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들이 있는 곳이 곧 천국

역마살 이야기 8 Mongolia, South Gobi

by 역맛살


인간의 감정은 누군가와 만날 때와 헤어질 때 가장 순수하며 가장 빛난다.


- 샹 폴 리히터


좋은 시간을 보낼 때면 시간이 흘러간다는 생각을 망각하고는 한다. 그래서일까, 처음 공항에서 맡은 퀘퀘한 공해 내음이 마치 어제 일만 같은데 나도 모르는 사이 일주일이 넘는 시간이 훌쩍 흘러가버렸다. 그리고 이제 스쳐지나간 시간을 뒤로 하고 오늘은 정들었던 몽골을 떠나는 날이다.


이든의 가족은 나의 마지막을 배웅하기 위해 터미널까지 함께 했다. 그동안 내게 베풀어 주는 어느 것 하나 계산하지 않고 나를 가족처럼 대해주었던 이든과 가족이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마음을 휘젓고 갔던 '사람의 정'이란 것은 쉽사리 발걸음을 돌리지 못하도록 붙잡아두었다. 그리고 그동안 받았던 사랑과 고마움의 크기만큼이나 떠나는 마음의 무게는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너무 행복했기에 아플 수 밖에 없는 이별이었다.

새로운 세계와 새로운 사람들과의 수없이 반복되는 여행자에게 어쩌면 이별이란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평범한 것이지마는, 오늘은 결코 평범할 수 없었던 이별이다.

하지만 결국 떠나야 한다는 것은 숙명과도 같았기에 먹먹한 마음을 뒤로 하고 그들에게 꾹 다문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런 그들과 뜨거운 포옹을 하고 나서, 이별의 마지막이 무거워지지 않도록 다시 한번 애써 환한 웃음을 지으며 돌아섰다.


머지 않아 몽골의 수도로 향하는 승용차에 올라탔고, 이런 내 마음과 달리 차창 밖으로 바라본 초원의 풍경은 한 없이 넓고 평화로웠다. 그리고 떠나는 길 위에 그 모습을 바라보니 갑자기 작은 두 눈에서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붉어진 눈시울을 감추기 위해 지그시 눈을 감고 나니 짧은 시간동안 함께한 시간들의 기억이 뚜렷해졌다. 그렇게 잠시 감은 눈으로 흘러가는 파노라마 속에서 생생한 그들의 미소, 손에 담긴 온기, 포옹에 어린 여운를 느낀다. 이렇게 눈을 감고 그리운 모습을 꺼내보니 가냘픈 속눈썹 사이로 흘러나오는 눈물은 더 뜨거워지고 있었다.

이런 나의 휑한 마음을 헤아렸는지 황금빛으로 익은 초원은 자신이 가진 넓은 아량을 보이며 어린아이를 달래 듯 내 마음을 토닥거려주었다.


얼마간 흘러나온 눈물을 닦아내고 붉어진 눈시울이 다시 원래의 색깔을 되찾을 즈음, 옆에 앉은 한 할머니가 살트(염소 우유를 숙성시켜 딱딱하게 만든 음식)를 4개씩이나 나의 손에 쥐어주셨다. 잘 숙성된 살트의 고약한 냄새와 톡 쏘는 살트의 위력을 알았기에 망설였지만 한없이 푸근한 미소로 건넨 할머니의 살트를 버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것을 받고서 에라 모르겠다 하며 몽땅 입에 넣어 버렸고, 입 안에서 부대끼는 살트를 잇몸 구석구석으로 밀어 넣고 조금씩 혀 위로 꺼내어 깨물어 먹었다.

그런데 처음에 이든의 집에서 과자인 줄 알고 실수로 먹었을 때와는 다르게 거북하지 않았다. 오히려 새콤함 같은 것이 은은하게 퍼지며 오랜 숙성의 맛을 선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시간의 맛은 마음 속의 추억과 함께 다시 우러나고 있었다. 내가 감상적인 일에 빠져서 혀에 불감증이 생긴 것이 아니었다. 분명 살트의 향과 맛은 변함없이 똑같았다.

몽골에서 지내는 동안 이 지독한 살트가 내게 익숙해질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런데 언제 이렇게 살트의 맛을 알게 된 것일까. 그만큼 몽골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깊게 스며들고 번져버렸다. 그러나 이제 내게 남은 마지막 할일은 떠나는 비행기에 몸을 싣고 떠나는 것뿐이었다. 앞으로 나는 혼자가 된 낯섦이 다시 익숙해져야했다.



몽골에는 사랑하는 이의 눈빛만큼 빛나는 별과, 끝을 찾아볼 수 없이 드넓은 초원과, 굴레를 벗어나 자유로운 가축들, 그리고 한 가지 더. 바로 천사들이 있었다. 이곳 몽골은 헤아릴 수 없는 축복을 선사해준 천사가 있었기에 안락한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아직도 눈 속에 아른거리는 그대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그립다.


자동차는 계속 달리고 점점 사우스 고비와 이든의 가족들과 멀어지고 있었다. 비스듬해진 석양이 나의 가는 길을 위로하고, 초원 위에 남은 빛들은 점점 석양 쪽으로 향하며 사라져 갔다. 아름답게 작별하며 떠나는 그빛을 멍하니 바라보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동안 함께 했던 모든 것을

이제 마음에 고이 담아두고 떠납니다.


함께 있지 않지만

평생 잊지 않을게요.


그동안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여행은 언제나 즐거움과 동시에 이별의 힘겨움을 안겨 준다.

사실 여행지를 떠나는 것은 힘들지 않았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사람을 떠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알고 있었다.


만남은 기약할 수 없고.

지금의 헤어짐이 곧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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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없는 여행 에세이 담고 있습니다.


글/ 사진_ Instagram@jongminzz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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