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 '놀아주는 아빠, 같이 노는 아빠'에서 아이와 함께 노는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아이는 언제까지나 내 품 안의 아기로 머물러 있지 않는다.
퇴근길, 현관문을 열면 달려와 안기던 아이가 어느 순간 방문을 닫고 자신만의 성을 쌓기 시작하는 시기,
바로 사춘기다.
많은 부모가 이 시기에 당황한다.
"우리 애가 변했어요", "무슨 말을 해도 단답형이에요"라며 하소연한다.
하지만 사춘기 아이와의 대화와 교류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쌓아온 시간의 두께가 비로소 빛을 발하거나, 혹은 그 빈약함을 드러내는 시기가 바로 이때다.
부모와 자식 관계를 흔히 천륜(天倫)이라 하지만, 그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는 것은 철저히 서로의 '노력’에 달려 있다.
‘서로’의 노력이라고 했지만, 99%는 부모의 노력이 필요하다.
신체와 정신이 미성숙한 미성년자에게 이성적인 사고와 노력을 요구할 수 없으니, 부모가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아이가 고등학생 시절에도, 또 대학 입학을 앞둔 지금도 많은 대화를 나눈다.
아이가 사춘기가 되면 방문에 “아빠 출입금지”라고 써 붙여 놓는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다행히 나는 출입금지를 당하지 않았다.
그 비결을 공유해 보고자 한다.
일단,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이 있다.
“꼰대금지”
권위적이어서는 안 된다.
이런 말 꺼냈다가는 본전도 못 찾겠다 싶은 대화 상대에게 마음을 열고 말을 할 사람은 없다.
마음을 열고 아이가 어떤 말을 꺼냈을 때 무조건 훈계로 귀결되지 않는다는 전제로 몇 가지 방법론을 이야기해 보겠다.
첫째, 밥상머리 대화의 힘이다.
나는 아무리 바빠도 하루 한 끼 이상은 아이 포함 온 가족이 같이 식사를 것을 원칙으로 삼아왔다.
사회생활에서도 밥을 같이 먹는 행위가 친분의 기본이듯, 가족도 마찬가지다. 식탁은 가장 자연스러운 대화의 장이다.
사춘기 아이에게 "공부는 잘 되니?", "숙제는 다 했니?" 같은 질문은 대화를 차단하는 지름길이다.
할 말이 없다면 가장 원초적인 것부터 시작해 보자.
"오늘 급식 뭐 나왔어?"
이 한마디면 충분하다. 어떤 메뉴가 맛있었고, 무엇이 맛없었는지 이야기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대화의 물꼬가 트인다. 맛없는 반찬 이야기를 하다가 밥을 빨리 먹고 매점에 간 이야기, 매점에서 만난 친구 이야기, 그리고 그 친구와 있었던 일, 수업 시간 선생님 이야기로 주제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둘째, 뒷담화의 기술과 전략적 공감이다.
아이가 학교생활 이야기를 하다 보면 특정 친구나 선생님에 대한 험담이 나오기 마련이다.
이때 부모의 역할은 '판사'가 아니라 '변호사' 혹은 '상담사'여야 한다. 일단 들어줘야 한다. 아이의 감정을 읽고 "아, 정말 화났겠다", "속상했겠네"라며 충분히 공감해 주는 것이 먼저다.
훈계는 그다음이다.
선생님에 대한 험담일 경우, 마무리는 신중해야 한다.
"선생님도 그럴 만한 사정이 있으셨겠지"라며 아이의 감정을 다치지 않게 하면서도 중립적인 시각을 제시하는 것이 좋다.
이는 단순히 인성 교육 차원을 넘어 아이의 성적과도 직결되는 문제다.
모두들 경험이 있겠지만, 해당 과목 선생님이 싫어지면 그 과목 공부도 하기 싫어진다.
더구나 요즘 입시는 세특(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이나 수행평가가 중요하다.
무의식 중에라도 선생님을 싫어하는 티를 내면 알게 모르게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친구에 대한 험담 역시 공감은 해주되, 아이가 학교에서 감정을 드러내지 않도록 조언해 주는 것이 현명하다. 혹시라도 친구가 감정에 상처를 입으면 학폭 사건에 연루될 수도 있다.
셋째, '함께 공부하는 척'이라도 해보자.
부모가 아이의 학습 내용을 꿰뚫고 있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아이가 지금 무슨 과목을 배우는지, 선택과목은 무엇인지,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는 알아야 한다.
만약 부모의 전공이나 관심사와 겹치는 과목이라면 적극적으로 도와주면 좋다.
아이의 질문을 해소해 주거나 과제를 도와줄 때 아이가 부모를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진다.
"아빠, 이것도 알아?"라는 반응이 나오면 성공이다.
나는 아이와의 공감대 형성을 위해 같이 공부했다.
아이가 초등학생일 때는 한자능력시험을 같이 응시했고, 아이가 중학생이 되는 해에는 한국사능력시험 1급에 합격했다.
만년 초보를 맴도는 나의 일본어 실력도 아이가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선택했을 때 훌륭한 대화 소재가 되었다.
함께 시험장에 들어가고, 같은 문제를 고민했던 경험은 '공부해라'라는 백 마디 잔소리보다 훨씬 강력한 유대감을 만든다.
넷째, 차 안은 최고의 데이트 장소다.
시간이 허락하는 한, 나는 아이의 학교나 학원 라이딩을 도맡아 했다.
연인들이 드라이브하며 친해지듯, 밀폐된 차 안에 단둘이 있는 시간은 마법과 같다. 집에서는 방문을 닫고 들어가는 아이도 차 안에서는 갈 곳이 없다.
운전대를 잡고 아이의 이야기를 듣는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뉴스에 대해 한 마디 툭 던지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자연스럽게 시사 상식도 늘려주고, 아빠의 가치관도 공유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시간의 백미는 가끔 터져 나오는 '엄마에 대한 성토'다. 엄마의 잔소리에 대한 불만을 아이가 털어놓을 때, 적당히 맞장구치며 생기는 그 묘한 전우애. 이건 우리 부녀만의 비밀이다.
단, 여기서도 앞서 말한 선생님에 대한 뒷담화처럼 “엄마를 이해해 드리자”로 훈훈하게 마무리해야 한다.
사춘기 아이와의 대화, 결국 거창한 방법론이 아니다. 밥을 나누고, 차를 타고, 같은 시험지를 들여다보며 쌓아온 소소한 시간들이 모여 굳게 닫힌 방문을 여는 열쇠가 된다.
그렇지만, 그 열쇠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으니 지속적인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
탯줄로 이어져 있던 엄마와 달리, 아빠와 아이와의 친밀도는 아이에게 들인 시간에 비례한다.
아이와의 관계는 저축과 같아서, 어릴 때부터 적립해 둔 시간과 관심이 사춘기라는 시기를 버티게 해주는 자산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