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 <외동예찬>에서 밝혔듯, 나는 고심 끝에 아이를 하나만 낳아 잘 기르기로 했다.
아내의 건강상의 문제로 한 결정이지만, 마음 한구석엔 아이가 자라면서 외롭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외동일 수 밖에 없다면, 내가 아이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주는 것.
그 다짐이 내 육아의 출발점이었다.
흔히 가사 분담을 이야기할 때 "남편이 아내를 도와준다"라고 말하면 십중팔구 혼쭐이 난다.
집안일이 어디 아내만의 몫인가.
'도와준다'는 말속에는 나는 주체가 아니라는, 그저 선심 쓰는 조력자라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자기 집 일을 자기가 하는 건 당연한 이치다.
아이와 노는 것도 마찬가지다.
많은 아빠들이 무의식 중에 "주말에 애랑 놀아줬어"라고 말한다.
'놀아준다'는 동사에는 의무감이 묻어 있다.
마치 힘든 업무를 연장 근무하듯, 희생하고 봉사한다는 뉘앙스다.
나는 그 '주다'라는 보조 용언을 떼어내기로 했다.
의무적으로 놀아주는 것이 아니다. 노동이 아니다.
나는 내가 즐거워서 아이와 노는 것이다.
이 작은 차이는 생각보다 거대한 결과를 만든다.
억지로 몸을 움직이는 게 아니라, 내가 즐거워서 판을 벌인다.
아이와 함께 놀다보면 아이도 즐겁고 나도 즐겁다.
놀이 도중 아이의 꺄르르 웃는 소리가 나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 순간만큼은 어떠한 권력자도 재벌도 부럽지 않았다.
물론, '내가 돈이 더 많았다면 아이에게 더 좋은 환경을 줄 수 있었을텐데...'
이런 가정을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그건 놀이가 끝난 이후의 고민이고
아이와 노는 순간만큼은 놀이에 집중했고 또한 한없이 행복했다.
그 행복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 나는 기꺼이 퇴행을 선택한다.
아이와 마주 앉았을 때 나의 정신 연령은 내 아이와 맞추어졌다.
체면도, 어른의 무게도 내려놓고 철저히 동심으로 돌아간다.
나의 32년전 기억을 더듬어 유치한 장난과 놀이들을 꺼내 놓으면 아이는 매우 재밌어 했다.
레고 블록으로 같이 집을 짓고, 종이 인형에 옷을 함께 입혔다.
오목, 알까기, 윷놀이도 함께 하고,
여름엔 물총놀이와 물놀이를 하고, 겨울엔 눈사람 만들기와 눈싸움을 했다.
트렘펄린, 킥보드, 포고스틱(일명 스카이콩콩)을 함께 탔다.
아이와 함께 타려고 버리지 않고 묵혀 놓았던 인라인 스케이트와 스키도 꺼냈다.
아이와 함께 다시 성장하다보니,
키즈카페, 박물관, 어린이 공연 등 내가 성장할 때에는 없던 것들이 많이 생겨서
너무 신기하고 재밌고, 새로 배우고 다시 성장하는 기분이었다.
아이와 함께 다시 성장하는 것은 희생이 아니라 부모의 특권이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내가 아저씨겠지만, 나는 32년이 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