 만원을 꺼내어 주인에게 건넸다.


 “아니 책방 주인이 손님이 책을 산다는데 표정이 왜 그러세요?"


 책방 창 밖 멀리서 밝은 빛이 비추어 오기 시작했다.


 "보세요. 지금 제가 살아있는 걸 느끼는데 이게 현실이 아니면 뭐에요?

  여긴 제가 주인공인 행복한 곳이라구요.”


 다윤은 당황한 표정의 주인을 뒤로하고 책방을 나왔다.

 거리에는 다윤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찬사를 하며 몰려드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했다. 그리고 어디서 나타났는지 갈색 머리 장 이사가 차 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었다.

 장 이사에게 다가간 다윤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고맙지만 제가 알아서 갈게요.”


  어둠이 내리쬐던 다윤의 붉은 오픈카는 어느새 헷빛에 반짝이며 서있었다.

  어디서 떨어지는 것인지 모를 꽃잎들도 뿌려지고 있었다. 다윤의 앞날은 뭘 하던 잘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다윤이가 운전대를 잡은 오픈카가 사라지자 모여들었던 사람들은 마치 볼일이 있었던 것처럼

 제각자의 길로 흩어져 갔다.


 다윤에게 돈을 받은 책방 주인은 한동안 멍하니 서있었다.

 오래 전 바닷가에 쓰러진 그녀를 간호해줬던 점방 할머니가 생각났다.

 그녀가 회복하고 난 뒤 할머니는 그녀에게 그 책을 팔며 말했었다.

 “나가 7년을 가지고 사라부런, 아무도 안 산다 해서."


  점방을 나서는 할머니는 홀가분해 보였었다.

 "이렇게 가지고 싶은 사람 나타나멘 후딱 떠날 때가 된 거라.”


 책방 주인은 불을 끄고 블라인드를 내리고 책방을 나왔다.

 바닷가에서부터 하얀 해무가 마을길을 타고 들어왔다.

 그녀가 책방의 문을 닫고 돌아서자 해무는 책방을 덮치고 가버렸다.

 그녀는 책방에 미련이 없다는 듯이 뒤돌아 걸어갔다.

 어느새 그녀의 옷은 이 세계로 왔을 때 입고 있었던 노란색 티셔츠와 하늘색 꽃무늬 바지로 변하고 있었다.


 그녀가 바다를 향해 총총 걸어가는 모습은 발걸음이 너무나 가벼워서 마치 공기 속으로 걸어가는 것 같았다.



모든 이야기가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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