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해 앞에서

역마살 이야기 38 Egypt, Dahab

by 역맛살



화려한 연극은 계속되고 너 또한 한 편의 시가 된다는 것

여러분의 시는 어떤 것이 될까


-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중에서


[홍해를 향하여]

저녁 9시 반, 카이로에서 다합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저녁 버스가 시내를 벗어나니 밖에 보이는 것은 검은 차창에 비친 내 모습뿐이다. 멋진 모습도 아니고 거뭇거뭇한 수염에 시꺼멓게 그을린 모습을 보는 게 즐거운 일이 아닌 탓에 그냥 눈을 감고 잠자기를 택했다. 잠시뒤 강한 에어컨 바람이 머리카락을 가르며 정수리를 세차게 두드리기 시작하자 후드티 모자를 눌러쓰고 몸을 잔뜩 웅크렸다. 그리고 머지않아 잠의 불청객, 체크포인트에 도달했다.

출발하기 전, 몇 번의 검문이 있을 거라고 들었지만 이렇게 까다로울지는 몰랐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집트에서는 버스 짐칸에서 모든 개인 짐을 꺼내어 일렬로 줄을 선 뒤 차례로 검문을 받았다. 꽤 오랫동안 꼼꼼했던 검문을 다 마치고 미간의 주름을 잔뜩 찌푸린 채 다시 버스에 올라탔다. 그래도 이전에 에티오피아 경험 덕분에 비록 앉아서 자는 잠이었지만 푹신한 의자와 빵빵한 에어컨 정도면 남부럽지 않은 호텔 정도로 느껴졌다.

그렇게 버스는 한참을 달리다가 이른 아침 6시에 체크포인트에 다시 도달했다. 그리고 어김없이 승객들은 모든 짐을 꺼내어 한 명씩 차례대로 검문을 받았고 얼마간 더 달리자 여행자들의 블랙홀이라고 불리는 다합에 도착했다. 그러나 이른 오전임에도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느끼는 바깥의 더위는 강렬했고, 배낭 속에 욱여넣은 욕심이 많을수록 활짝 만개한 땀샘은 내 옷을 짙은 색으로 물들였다. 그러다 일단 걸어보자는 마음에 이끌려 도달하게 된 곳은 어느 한적한 홍해 바다였다.

그늘 아래 앉아 바라본 홍해의 바다는 태양빛이 반사되어 반짝거렸고, 한없이 밀고 들어오는 파도소리는 번잡한 마음을 잔잔한 위로하는 듯했다. 홍해의 바다는 투명하고 검푸른 바다의 색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었는데 얕은 바다는 포카리스웨트, 깊은 바다는 파워에이드 색을 띠었다. 그리고 이 두 음료수는 마치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고 뚜렷한 경계를 만들며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었다.

파도, 햇살, 외로움. 모든 것이 완벽했다. 이 완벽한 시간 속에서 생각을 정리할 때 쓰는 노트 하나를 꺼내어 천천히 글을 써 내려갔다. 딱히 정해진 주제는 없고 그저 마주한 아름다움에 대해 무언가 적고 싶었다. 만일 내가 그림을 그릴 줄 알았다면 그림을 그려 아름다움을 담았겠지만 거창한 걸 그리기에 한없이 부족한 나의 오른손이 할 수 있는 것은 짧은 글을 몇 자 끄적거리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투박한 글씨체를 천천히 써 내려가며 눈앞에 펼쳐진 홍해의 아름다움을 글로 스케치했다.


[새로운 도전]

짭짤한 바다 미풍을 맞으며 홍해를 바라보다 보니 어느새 체크인 시간이 다가왔다. 잠시뒤 숙소에 가니 수많은 다이버들의 사진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역시 다이버들의 천국이라는 별명이 괜히 있는 것은 아닌 듯했다. 그리고 모처럼 다이빙의 천국에 왔으니 나도 한번 시도해 볼까 했지만, 워낙 물을 무서워했기 때문에 스쿠버다이빙이나 프리다이빙은 부담스러웠고 그 대신에 스노클링을 하기로 했다.

