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용기

주름살 이야기 3 Korea, Jeonju

by 역맛살

가까이 있을 때 붙잡지 그랬어.

있을 때 잘해 그러니까 잘해


- 오승근이 부른 '있을 때 잘해' 중에서


주홍빛 가로등이 어둑해진 겨울밤을 비추는 시간, 공부를 마치고 귀가하는 밤하늘에 듬성듬성 박힌 별들이 하나씩 보인다. 이 시간은 그동안 번뇌에 사로잡혀 고생한 탓에 쭈글쭈글해진 뇌를 풀어주는 평온한 시간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다. 작은 걸음이지만 꿈을 향해 한 발자국 더 낸딛었다는 성취감과 오늘 하루도 무사히 보냈다는 안도감.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잠시나마 세상 번뇌에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가끔 엉뚱한 생각을 한다.


가끔 열심히 열을 올렸던 뇌를 식혀주기 위해 일상을 벗어난 엉뚱한 생각을 하고는 한다. 그리고 오늘은 만약 과거로 다시 돌아가면 무엇을 할까라는 주제를 두고 집으로 향하는 지루한 잰걸음을 달래보기로 했다. 곧이어 집에 도착하고, 언제일지 모를 시기에 동기부여로 쓸 겸 해서 빈 종이를 꺼내 들고 천천히 그 리스트들을 적어보기로 했다.


주홍빛 가로등이 어둑해진 밤을 비추는 시간 찾아올 때면, 밤하늘에 듬성듬성 박힌 별들이 공부를 마치고 귀가하는 걸음을 위로해준다.

하루를 끝에서 맥아리없는 걸음으로 집으로 향하지만, 가랑비와 같은 뿌듯한 하루를 보냈다. 나는 믿는다 어느 순간 꿈에 젖을 순간이 찾아올 것이라는 것을.그래서 꿈을 향해 열심히 달려온 하루에 잠시의 휴식 같은 이 시간을 정말 좋아한다.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집으로 향하는 길에 가끔 엉뚱한 생각을 하곤 하는데, 만약 내가 옛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무엇을 할까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고요한 거리 위에서 잠시나마 지루함을 달래기 위한 부질없는 생각이었지만 머릿속에 꽤나 많은 것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곧이어 집에 도착하자 언젠가 내게 동기부여가 될지도 모르는 머릿속의 리스트들을 빈 종이에 천천히 적어보기로 했다.


1. 수업시간에 결석 한번 해보기.
2. 방학 때 스펙 쌓는 거 말고 실컷 놀기.
3. 워킹 홀리데이 해보기.
4. 세계여행 떠나기.
5. 드럼 배우기
6. 스카이 다이빙하기
7. 열기구 타보기
8. 진짜 사파리 가보기
9. 엘 클라시코 관람하기
10. 까미노 길 걸어보기
11. 월드 디제이 페스티벌에서 신나게 놀아보기.
(···)


사실 위에 적은 것 외에도 수없이 많은 것들이 하고 싶다. 아마 A4용지를 가득 채우라고 해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과거로 돌아간다는 상상을 하며 하고 싶은 것들을 적어보니 공통점을 하나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그때의 내가 용기가 없어서 해보지 못했던 것들이다. 아마 그때 용기가 필요했던 이유는 불안하고 초조했기 때문일 것이다.

바라보는 미래는 언제나 불안했고, 그래서 그 두려움은 미래의 안정을 위해 현재의 시간을 헌신하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기울어졌다. 그렇게 하고 싶은 것보다는 해야 하는 것에 집중하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많은 것들을 놓치며 살았다. 물론 빠르게 지나가는 젊음의 시간 동안 추억할 수 있는 일들을 많이 만들어보고 싶었지만, 그리고 매 순간 굳은 다짐도 해봤지만 용기를 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두려운 미래와 취업 준비로 아등바등 살아간다.

그럼 미래는?

아마 미래에도 별반 다를 것 없이 오늘처럼 '하고 싶은 리스트'를 적으며 과거를 그리워할지도 모르겠다.


