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간주의 공부법

by 와룡선생

어린 시절, 우리 집에 놀러 왔던 친구 녀석이 거실을 둘러보더니 툭 내뱉었다.

"야, 너네 집은 무슨 절간 같냐? 놀 게 하나도 없어."


그도 그럴 것이, 친구들 집에 하나씩은 있던 게임기는커녕 흔한 유선방송이나, 위성방송조차 우리 집엔 없었다. PC는 누나가 대학에 간 뒤에야 과제 작성용으로 겨우 구경할 수 있었다.


빠듯한 살림에 고정비용을 줄이려던 부모님의 고육지책이었겠지만, 의도치 않게 우리 집은 세상의 소음이 차단된 '수행의 공간'이 되었다.

그리고 그 적막함은 어쩔 수 없이 나를 책상 앞에 앉게 했다.

책을 읽든, 공상을 하든, 숙제를 하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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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아빠가 된 나의 집도 풍경은 비슷하다.

아, 그렇다고 우리 집에서 인터넷이 안터진다는 건 아니다.

우리 집에도 인터넷 들어오고 와이파이 터지고 IPTV가 연결은 되어 있지만,

우리 집엔 지금도 게임기나 PC게임은 물론 그 흔한 모바일 퍼즐게임 조차도 깔려 있지 않다.



부모가 게임을 하면 아이도 하고 싶다


이러한 유해환경 차단 기조 속에서도 잠깐 방심했다가 뜨끔했던 일이 있었다.

딸아이에게 스마트폰이 없던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내 스마트폰에 깔아둔 농장 게임이 화근이었다.

화면 속에서 밀과 옥수수를 키우고 소와 돼지에게 먹이를 주면서 평화롭게 나만의 농장을 키워나가고 있었는데, 어느샌가 딸아이가 내 어깨너머로 게임을 지켜보고 있었다.

녀석은 틈만 나면 내 옆에 붙어 농장이 커가는 것을 구경했고, "이제 들어가서 숙제해"라는 말에 눈물을 글썽이며 방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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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뒷모습을 보며 깨달았다. '아차, 내가 게임을 하면 아이도 게임을 하고 싶겠구나.'

그날로 나는 내 휴대폰에 있던 모든 게임을 지웠다.

아이에게 하지 말라고 하기 전에, 내가 먼저 하지 않는 것.

그것이 '절간주의'의 첫 번째 계율이었다.


덕분에 우리 아이는 집을 가장 편안한 공부방으로 여겼다.

요즘 아이들이 전전하는 스터디카페(스카)에 갈 이유가 없었다.

집이 이미 완벽한 '스카'였으니까.



거실 공부법의 수정판


아이는 자기 방에서 공부를 하되, 문을 살짝 열어두었다.

공기와 소리는 공유하고, 시선은 차단하는 것이다.

한때 유행하던 거실 공부법의 수정안인 셈이다.


아이가 공부하는 동안에는 우리 부부는 절대 TV를 켜지 않았다.

대신 각자 책을 읽거나, 이어폰을 끼고 조용히 유튜브를 봤다.



"TV 소리 없고, 게임 없는 집."


누군가는 숨 막힌다 할지 모르지만,

이 적막함은 아이에게 '나만 공부하는 게 아니라 우리 가족이 함께 이 시간을 견디고 있다'

든든한 시그널이 되었다.

학원비도 만만치 않은 시대에 '스카' 비용이라도 아꼈으니, 빠듯한 월급에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되었다.


긴 입시의 터널을 지나 아이가 원하는 결과를 얻었을 때, 나는 다시 한번 이 '절간주의'를 떠올렸다.

부모가 먼저 욕망을 절제하고 조용한 환경을 만들어준 것이 아이에게는 가장 큰 응원이 아니었을까.


아, 오해는 마시라. 우리 집이 진짜 절간은 아니다.

우리도 고기는 즐겨 먹는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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