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게 살고 싶다

주름살 이야기 2 Korea, Jeonju

by 역맛살

왜 20대 에는 제대로 산다는 느낌이 잘 들지 않고,

모든 게 갑자기 부질없어 보이는 것일까?


그건 어쩌면 20대에는 결과는 없고 원인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김연수의 '지지 않는 말' 중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은 나의 인생의 최종목표이자 꿈이라고 부를 수 있는 만큼 소중한 것이었다.


가난하다고 꿈조차 가난할 수 없을까. 글쎄 상상은 자유라는 말처럼 우리가 가지는 꿈도 원대한 꿈일 수 있고 창대한 꿈일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차츰 어른이 되어가며 느꼈던 것은 현실적인 꿈, 그 이상의 것들은 단지 허황된 목표에 불과하다고 느껴졌다. 그렇다면 나에게 현실적인 꿈이라 함은 많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살아가는 삶이자 많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추구하는 삶, 다시 말하면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을 의미했다. 아마 남들보다 조금 이른 나이에 어른이 되어야 했던 지난 날을 생각해보면 하루 빨리 현실을 자각하고 그에 맞는 목표와 이상을 맞춰야 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국가에서는 가난한 소년소녀가정에게 다달이 일정한 보조금을 주었다. 하지만 월세, 전기세, 인터넷 요금, 수도세 이것저것 내다보면 금방 얕은 바닥을 드러냈고, 그나마도 남은 보조금은 한 달 동안 먹어야 할 밥과 반찬 등의 지출을 하다 보면 생활이 빠듯했다. 그래서 삶은 언제나 학업과 집안일과 아르바이트로 이어지는 고단한 삶의 나날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하루빨리 돈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요동치는 통장잔고의 저울질에 맘 졸이는 것을 그만두고 싶었다. 그래도 아직 괜찮다고 위로할 수 있었던 것은 내게는 아직 나아가야 길이 남아 있었다.

학교를 졸업하게 되고 직장에 들어가게 되면 무내용한 가난이 우글거리는 지금의 현실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의 길. 그 희망을 믿으며 뿌옇게 안개 낀 이 길을 천천히 걸어 나가고 있는 중이다.


어린 나이에 지탱해야 하는 삶의 무게는 살갗을 파고드는 것처럼 무거웠다. 살아내기 위해서는 빨리 어른이 되어야 했고 스스로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워 나가야 했다. 그리고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모래성 같은 생활 속에서 거창한 꿈을 가지기에 몸도 마음도 가난했다. 누군가 그랬다. 가난하다고 꿈조차 가난할 수 없다고.

그러나 평범하게 살고 싶은 나의 꿈이 가난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지만, 어쩌면 다소 획일화된 꿈이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버린 내게 현실적인 꿈, 그 이상의 것들은 단지 허황된 목표에 불과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살아가는 삶이자 많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추구하는 삶, 곧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 내 꿈이자 목표가 되었다.


여느 평범한 가정처럼 부모님의 그늘에서 아래서 때로는 혼도 나고 잔소리도 듣고 위로도 받고 싶었다. 가족과 함께 여행도 가보고 다 같이 외식도 해보고 다정한 가족사진도 찍어보고 싶었다. 오순도순 식탁에 둘러앉아 보글보글 끓는 찌개를 두고 노곤한 하루의 삶을 나누고 싶었다. 부유하지는 않지만 따듯한 울타리에서 살고 싶었다. 내게도 그런 안식처가 있었으면 했다.


내가 꿈꾸는 평범함은 그것을 느껴보지 못했기에 더 간절히 그 삶을 바라고 열망했던 것 같다.


젊을 때 한번쯤은 큰 포부와 높은 이상을 꿈꾸는 것도 많은 가능성을 가진 청춘이라면 가질 수 있는 꿈으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평범하게 살겠다는 꿈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평범함이라는 꿈을 꾸며 청춘이라는 푸른봄철의 푸른빛은 어디에도 없었을 뿐이다. 모두들 저마다의 사정으로 삶의 방식이 다르겠지만 청춘이라는 우리네 인생에서 가장 찬란한 시간에 공허한 여백만이 가득한 젊은 날을 상상하는 것은 불행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거창한 꿈이 그저 무의미한 상상같은 것으로 스스로 여기는 것은 어쩐지 가슴 아픈 일이었다.


