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의 모습을 고대로 간직한 땅, 그곳에 사는 호객꾼

역마살 이야기 36 Egypt, Cairo

by 역맛살

확실히 믿으려면 먼저 의심해야 한다


- 폴란드의 국왕 스타니슬라브 레친스키


[카이로 공항]

마다가스카르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두 번의 환승을 거쳐 하루를 넘긴 이른 아침이 되어서야 카이로(이집트의 수도)에 착륙했다. 아침이니만큼 나름 상쾌한 공기를 예상했지만, 도착하자마자 나를 가장 먼저 반겨주는 것은 후덥지근한 열기와 함께 끈적끈적한 습기였다. 그리 달갑지 않은 환영과 더불어 들숨으로 느껴지는 찝찝함은 오전 6시의 피로를 말끔히 날려버리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천천히 짐을 찾고 공항의 로비로 나가자 두 번째로 나를 반겨주는 것은 역시 “탁시, 탁시”를 외치는 택시기사호객행위이다.

돈도 잃고 조금씩 여행에 지쳐갈 즈음 잠시나마 택시를 타고 시내까지 가면 얼마나 편할까라는 사치스러운 생각이 머릿속은 잠깐 채웠다. 하지만 가난한 자의 삶에 의지는 들판에 솟아난 야생화 같은 끈질긴 면이 있었고, 그 덕분에 사치스러운 상상을 접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돈을 절약한다면 육체의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여행에서 만고불변의 진리는 이전 여행을 통해 깨달았다. 그리고 가난한 여행객으로서 몇 푼 돈을 절약할 수 있었다면 몸이 돈을 대신하는 것쯤은 진즉에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사실 여행이 지속될수록 점점 더 뚜렷해지는 돈문제는 내게 주어진 선택지를 아주 간단명료하게 만들어주었다. 더 싸게, 대신 더 힘들게

결국 육체적 노동의 대가를 통해 돈의 총량을 보존하는 것은 가난한 여행자가 택할 수 있는 최선의 여행공식이었다.


[피라미드]

인터넷에서 본 대로 학생증을 제시할 경우 학생 할인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학생이 아닌 대한민국의 반석이 되기 위해 도전을 거듭하는 백수였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이미 유효기간이 지나버린 학생증을 제시하니 매표원은 쓱 하고 대충 훑어보고는 학생요금을 청구했다. 혹시라도 그녀가 재차 확인할까 봐 나는 빛의 속도로 재빨리 학생증을 주머니 속으로 넣었다.

잠시 뒤 간단한 짐 검사 이후 피라미드에 입장을 하자 더욱 격해진 태양의 환호가 시작됐다. 이집트도 역시 아프리카였다. 이렇게 뜨거운 환호 아래서 사방으로 눈을 돌리며 그늘을 찾아보았지만 이미 해가 중천에 떠있는 이상 나의 보호막이 되어줄 그늘은 찾기란 쉽지 않았고, 내리쬐는 태양 아래 살갗은 붉게 그을어지고 페트병의 물은 점점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가뭄처럼 말라버린 나의 목구멍을 위해 간간히 목울대가 휘청거릴 만큼 힘껏 마른침을 꼴깍 삼켜봤지만 서서히 침샘도 말라가는 듯했다.

그리고 한 뼘도 되지 않는 챙모자 아래로 가까스로 얼굴만 숨긴 채로 쉴 곳을 찾던 중, 어느 지긋이 나이 드신 할아버지가 다가와 자신은 국가에서 인증을 받은 가이드라며 피라미드에 가려면 가이드를 꼭 고용해야 한다며 말을 걸기 시작했다. 이 레퍼토리 또한 미리 검색해 봐서 알고 있는 수법이었기 때문에 동요하지 않고 나의 길을 갔다. 가끔 사람들은 나의 선한 얼굴 때문에 어리숙하게 보지만, 결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상대들은 아직 모르는 것 같다. 착해 보이는 얼굴 뒤에 감춰진 나의 침착하고 이성적인 판단력은 세기의 명장 알렉스 퍼거슨을 능가하고도 남을 텐데 말이다. 하긴 호객꾼들이 어디 여행객 얼굴을 가려가며 장사하는 것은 아니니 내가 험상궃은 순진해 보이든, 어찌 보면 돈의 원리에 따른 인간세계의 일부였을 것이다.


