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마살 이야기 7 Mongolia, South Gobi
삶에서 가장 순수했던 어린아이의 시절로 돌아가라
- 나단 사와야
3월이 되었어도 찬바람이 슝슝 부는 몽골은 아직 무척이나 춥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바람을 맞으며 어렴풋이 덜 깬 잠을 깨기 위해 단출하게 남방 하나를 걸쳐 입고 밖으로 향했다. 그러자 게르 저편에는 한 폭의 그림처럼 멋진 설산이 여전히 고비의 배경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아름다운 한 폭의 수채화를 거닐던 중, 어느 게르 앞에 모여 소꿉장난을 하고 있는 몇몇의 아이들이 보였다. 아이들의 얼굴을 보아하니 맹렬히 부는 찬바람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불그스름한 볼때기에 까슬까슬한 허연 버짐이 핀 아이, 걸쭉한 콧물이 코 끝에 걸쳐있는 아이, 건조한 겨울바람에 콧물이 그대로 굳어버린 아이. 그 순수하고 귀여워 보이는 아이들의 모습에 잠시 말이라도 걸어 볼까 해서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자고로 미소는 사람의 경계심을 허무는 좋은 무기랬다. 그 말마따나 아이들에게 다가가 옥수수 낱알처럼 가지런한 치열을 어금니까지 보이며 씩 웃었더니 미소가 다소 음흉하게 보였는지 아이들은 하던 것을 멈추고 무표정으로 나를 응시하기 시작했다. 순간 분위기가 얼음처럼 차가워졌고, 단단히 얼어있는 아이들을 녹이고자 나는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 “쌤베노!(안녕)"
그러나 여전히 반응은 미적지근하고 아이들의 눈빛은 고드름처럼 날카롭게 경계하고 있다. 마침 주머니에 있던 한 줌의 누룽지 사탕을 꺼내어 아이들에게 건네자 그때서야 아이들은 나의 미소에 화답하며 반겨주기 시작했다. 무슨 이야기라도 나누고 싶었지만 아이들과 말은 통하지 않아 그저 익살스럽게 웃으며 "몽골 나이스, 몽골 베리 나이스"만 외치기를 반복했다.
차례대로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주었는데 어쩌다 보니 두 명의 아이가 누룽지 사탕을 받지 못했다. 받지 못한 두 아이는 다른 아이의 사탕을 뺐으려 했고 그마저도 못한 아이들은 결국 빵빵한 풍선처럼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울상을 지어 보였다. 괜히 누룽지 사탕으로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겠다 싶어서 재빨리 집에 가서 사탕을 가져오기로 했다. 그리고 황량한 벌판 위에 내가 나아가야 할 곳의 방향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도통 기억이 나질 않는다. 분명 나올 때만 해도 내가 걸어온 길을 기억하면서 걸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아름다움에 심취해서 그만 그것들을 잊고 말았던 것이다. 비슷한 길과 비슷한 집들이 즐비해있어 감조차 잡기 어려웠고, USIM과 오프라인 지도조차 없었기 때문에 핸드폰도 무용지물이었다.
산책을 위한 발걸음은 한순간에 생존을 위한 걸음으로 변해버렸다. 오직 한 가지 힌트라면 이든의 집 앞마당에 키우는 강아지인 도치를 찾는 것이다. 서둘러 사탕을 가져오기 위해 끝겨울의 몽골의 칼바람에 남방 하나로 맞서 싸우며 모든 길을 'ㄹ'자 걷고 걸었다. 잠깐 걸으려고 남방만 걸치고 나온 탓에 드센 바람은 아우토반 위를 달리듯 체크무늬 남방 사이를 드나들며 나의 피부를 맹렬히 지나갔다. 냉혹한 계절의 살기마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마른 모래를 싣고 오는 건조한 바람으로 인해 입술은 마른 메주짝처럼 듬성듬성 갈라지고 콧구멍에는 까슬까슬한 모래 알갱이들이 이리저리 뒹굴고 있었다. 풍성하게 산란하는 햇빛이 나를 비추었지만 살갗을 때리는 추운 바람 앞에서는 그마저도 무용지물이었다.
그렇게 30분 정도 찾아 헤맸을까, 나는 겨우 마당 앞에 묶여있는 도치를 발견했다. 그러나 안심도 잠시 내게는 지체할 시간이 없다. 빨리 누룽지 사탕을 다시 챙기고 아이들을 찾아 나서야 한다. 다시 한번 옷깃을 여미고 칼바람이 스미는 거리로 나섰다. 하지만 이건 무슨 장난일까, 이번에는 아이들과 만났었던 장소가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을 더듬어 왔던 길을 이리저리 돌아다녀 봐도 그 길이 그 길이다. 영화 메이즈 러너의 미로 속에 있는 것처럼 알 수 없는 곳을 거니는 기분이었다.