가지런히 마킹된 OMR답안지가 오늘따라 유독 어둡고 무미건조하게 느껴진다.

무언가 필요했다.

그리고 기억하고 싶었다.

단 한순간이라도 푸른빛으로

기억될 만한 나의 청춘을




최근에 자격시험을 치르기 위해 인근 시험장에 갔다.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그간의 결실을 이루기 위해 작은 암기노트와 문제집을 시험 직전까지 펼쳐 놓고 공부를 했다. 10분 20분 더 본다고 과연 크게 달라질까 모르겠지만 그 짧은 시간까지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니 그들의 합격하겠다는 열기가 내 피부까지 와닿아 전해지기 시작했다.

시험장에 감독관이 들어오고 주의사항을 알려준 뒤 가지런히 숫자가 나열된 OMR카드를 나눠주었다. 곧 시험이 시작되고 응시자들은 본인의 인적사항을 적고 나서 시험지를 풀며 정답을 OMR카드에 검은색으로 짙게 칠하기 시작했다.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단 한 가지의 정답만 있는 문제를 풀고 합격이라는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이 자리에 있다. 그리고 모두가 OMR 답안지에 짙은 검은색으로 줄을 맞추어 가지런히 마킹하고 있다. 이런 모습들이 칙칙하고 무미건조해 보일 수 있지만 그다지 불편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뭐라도 하고 있다는 안도감과 함께 남들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삶에 속해있다는 느낌이 들게 해주었다.


나도 그들과 같이 정답을 찾기 위해 골똘하며 주어진 문제 하나씩 풀어나갔고, 꽤나 일찍 시험을 마치고 나서 가만히 앉아 퇴실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까지 기다렸다. 하릴없이 앉아있는 동안 열심히 문제를 풀고 있는 응시자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나와 비슷한 나이 또래의 사람들도 보이고, 꽤 희끗한 백발의 머리가 드문드문 보이는 나이가 들어보이는 인생의 선배들의 모습도 종종 보였다.

말똥말똥 뜬 눈으로 흘러가는 시간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으로는 지루한 시간의 공백이 쉽게 채워지지 않았다. 그러다 검은색으로 가지런히 칠해진 답안지를 바라보며 나는 과연 무엇을 위해 이 자리에 앉아 있는가. 이후에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아니 나는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그래서 저들은 과연 무엇을 위해 이 자리에 있는 것일까. 나야 스펙하나 추가해서 좀 더 나은 직장을 가기 위한 일종의 업그레이드라고 볼 수 있지만. 저들은 무엇을 위해 이자리에. 아니 나 또한 과연 무엇을 위해 이자리에?? 묵직한 주제이다. 무겁다. 무엇을 해야할까. 그러다 들은 생각은 나는 과연 어떠한 삶을 살아온 것인가


그러다 문득 나의 지나온 시간이 불현듯 스쳐 지나갔다. 나는 과연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잠잠히 눈을 감고 머릿 속을 천천히 살펴보지만 떠오르는 일들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릿속에서 툭하고 떠올랐는데 그것은 '힘들었다'는 막연한 문장 하나였다.


누군가에게 집이란 곳은 하루의 피로를 녹여주는 안락한 곳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게는 아니었다. 부모님이 계시지 않아 동생과 단 둘이 살았던 탓에 하루를 마치고 돌아온 집은 허전함과 적막함으로 가득한 곳이었다. 아주 어릴 적부터 그랬으니 이런 외로움에 조금씩 적응해나갔지만, 가끔 많이 힘든 날이면 혼자 흐느끼며 안락한 가정의 울타리를 상상하고는 했다.

