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으면 고비에 묻어 달라

역마살 이야기 6 Mogolia, South Gobi

by 역맛살

만약 내가 죽으면 루르마랭에 묻어달라.


- 알베르 카뮈


울란바토르라는 며칠 나날을 소고기, 양고기, 말고기, 낙타고기로 이어지는 고기 셀렉션 경험하니 얼굴은 금새 포동포동 살덩이가 붙고 번들번들한 기름이 좔좔흘렀다. 뒤룩뒤룩 몸집이 점점 부풀어오르자 이제 먹는 것 말고 몽골에서 또다른 경험을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이든의 고향인 사우스 고비에 가기로 했다.


사우스 고비에 가기 위해 전날 울란바토르로 가는 차량을 예매해두었고, 어둑한 저녁이 되어서 도시 외곽에 위치한 작은 터미널에서 스타렉스 정도로 보이는 승합차에 올라탔다. 겨울이라 그런지 두터운 옷들을 겹겹이 껴입은 사람들은 원래의 몸집보다도 훨씬 커졌고, 그 사람들이 모든 자리를 빼곡이 채운 탓에 차량 내부는 조그마한 여백도 없이 서로가 어깨를 맞닿으며 훈훈한 모습을 자아냈다. 물론 자리에 꽉찬 사람들이 내쉬는 들숨탓에 차량 안의 훈훈한 기운은 더욱 뜨거워졌다. 나는 그 훈훈하고 텁텁한 공기를 피해 잠시 내려 터미널 화장실에서 언제 차오를지 모르는 나의 물탱크를 밑바닥까지 비우고 다시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곧 자동차는 달렸고,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멀리 벗어날수록 하늘에는 그간 잘 보이지 않았던 별들이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무래도 공해로 덮인 시내를 벗어나기도 했고 자동차 전조등을 제외한 어떤 빛도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게 고비로 향하는 2차선 포장도로는 밤하늘의 달과 별을 가로등 삼아 달리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세차게 질주하는 자동차들은 쌍라이트를 통해 서로의 위치를 신호하며 살벌한 레이스를 펼쳤다. 종종 도로 위에 움푹 패인 구덩이가 있을 때면 질주하는 자동차가 순식간에 급정거를 하며 가슴 철렁한 순간을 만들어냈다. 그런 아찔한 순간에도 생체리듬에 따라 찾아오는 졸음은 나의 눈커풀을 무섭게 만들었고, 나는 오늘의 운명을 신께 맡기기로 하고 묵직한 시신경 셔터를 천천히 내렸다.

그러자 그 순간 이든이 나의 어깨를 툭툭 치며 앞에 앉은 여자에게 내 무릎을 양보해주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다. 내 앞에 앉아 있는 여성의 좌석에는 안타깝게도 등받이가 없었고, 등받이 없이 졸고 있는 그녀는 마치 오픈 행사 때 스카이댄스를 추는 커다란 바람인형처럼 자동차와 같이 격하게 움직였다. 그녀의 춤사위(?)가 안쓰러워 나는 흔쾌히 그녀가 내 무릎에 등을 대고 누울 수 있도록 내주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녀의 무게가 나의 무릎을 점점 강하게 압박하기 시작했다. 왼쪽 무릎에 연골이식 수술을 했던 경험이 있어서일까, 짓눌린 부위가 점점 고통스러워지기 시작했고 살면서 느껴보지 못한 극한의 성장통이 이런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급정거를 하는 타이밍에 아주 조금씩 자세를 바꾸며 방도를 찾으려 했지만 이내 고통은 빠르게 찾아 들었다. 고통이 심해져 그녀를 깨우려고도 했지만 내 무릎에 누워 아이처럼 새근새근 자는 그녀를 도무지 깨울 수가 없다. 그리고 괜히 남한테 미안한 소리를 못하는 성격이라서 아무말 않고 그저 희끗한 정신력을 부여잡고 꿋꿋이 견뎌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이 1시간여 그녀를 지탱했을 즈음 기름을 넣기 위해 주유소에 들렸고 그덕에 경직에 가까웠던 나의 두 다리는 가까스로 부지할 수 있었다.


