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쟁이 아빠의 말발[말빨]육아

by 와룡선생

한국인이라면 어린 시절 누구나 겪었을 것이다.


왜 그랬냐고 다그치는 어른들께 이유를 말씀드리면

“어디서 말대꾸야?”

말하라고 해서 말했는데 말대꾸한다고 혼난다.


그렇다고 아무 말도 안 하면

“말해보라니까, 왜 아무 말도 안 해?”


억울해서 울면

“뭘 잘했다고 울어?”


이건 뭐, 말을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퇴로가 없는 막다른 골목에 몰아 놓고서는 어쩌라는 건지...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내 자식에게만큼은 '말대꾸의 자유'를 허하겠노라고.

요구할 것이 있거나, 변론할 것이 있으면 해라.

대신 조건이 있다. 감정이 아니라 '논리'로 아빠를 이겨야 한다.

나도 아이를 혼내기보다 설명과 설득으로 납득시키리라.

이른바 '계급장 떼고 다이다이로 붙는 말발육아'의 시작이다.



설득에 앞서 기다려주기


문과 아빠라고 해서 처음부터 논리로 아이를 가르치려 들면 안 된다. 설득보다 중요한 건 '기다려주기'다.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먹어 볼 시간을 주어야 한다.


우리 딸의 유딩시절, 그 또래 아이들이 그렇듯. 무지개떡, 형형색색의 아이스크림, 눈이 시릴 정도로 화려한 사탕 이런 것들을 좋아했다.


“인공 색소 들어간 것은 몸에 안 좋아. 그건 먹지 마!”

보통은 이런 말을 했겠지만, 나는 절대 이러지 않는다. 그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


"그거 보기만 예쁘지 맛은 별로야"라고 훈수를 둘 수도 있지만 일단 접어둔다.

아이가 각종 색소 속에 가려진 맛을 스스로 보게 만들어줘야 한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었을 때 슬쩍 훈수를 둔다.

“개똥아, 색깔이 예쁘다고 꼭 맛있는 건 아니야.

그러고 나서 어느 날부터인가 아이의 취향은 '초코'로 정착했다.

설득에도 타이밍이 있다.



신뢰를 주면 떼쓰지 않는다.


말발로 육아를 한다는 건, 역설적으로 자기가 뱉은 말에 책임을 지는 것에서 완성된다.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였나,

어느 날 TV에 나오는 판다를 보던 딸아이가 "아빠, 나 판다 실제로 보고 싶어!"라고 말했다.

"그래, 보러 가자"라고 무심코 대답을 했는데, 아차 싶었다.


당시 한국에는 판다가 없던 시절이었다(에버랜드에 아이바오와 러바오가 들어온 건 2016년이다).

보통의 아빠라면 "나중에 보러 가자"라고 얼버무렸겠지만, '말발 아빠'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대만행 비행기 표를 끊었다.

대만 타이베이 동물원에는 판다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만에 도착한 다음 날 아침, 우리의 첫 일정은 당연히 판다 보러 가기였다.

대만판다.png

공자의 제자 중 한 사람이었던 증자(曾子)가 장난으로 "돼지 잡아줄게"라고 말한 아내 대신 진짜로 돼지를 잡았던 '증자살체(曾子殺體)'의 일화는 나에게는 육아지침이었다.

부모가 약속을 지킨다는 믿음이 쌓이면, 아이는 더 이상 떼를 쓰지 않는다.



어른은 벼슬이 아니라 '말이 통하는 파트너’

나는 아이를 훈육할 때도 "아빠가 하라면 해!"라는 말은 절대 쓰지 않는다.

대개는 경험과 연륜이 풍부한 아빠가 이기지만,

대화와 설득을 통해서 절충안을 이끌어내기도 하고,

아이의 주장이 논리적으로 맞으면 기꺼이 아이의 말을 수용한다.

어른은 벼슬이 아니다.

그저 아이보다 조금 더 많은 단어를 알고, 조금 더 일찍 실패해 본 경험이 있는 '대화 상대'일뿐이다.

오늘도 나는 딸아이와 토론을 준비하며 논리를 가다듬는다.

준비 됐으면 드루와!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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