벅찬 여행의 시작은 몽골

역마살 이야기 5 Mongolia, Ulanbatar

by 역맛살

그처럼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해서

지나간 불행에 대한 추억을 불러일으키려고 하지 않고

차라리 현재를 무난하게 참고 견디어나간다면

인간의 고통은 훨씬 줄었을 거야.


-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중에서


세계에서 가장 넓은 대륙을 지배했던 칭기즈칸의 땅을 잠잠히 내려보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저 너머까지 펼쳐진 광활한 대지가 좁은 비행기 의자에서 웅크려 있는 나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도망치듯 떠나온 한국에서의 걱정이 구름 위를 달리는 비행기까지 쫓아왔지만 이내 구름이 걷히고 몽골의 땅이 보이기 시작하자 복잡한 머릿속의 번민 또한 서서히 사라져갔다.


나는 이번 여정에서 몽골,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을 여행하기로 했다. 딱히 이번 여행은 어떠한 목적도 없고 계획 같은 것 또한 없었다. 그냥 정말이지 무작정 떠나고 싶었던 게 전부였다. 그래도 굳이 이유를 뽑으라면 언제나 남들과 비슷하게 살아왔으니 이번에는 남들과 다르게 살아보고 싶어서랄까, 그래서 남들이 흔히 가지 않은 나만의 특별한 여행지를 가고 싶었다랄까.

그렇다 하더라도 이렇게 대책없이 떠나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은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떠나겠다고 항상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단지 불분명한 두려움에 결단을 못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두려움을 허물고 용기가 생긴 날은 고작 학교가 개강하기까지 10일정도 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물론 가까운 나라에 일주일 정도 다녀오는 것도 좋겠지만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학생 때의 여행을 일주일 정도로 짧게 끝내기는 싫었다. 그래서 과감하게 몇 주간 수업을 재끼기로(?) 결심했다.

아직 마지막 한 한기가 남은 만큼 들어야 하는 수업도 남아있었지만, '마지막'이라는 단어에 내포된 근거없는 무모함은 모든 두려움을 집어 삼킬 만큼 실로 컸다. 그래서일까 평소보다 더 설레는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아마 설레는 기분의 상당한 지분은 학교수업을 째고 떠났다는 스릴감과 긴장감이 크게 톡톡히 한몫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잠시 뒤 비행기 위에서의 짧고 강렬한 절경을 뒤로하고 역사적인 땅에 발을 디뎠다. 그러나 광활한 대지에 비해 몽골의 공항은 작고 썰렁했다. 곧 짐을 찾고 밖으로 나가자 비행기에서 바라본 모습과 달리 몽골의 풍경은 예상을 뒤집었다. 별별별 외치던 사람들의 증언을 가볍게 무시하듯 영롱하게 빛나는 별, 맑은 공기, 드넓은 초원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없었다. 대신에 이곳 울란바토르는 소음과 공해로만 가득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모습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그러다 택시를 타고 열린 차창으로 불어오는 공해 섞인 바람이 스치니 나의 로망이 폭망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몽골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알고 있기라도 한 듯 그 모습을 쉽게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것일까.


방학 중 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그때 이든과 같은 반이 되어 서로 알게 되었다. 이든은 몽골에서 살았고 그래서 울란바타르에 머무는 동안 이든의 친척집에서 홈스테이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첫 몽골 현지인의 집에 도착했다. 현관을 열었고 집에 들어가자마자 마주한 것은 마동석처럼 생긴 '야쿠자'들이었다. 물론 그들은 야쿠자가 아니었지만 야쿠자라는 표현이 그들에게서 느낀 나의 위압감을 가장 잘 대변해주는 표현일 것 같다.