한참을 이곳저곳 서성거리고 아무리 둘러보지만 아이들을 찾을 수 없다. 이든의 집에서 꽤 벗어나 익숙한 곳을 찾아려고 무진 애써봤지만, 이미 방향감각을 상실한 배는 더이상의 항해를 이어나갈 수 없었다. 결국에는 주기로 했던 누룽지 사탕 한 뭉치는 주인을 만나지 못하고 주머니 속 먼지와 함께 그대로 남아버렸다. 무거운 마음을 안고 다시 이든의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눕자, 미안한 마음일지는 몰라도 짧은 시간의 만남이 계속해서 떠오른다. 별 거 아닌 누룽지 사탕으로 그렇게 기뻐하는 아이들은 참 순수한 영혼들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순수한 아이들의 분란을 조장하고 일으킨 나쁜 사람이 되었다. 잠시 눈을 감고 자성의 시간과 함께 오늘 만난 아이들을 생각하노라면 문득 나도 한때 아이처럼 순수하게 꿈꾸던 때가 어렴풋이 일렁거린다.
지금으로부터 꽤 오래 전인 내가 초등학생 때의 일이었다. 어느 날 담임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장래희망을 하나씩 적도록 했다. 그리고 선생님은 우리가 적은 장래희망에 따라 사진을 찍고, 교실 뒤편에 있는 게시판에 붙여 우리가 항상 꿈을 되새길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때 나는 당당하게 '어른'이라고 적어서 냈다. 그러자 선생님은 어른은 나중에 저절로 되는 것이니 다른 꿈을 찾아보라고 다그쳤고, 그렇게 나는 반강제적으로 축구선수라는 장래희망을 갖게 되었다.
지금에서도 뚜렷하게 기억하는 것이지만 그때 나는 단순히 될성부른 떡잎 시절의 유별난 행동으로 그랬던 것이 아니다. 사실 어린 시절에 내가 생각하는 어른이란 일종의 치트키같은 것이었다.
어른이 된다면 모든 것들을 할 수 있으니 어른이 되고 나서 하고 싶은 것, 그리고 내가 되고 싶은 것을 정하면 될 테니까. 그런데 그때의 생각과 달리 막상 어른이 되어 보니 '어른'이란 만능 치트키 같은 것이 아니었고, 이뤄가는 것보다 잃어가는 게 더 많은 참으로 슬픈 사람이었다. 사랑과 이별하고, 젊음과 이별하고, 꿈과 이별하고 그렇게 하나씩 잃어갔다. 잃는다는 것이 오히려 뚜렷해지는 것, 그것이 어른이었다.
그 시절 나는 어른이 되기를 꿈꿨지만, 별 거 아닌 것 같던 어린 시절의 꿈은 지금처럼 기업이 바라는 기준에 견줄 만큼 작은 것이 아니었고, 또한 현실적인 조건에 무너지는 나약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어른이 되어갈수록 육체적 성장과 함께 나를 가로막는 두려움의 장벽도 같이 성장해나갔다. 그리고 그 장벽의 높이가 커갈수록 나의 순수했던 꿈은 점점 사라졌고 새로운 꿈은 연봉, 복지, 네임밸류, 안정성, 주변의 인정에 따라 변하기를 반복했다.
물론 도전, 모험, 열정 같은 진취적인 단어 또한 홀로 서야 한다는 압박감과 적자생존 사회에서의 중압감으로 인해 점점 자리를 잃어갔다. 정말이지 마음껏 꿈을 꾸고 순수하게 꿈을 꾸던 그 시절이 그립다. 그래서 일지는 몰라도 이런 나와 달리 이 맑은 영혼의 아이들은 세상의 규격대로 맞추어진 잣대가 없이도 마음껏 자신들의 꿈을 재단하고 펼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스스로를 잃어버린 채 무언가에 덧입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비록 고사리 같은 손으로 쥐고 있는 꿈자락일지라도 그 꿈이란 소중한 법이니까.
꿈은 사랑과 닮았다.
영원할 것 같던 사랑도 결국 변하듯,
마찬가지로 꿈도 항상 변했니까.
그러니 꿈이 변하는 것은
사랑이 변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변하는 꿈이
이루고 싶은 꿈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꿈이 되어버린 것은 왠지 공허했다.
낭만 없는 여행 에세이 담고 있습니다.
글/ 사진_ Instagram@jongminzz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