여느 평범한 가정처럼 부모님의 그늘에서 아래서 때로는 혼도 나고 잔소리도 듣고 위로도 받고 싶었다. 가족과 함께 여행도 가보고 다 같이 외식도 해보고 다정한 가족사진도 찍어보고 싶었다. 오순도순 식탁에 둘러앉아 보글보글 끓는 찌개를 두고 노곤한 하루의 삶을 나누고 싶었다. 부유하지는 않지만 따듯한 울타리에서 살고 싶었다. 내게도 그런 안식처가 있었으면 했다.

하지만 결손가정이라고 지칭되는 내게 그것들은 허망한 신기루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무의미한 상상 뒤에는 그저 허무함만이 남을 뿐이었다.


국가에서는 가난한 소년소녀가정에게 다달이 일정한 보조금을 주었다. 하지만 월세, 전기세, 인터넷 요금, 수도세 이것저것 내다보면 금방 얕은 바닥을 드러냈고, 그나마도 남은 보조금은 한 달 동안 먹어야 할 밥과 반찬 등의 지출을 하다 보면 생활이 빠듯했다. 그래서 삶은 언제나 학업과 집안일과 아르바이트로 이어지는 고단한 삶의 나날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하루빨리 돈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요동치는 통장잔고의 저울질에 맘 졸이는 것을 그만두고 싶었다. 그래도 아직 괜찮다고 위로할 수 있었던 것은 내게는 아직 나아가야 길이 남아 있었다.

학교를 졸업하게 되고 직장에 들어가게 되면 무내용한 가난이 우글거리는 지금의 현실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의 길. 그 희망을 믿으며 뿌옇게 안개 낀 이 길을 천천히 걸어 나가고 있는 중이다. 그러면 어느 순간 이 터널을 다 지나가고 내게도 평범하게 살 수 있는 세계가 나타날 것만 같았다.


어린 나이에 지탱해야 하는 삶의 무게는 살갗을 파고드는 것처럼 무거웠다. 살아내기 위해서는 빨리 어른이 되어야 했고 스스로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워 나가야 했다. 그리고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모래성 같은 생활 속에서 거창한 꿈을 가지기에 몸도 마음도 가난했다. 누군가 그랬다. 가난하다고 꿈조차 가난할 수 없다고.

하지만 어른이 되어버린 내게 현실적인 꿈, 그 이상의 것들은 단지 허황된 목표에 불과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살아가는 삶이자 많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추구하는 삶, 곧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 내 꿈이자 목표가 되었다.


청춘은 푸른 봄철이라는 뜻은 가지고 있다. 평범하게 살고 싶어서 열심히 살아왔을 뿐인데 잠시 돌아본 내 청춘에 푸른 봄철의 푸른빛은 어디에도 없었고 공허한 여백만이 가득했다. 그리고 내 인생은 어느새 OMR 답안지의 검은색처럼 무미건조하고 어둡게 칠해져 버렸다.


젊을 때 한번쯤은 큰 포부와 높은 이상을 꿈꾸는 것도 많은 가능성을 가진 청춘이라면 가질 수 있는 꿈으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평범하게 살겠다는 꿈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평범함이라는 꿈을 꾸며 청춘이라는 푸른봄철의 푸른빛은 어디에도 없었을 뿐이다. 모두들 저마다의 사정으로 삶의 방식이 다르겠지만 청춘이라는 우리네 인생에서 가장 찬란한 시간에 공허한 여백만이 가득한 젊은 날을 상상하는 것은 불행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거창한 꿈이 그저 무의미한 상상같은 것으로 스스로 여기는 것은 어쩐지 가슴 아픈 일이었다.


가지런히 마킹된 OMR답안지가 오늘따라 유독 어둡고 무미건조하게 느껴진다.

무언가 필요했다.

그리고 기억하고 싶었다.

단 한순간이라도 푸른빛으로

기억될 만한 나의 청춘을




언제부터인가

작아져버렸다


언제부터인가

사라져 버렸다




나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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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없는 여행 에세이 담고 있습니다.


글/ 사진_ Instagram@jongminzz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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