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에서 배우는 패배 면역력
전광판에는 믿기지 않는 숫자 '7:0'이 새겨져 있었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브라질 홈팬들은 이미 자국 축구 대표팀에 대한 야유를 퍼붓고 있었다.
그렇게 경기가 끝나는가 했는데, 종료 직전 브라질의 오스카 선수가 만회 골을 터뜨렸다.
순간 카메라에 잡힌 독일 골키퍼 마누엘 노이어 선수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그는 수비진을 향해 불같이 화를 냈다.
이미 7골이나 앞선 상황에서 한 골쯤 내주는 게 무슨 대수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노이어에게 그것은 '승패'의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의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지 못했다는 프로로서의 자책이자,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최선을 다하지 않은 동료들에 대한 질타였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생각했다.
'상대에 대한 진정한 존중은 적당히 봐주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내 모든 실력을 쏟아붓는 것이다.'
눈이 많이 내리는 날이면, 우리는 눈사람 만들고 서로 썰매 밀고 끌어며 놀았다.
그러고 나면 자연스럽게 눈싸움으로 넘어간다.
우리는 경기 시작 전에 ‘핸디캡’을 정한다.
아빠는 왼손만 쓰기.
경기가 시작되면 룰 안에서 최선을 다한다.
'슬슬' 한다거나 져주기는 없다.
나도 아이도 쉴 새 없이 눈덩이를 뭉치고, 사정없이 던진다.
결코 봐주는 법은 없다. 져주는 게임만큼 재미없는 건 없으니까.
아이는 아빠의 매운 왼손 공격을 피하며 스스로 전략을 짰고, 어쩌다 나를 명중시켰을 때는 매우 즐거워했다. 설령 지더라도 눈물을 닦으며 다시 도전하는 법을 배웠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회복탄력성(Resilience)', 즉 실패에 대한 내성은 그렇게 눈밭 위에서 조금씩 단단해졌다.
명절마다 벌어지는 100원짜리 윷놀이판에서는 손절의 타이밍을 배웠다.
우리는 딱 세 판만 하기로 약속하고 시작한다.
약속한 세 판이 끝나고 아이가 돈을 잃어 속상해하는 때에 나는 슬그머니 제안을 건넨다.
“지금까지 잃은 돈 다 걸고 마지막 한 판 더 할까?”
이른바 “똘똘말이(더블업)”의 유혹이다.
처음 몇 번은 본전 생각에 덥석 물었다가 두 배로 잃고 쓴맛을 본 아이는 더 이상 똘똘말이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
이제 딸아이는 아무리 속상해도 정해진 판이 끝나면 깔끔하게 손을 털고 일어난다.
승패에 대한 절제력과 손실을 인정하고 멈추는 '손절 능력'을 체득한 것이다.
이 승부사 교육법은 40년 전 나의 아버지께 전수받은 방법이다.
아버지는 접바둑을 두든, 윷놀이를 하든 결코 져주는 일이 없었다.
한 번은 내가 아버지와의 100원짜리 윷놀이에 져서 분한 마음에 울음을 터트렸다가 크게 혼난 적이 있었다.
“게임에서 졌으면 진 거지, 사내놈이 그깟 일로 왜 우느냐!”
당시엔 그 호령이 참 서러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표현은 투박했지만, 아버지가 나에게 전하려고 했던 것이 무엇인지 알겠다.
결과에 승복할 줄 아는 용기와,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냉정함, 그리고 남자로서의 단단한 마음을 가르쳐 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내 딸도 승부에서는 최선을 다하되, 승리에는 겸손하고, 패배에도 의연하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날이 오리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