물속에 빠진 사람이 공기를 원하는 것처럼, 사랑을 잃고 난 뒤에야 우리는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그런 점에서 사랑은 젊음을 닮아 있다. 더 이상 젊은이가 아닐 때, 우리는 비로소 젊음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그래서 젊음은 젊음을 모른다.

-김연수의 '시절 일기' 중에서


사랑이 떠나고 나서야 그 사람이 내게 어떤 존재인지 알게 되었고, 지나가버린 젊음의 시간을 바라보니 그때의 시간이 참 소중했음을 알게 된다. 자고로 사람은 그런 존재이다. 어떤 무언가를 떠나보낸 빈자리 속에서 비로소 그것의 의미를 깨닫는 둔한 존재. 그리고 그 의미를 알게 되었음에도 쉽게 변할 수 없는 어리석은 존재. 결국 그러한 존재가 곧 나였기 때문에 흰색 종이 바탕 위에 내가 하고 싶은 리스트를 마음껏 끄적거렸지만 지금 당장 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똑같은 이유에서 말이다.


시간은 항상 흐른다. 그리고 그것을 되돌릴 수는 없다. 이 자명한 사실 앞에서도 결국 불안함에 나의 선택을 고민하게 되고, 그러다 합리적인 선택과 이성적인 선택을 하며 수많은 시간을 떠나보내야 했다. 그래서인지 항상 지나가는 시간과 지나버린 과거를 떠올리면 해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그럴 때면 정말이지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타임머신을 타고 그리운 옛날로 돌아가고 싶어 진다.

만약 다시 돌아간다면 이면지에 늘 새로운 것들을 채워 나가며 살아가고 싶다. 하고 싶은 것, 하지 못했던 것을 몽땅 하면서 말이다. 왜 그때 없던 용기는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내 맘속에 불끈불끈 솟아나는 걸까.

하지만 지난날에 필요했던 용기는 오로지 그때에만 필요할 뿐이었고, 나중에 생긴 용기는 결국 아쉬움이 되어 짙은 한 숨으로만 표현될 뿐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변함없는 삶을 살고 있는 나는 언젠가 또다시 거센 한 숨과 함께 훗날 타임머신을 타고 이 시간을 여행하기를 소망할 것이다.


하고 싶어서 적었던 것들인데 과연 나의 남은 생애에 있어서 할 수 있을지라는 회의감이 든다. 하고 싶은 것도 못하고 단지 해야 하는 일만 하며 마냥 흘러가는 삶은 참으로 애석하다.

지나가는 현재의 순간들은 곧 과거가 되고, 그 지나갔던 과거가 거대하게 겹쳐서 내 인생이 되었다. 하지만 아쉬움이 가득한 순간순간이 모여 내 한평생의 인생이 되었을 때, 그것은 정작 나 자신을 잃어버린 삶이 되었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그럴 것이다. 그러니 언제나 이렇게 걱정의 잿더미에 앉아 싱싱한 청춘의 시간을 푸석하게야 만들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지금은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훗날의 동기부여를 도모하기 위해 적었던 A4용지를 적다 보니 어느새 흐릿하게 용기의 내음이 풍겨오고 있었다.


그래, 때로는 짙게 드리운 그늘을 벗어나 청춘의 푸른빛을 위한 광합성도 필요한 법이야.

좋아, 그럼 이렇게 생각하자.

지금 이 시간이 바로 저 멀리 미래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온 순간이야.

나는 지금 이 시간이 그리워서 온 것이고, 지금 두려워서 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리기 위해 온 거야.

그러니까 하지 못한 일에 '만약'이라는 아쉬움을 멈추고 그동안 불안하고 초조해서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해보자. 있을 때 잘해보는 거야, 후회하지 말고.


인생은 되감기 없는 한 번이니까.




지나간 시간은 언제나 그립다.

지나가는 이 시간도 언젠가 그립다.



그리고 그리움을 통해 알게 되었다.

모든 것은 결국 떠나간다는 것을













낭만 없는 여행 에세이 담고 있습니다.


글/ 사진_ Instagram@jongminzz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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