그렇게 몇몇의 호객꾼을 뚫고 눈앞에 마주한 피라미드는 역시나 웅장했다. 거대한 돌들이 층층을 이루며 세워진 크기는 실로 대단했고 감탄사가 연신 터져 나왔다. 어떻게 돌을 옮겼으며 어떻게 돌을 올렸는지는 내 머릿속으로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마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서도 똑같이 이해가 가지 않으니 세계 7대 불가사의로 남아있는 것일 테다.

잠시 피라미드 주위에서 사진을 찍고 있던 중 “카멜? 홀스?”를 외치며 어느 상인이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한사코 그것들을 거부하다가 나만큼이나 끈질긴 호객꾼에 걸려 흥정한 끝에 6천 원 정도의 가격에 낙타를 타기로 했다. 낙타를 타고 길을 가는 중, 모르는 아저씨가 내게 다가와 콜라를 직접 따서 손에 쥐어주었다. 갑자기 뭔가 싶어서 멀뚱멀뚱 쳐다보니 음료를 따준 아저씨는 웃으며 콜라 값 1달러를 달라고 말했다. 콜라를 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혼자 병을 따고서 1달러를 요구하는 아저씨의 당당함에 이게 도대체 뭔 일인지 싶지만, 마침 가뭄과도 같은 갈증으로 고생 중이었기에 군말 없이 쭉쭉 들이켰다.

콜라를 먹느라 멈췄던 낙타는 다시 걷기 시작했고 피라미드로 좀 더 가까이 가보기 위해 잠시 낙타에서 내리기로 했다. 그러자 낙타꾼은 한번 내리면 끝이라며 다시 올라타려면 추가적으로 돈을 더 내야 한단다. 낙타에 올라탄 지 이제 막 10분이 채 되지 않았는데 무슨 이런 각박하고 정 없는 사람이 있는가 싶었다.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어이가 없었다. 그러면 왜 사전에 얘기하지 않았냐며 따졌지만 계속해서 팁을 요구하는 그의 행태에 원래 주기로 했던 금액만 지불하고 그냥 걷기를 택했다.


그리고 또 잠시 나의 뒤에서 누군가 크게 “헬로”를 외치며 내게 다가왔다.

- “안녕, 어디서 왔니?”

- “나는 한국에서 왔어.”


“반가워”, “몇 살이니”, “이름이 뭐니”, (이하 생략). “너는 좋은 사람이야.”

전개가 너무 뜬금없고 갑작스럽다. 도대체 무슨 아우토반을 질주하는 람보르기니처럼 순식간에 어이없는 순간인가. 갑자기 왜 내가 좋은 사람 되었는지 의아했다. 물론 나야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순도 100%의 사실이라지만 그는 어떠한 근거로 내가 'Good person'이라는 단어를 내뱉었던 것일까.

- “너는 좋은 사람이야. 그래서 너에게 선물을 주고 싶어.”


맥락도 없이 막장으로 펼쳐진 우리의 대화 속에서 그는 좋은 사람의 손에 터번을 쥐어 주며 공짜라고 거듭 말한다. 분명 꿍꿍이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되돌려 주었지만 그는 계속 공짜인 것을 강조하며 내게 건넸다.

- “이거는 좋은 사람에게만 주는 선물이고 정말 공짜야.”


다시 거절했지만 이집트에서 선물을 거부하는 것은 나쁜 것이라며 내 손에 터번을 다시 쥐어주고는 그는 정말로 홀연히 떠나가버렸다. 순간 생각했다. ‘내가 정말로 좋은 사람이라서 그랬던 거구나. 괜히 의심해서 미안해’ 그리고 곧 그가 다시 돌아왔다.