새벽 3시 반에 가까스로 도착한 곳은 먹물을 흘려놓은 듯한 짙은 어둠이 깔려 있었다. 그리고 코를 자극하는 텁텁한 흙냄새를 통해 비로소 기다렸던 사우스 고비에 도착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고비에 오기 전부터 몇 번의 고비를 맞닥뜨렸지만 나는 무사히 도착했다.

'언제나 귀중한 것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 것처럼 극한의 무릎 통증 뒤에 마주할 고비 사막은 분명 아름다운 곳일 것이다.'


[사우스고비의 첫 날]

여행지에서의 설렘은 언제나 에너지를 준다. 늦은 새벽에 도착하여 4시에 잤음에도 개운하게 떠오르는 해를 따라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 동네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나고 길에는 모래와 자갈들이 가득했다. 거친 땅 저 멀리에는 눈을 덧칠한 설산이 병풍처럼 우뚝 솟아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때문에 척박하고 적막하지만 전혀 삭막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것은 우연일까 이든의 부모님은 아침에 봤던 그 설산으로 나를 데려 가기로 했다.

설산 위에서 먹을 간식을 챙기고 차에 올라타 얼마쯤 달리는 순간, 겨울이라 황갈색으로 바랜 초원 위에 어림잡아 100마리 정도로 보이는 양과 염소들이 풀을 뜯어먹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잠시 차에 내려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보기로 했다. 하지만 나의 기척을 느꼈는지 양과 염소 떼들은 풀을 뜯어먹던 고개를 들어 말똥말똥한 눈빛으로 이방인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신기한 마음에 녀석들에게 한 걸음씩 다가가보지만 눈치 빠른 녀석들은 나의 한 걸음마다 적어도 세 네 걸음은 더 뒤로 물러났다. 밀당도 이런 밀당의 귀재가 있을까.

가까이 다가가지만 가까워질 수 없는 우리의 관계, 그래도 한번 그것들을 만져보겠다고 눈치게임을 하듯 나는 슬금슬금 다가갔지만 그들은 주먹처럼 크나큰 검은색 동공을 끊임없이 굴리며 요리조리 도망갔다.


설산 주변에 거의 다다르고 언덕을 오르자 불규칙한 모양과 크기의 돌, 대지의 기운을 한껏 머금은 흙, 듬성듬성 희끄무레한 눈이 뒤섞여 척박한 모습의 정점을 찍었다. 그 땅 위에 이번에는 아까보다 몇 배는 더 많은 양무리들을 진두지휘며 달리는 강아지와 묵묵히 바라보는 목동의 모습을 마주했다.

끝없이 펼쳐진 들판 위에 수없이 많은 가축들이 한 데 섞여 자유롭게 풀을 뜯어먹고 있었다. 푸른 하늘과 구름도 이번에는 자신들의 아름다움의 감추지 않고 맘껏 뽐내며 자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홀로 서있는 한 인간의 모습.


가슴 벅차오르는 광경에 나도 모르게 육성의 탄성이 나왔다. 이 순간부터 의미없는 셔터질의 난사조차 의미있는 사진이 되어 버리는, 일명 몽키매직이 아닌 몽골 매직이 펼쳐진다.

현대에서 고대로 시간이 초월하는 듯한 이 광경을 마주한다면, 아마 그 누구도 중력의 힘을 거스르지 못하고 아래턱을 쭉 늘어뜨리고 탄성을 지를 것이다. 시간을 뚫고 세상 만물들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이곳 사우스 고비는 현존하는 지상낙원 같았다.

눈 앞에 펼쳐진 찬란함을 언어의 영역으로 계속 표현하고 싶지만 이내 무의미한 노동이라는 것을 느낀다. 어차피 언어의 온도로는 다다를 수 없는 강렬함을 차마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프랑스의 대문호 카뮈는 말했다. “만약 내가 죽으면 루르마랭에 묻어달라.”

나는 카뮈의 말을 인용해 이렇게 말하겠다.


내가 죽으면 '고비'에 묻어달라.


만약 아직 당신이 몽골을 느껴보지 못했다면

아직 살아있을 이유 하나를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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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5462.JPG 눈치 게임의 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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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없는 여행 에세이 담고 있습니다.


글/ 사진_ Instagram@jongminzz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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