다합에는 여러 다이빙 장소가 있지만 그중에서 블루홀이라는 곳을 가기로 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말하기를 블루홀은 꽤나 상급에 속하는 위험한 곳이라고 했다. 그래서 10년간 블루홀에서 다이빙을 하다가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150명이 넘는다고 했다. 이런 안타까운 사실 중에 다행인 것은 스노클링을 하다 죽은 사람은 아직 없다고 하니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블루홀에 도착하니 검푸른색의 바다는 마치 푸른 지옥이라도 보여주려 듯 잔잔히 물결치며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곧이어 일단 크게 심호흡을 하고 스노클링 마스크를 찬 뒤 옅은 바다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해안절벽 바로 앞에 잠시 주저하다 심연의 끝을 알 수 없는 검파란 파다 위로 몸을 던졌다. 그러나 발이 땅에 닿지 않는 두려움이 순식간에 나를 집어삼켰고, 어릴 적부터 가지고 있던 물에 대한 공포가 여전히 홍해만큼 깊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아주 잠깐 수영을 배웠던 경험이 있다. 기억하기로는 한 달 정도는 어린이 수영장에서 기본기를 익혔고, 그 이후 어른들이 사용하는 깊은 수영장으로 이동해 수영을 배웠다. 하지만 그 시절 어린 나는 물에 잠기는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했고 레인을 나누는 줄을 필사적으로 붙잡으며 그곳에서 빠져나왔다. 이후 곧바로 수영 배우는 것을 그만두었고 그때의 경험으로 인해 생긴 깊은 물에 대한 트라우마는 오래도록 나를 괴롭혔다. 그런데 어릴 적 필사적인 몸부림이 홍해에서 그대로 재현되었다.

나는 몸 한번 휙 던지자마자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온몸을 휘저으며 다시 점프했던 곳으로 필사적으로 손을 짚었다. 그렇게 물 밖으로 나가기 위해 허겁지겁 서두르다 그만 돌멩이에 미끄러져 중심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돌에 부딪힌 정강이를 확인해 보니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스노클링 마스크를 대여했던 곳에 갔더니 한 소년이 레몬을 뿌려가며 간단하게 응급처치를 해주었다. 피가 너무 많이 흐르고 있어 아무래도 피가 멈출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다행히 정강이에 흐르던 피는 시간이 꽤 지나자 멈추었고, 이번에는 구명조끼를 단단히 착용하고서 다시 바다로 몸을 던졌다. 다행히 구명조끼 덕분에 발이 닿지 않아도 마음의 안정을 느낄 수 있었고 홍해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찾아 나설 수 있었다. 곧이어 마주한 바닷속은 스노클링 마스크에 달린 호스로 들숨과 날숨이 드나드는 소리만 들릴 정도로 고요했다. 그리고 돌 틈에는 산호초가 봄꽃처럼 활짝 피어 있고, 그 속에 숨어 있는 알록달록 열대어들이 눈에 띄었다. 스노클링 마스크의 돋보기 효과 때문에 바닷속 생물들이 바로 눈앞에 있는 것처럼 가까이 보이지만 막상 손을 뻗어 잡으려 하면 잡을 수 없었다. 그래도 물고기 한번 손으로 잡아보겠어 고 발질을 멈추고 미동도 없이 가만히 있으니 익숙한 물고기가 유유히 내 앞을 지나가기 시작했다. 줄무늬 있는 저 물고기, 분명 어디서 많이 본 거 같은데. 아마 니모인 것 같다. ‘찾았다. 니모’


[다시 홍해 앞에서]

스노클링이 끝나고 저녁을 먹으니 해가 저물어 가는 쪽에서 연한 색깔들이 오묘하게 번져 오고 있었다. 마치 부드럽게 손으로 문지른 것 같은 해 질 녘 하늘은 분홍빛과 보랏빛 스모그로 덮인 환상의 나라 같았다.

그렇게 저녁의 느슨한 바람을 맞으며 한적한 곳으로 향하니, 나의 발걸음은 어느새 아침에 홍해 바다를 보며 사색에 잠겼던 바로 그 자리에 와있었다. 그리고 고요했던 아침과는 다르게 주변의 호텔과 레스토랑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 주변에 앉아 잔잔한 음악 속에 섞여 오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까마득한 어둠 속의 바다를 바라보았다. 무거운 색채가 내려앉은 바다의 모습은 무언가 내 미래와 닮아 있는 듯 보였다. 그래서 한동안 흰색 포말이 부서지는 검은 파도 바라보며 다시 한번 수첩을 꺼내어 내 마음을 글로 써 내려갔다.



현재는 막막하고 외롭다.

미래는 아득하고 두렵다.


그럼에도 나는 시처럼 음악처럼 살고 싶다.

시처럼 음악처럼 아름답게.


다합은 태양이 지고 있을 때가 가장 아름답다.

그렇다면 지고 있는 나의 20대 또한 이 세상 무엇보다 아름답다.


노을빛으로 저물어가는 나의 아름다운 20대.


그래, 어쩌면 나는 이미

시처럼 음악처럼 살고 있는지도


화려하게 날개를 펼치며 나비가 되는 순간만큼

나비가 되기 위해 부대끼며 살아가는 시간 또한

아름다운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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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191118_121241090_03.png 파스텔로 칠한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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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없는 여행 에세이 담고 있습니다.


글/ 사진_ Instagram@jongminzz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