- “그런데 그게 뭔지 알아? 내가 한번 보여줄게.”


갑자기 그는 봉지를 뜯어 버리고는 터번을 내 머리에 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깨달았다. 내가 걸려들었다는 것을. 하지만 내가 깨달은 뒤에는 상품태그를 떼어버려 더 이상 교환 및 환불이 불가한 상황이 되어버린 이후였다. 그는 내 머리에 터번을 둘러주고 나서 다시 말했다.

- “이게 공짜이긴 한데 나한테 팁을 좀 주겠니?”


그러나 나는 돈이 없다며 그의 팁을 거절했고, 이번에는 내 팔목에 있는 팔찌를 보고 대신에 팔찌를 줄 수 있냐고 물었다. 나는 터번에 대한 대가로 그에게 순순히 팔찌를 건넸다. 그런데 그는 내 머리에 써진 터번을 다시 가져가더니, 대신에 조잡한 피라미드 엽서 한 장을 건넸다. 자연스럽게 주었다가 다시 뺐어버리는, 그리고 초라한 엽서 한 장으로 나의 소중한 팔찌 두 개를 탈취해 간 그는 단연 밀고 당기기의 초고수였다. 이곳 호객꾼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지능적이고 대단한 사람이었다.


피라미드 엽서를 주머니에 넣고 스핑크스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이번에는 누군가 옆으로 와서 마치 화보작가라도 되는 듯 나의 자세도 교정해 주고 그가 쓰고 있던 터번까지 씌어 주며 사진을 찍어주기 시작했다. 마치 슈퍼스타의 사진촬영을 방불케 하는 열정적인 사진 찍기가 다 끝났는지 그는 당당히 손을 내밀며 돈을 요구했다. 나는 그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구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는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화를 내며 사진을 찍어줬는데 왜 돈을 안 주냐고 따지고 들었다. 물론 약간의 팁정도야 줄 수 있지만 너무나도 당연한 것을 요구하는 것 같은 그의 이상한 행동은 나의 분노 게이지의 상승을 촉진시켰다. 또한 뜨거운 날씨, 배고픔, 갈증 탓에 신경은 예민한 상태였고 계속되는 호객꾼들의 행태에 더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의 팁요구가 계속되자, 나는 부릅뜬 눈으로 맹렬히 그를 쏘아보며 더 이상 건들지 말라고 날 선 목소리로 경고했다. 그러더니 그는 한층 누그러든 목소리로 내게 미안하다며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 그는 미안한 마음에 다시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스핑크스가 있는 곳으로 나를 데려가 스핑크스와 진득하게 키스를 하는 사진을 남겨주었다.


이후 숙소에 돌아와 피라미드야경이 보이는 옥상 테라스에 앉았다. 그리고 하루 동안 찍은 사진첩을 보니 얼굴에 웃음기가 별로 없었다. 더운 날씨와 호객꾼들로 힘들었긴 힘들었나 보다. 그래도 옥상에서 바라보는 저녁의 피라미드는 역시 아름다웠다. 이렇게 그저 멍하니 암흑 속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피라미드를 바라보면 하루의 노곤함과 나쁜 기억들도 싹 가신다. 이런 분위기에 맥주가 빠질 수 없겠지만, 이집트는 이슬람 국가이기에 이번만큼은 맥주 말고 콜라로 분위기를 대신했다. 그리고 왠지 술이 없어도 취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면 아마도 분위기에 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취기가 한껏 올라온 나는 잔잔하게 빛나는 피라미드를 향해 오른팔을 쭉 뻗었다.


“그대의 아름다움에 치얼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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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0415.JPG 터번을 줬다 뺐은 나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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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0453.JPG 일명 Marking r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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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191118_101743567_01.png 그대의 아름다움에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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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191118_101743567_03.png 쿠푸의 무덤에 돌을 밟고 올라간 사람들
KakaoTalk_20191118_101743567_04.png 말을 잇지 못할 거대함





낭만 없는 여행 에세이 담고 있습니다.


글/ 사진_ Instagram@jongminz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