건장한 두 명의 사내가 웃통을 벗고 있었고 마주 앉아 피는 담배 연기가 자욱하게 주방을 채웠다. 검지와 중지에 담배 한 가치를 들고 있는 이두박근은 마치 아령을 들고 있는 팔뚝처럼 큼지막하고도 굴곡져있었다. 그들의 벗은 몸에 떡 하니 문신이 보였고 무슨 문신인지는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자세히 보려고 시도했다가 괜한 껀덕지를 줄 것만 같아서 황급히 바닥을 향해 눈길을 훔쳤다. 다만 기억하는 것은 문신이 굉장히 거대했다는 것.

정복군주 시절의 몽골인을 그대로 재현하는 듯한 그들의 풍채에 덜컥 겁이 나 고개를 바짝 숙여 "Hi"라고 인사를 했다. 그러자 험상궂은 모습과 달리 그들은 호쾌하게 나를 맞이해해 주는 모습에 겁먹었던 마음은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풀어졌다.


그들은 겨우내 숙성시킨 소고기를 커다란 박스에서 꺼내어 음식을 해주었다. 손님이 오거나 행사가 있을 때 주로 먹는 ‘허르헉’이라는 음식이었는데 고기 위에 밀가루 반죽을 여러 겹 얹어 오랜 시간 동안 삶아 낸 몽골의 전통음식이었다. 허르헉의 고기로 사용된 것은 소갈비였다. 가끔 갈비를 먹었지만 돼지갈비, 혹은 어디인지도 모르는 부위에 갈비 양념을 묻힌 갈비양념맛 고기가 전부였다. 그런데 오늘은 클라스가 다르다. 이건 진짜베기 '소'갈비였다. 아마 이곳에서 팔뚝만 한 소 갈빗대를 손에 쥐고 먹어보지 않고서 고기 맛 좀 봤다고 자부하는 사람은 바다를 봤다고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과 같을 것이다. 단내 나는 혀에 부드러운 단백질 덩어리가 조우하는 순간 고기는 거침없이 입 안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사정없이 나의 윗니와 아랫니에 의해 으깨지는 축복 덩어리들은 부드럽게 혓바닥을 쓸고 식도로 넘어갔다. 그리고 식도와 위장에 부드러운 윤활유를 칠하며 그간 느낄 수 없었던 고품격 기름의 매끄러운 촉감을 선사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맛있게 먹는다지만, 이곳에서는 그 누구든지 전례없는 축복의 맛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음식으로 이렇게 행복할 수 있구나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이래서 누군가 이런 말을 했던가 "인생은 고기서 고기다."


부드러운 육질과 잡내 없는 담백함.

근데 뭔가 아직 표현이 부족하다.

음 무엇으로 맛을 표현해야 할까

글쎄 음식의 맛을 묘사하는 말로 아무리 표현해도

이곳에 와서 직접 먹어보지 않는다면 느낄 수 없는

그것은 마치 미지의 맛.



학교는 개강을 했고 나는 여행에 왔다.

잠에 들기 전 여행하면서 느끼는 행복들을 잠시 내려놓으면

‘F’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헤집으며 방황한다.


만약 F학점이라도 받는 날에는

졸업도 못하고 한 학기를 더 다녀야 한다.

와... 정말이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물론 미친 척하며 떠나왔지만

미치는 것은 한순간이었고

결국 이성은 원래의 관성대로 되돌아왔다.


일단 생각해놓은 방법 Plan A.

젊음의 패기로 당당하게 말하기.

“좁은 학교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상에서 배우고 싶었습니다.”


반응이 시원치 않으면 Plan B.

지문이 닳도록 싹싹 빌기.

“교수님 부탁드립니다. 졸업만 하게 도와주십쇼······”


지금 열망하고 갈망하고 소망하는 것은

오직 F학점을 모면하는 것.


한 순간에 소박한 꿈을 가지게 하는 여행은

역시 언제나 매력적.


IMG_5408.JPG 겨울에 숙성시켜 놓은 고기
신형 오함마


미지의 한 상차림
















낭만 없는 여행 에세이 담고 있습니다.


글/ 사진_ Instagram@jongminzz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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