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시간 버스

역마살 이야기 44 Armenia, Yerevan

by 역맛살

오늘 하루가 불행하지만 않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나는 만족한다.


- 김보통의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


- “터키 이스탄불까지 얼마나 걸리나요?”

- “이틀”

- “대략 몇 시간이 걸리나요?”

- “이틀”

티켓 아주머니는 영어가 능숙지 않아 그저 손으로 V자만 보이며 2 Days만 외치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뭔 놈의 시간이 이렇게 오래 걸리나 알고 봤더니 터키와 아르메니아 간에 사이가 좋지 않아 국경이 막혔고, 그 때문에 조지아를 경유해서 가느라 이틀씩이나 소요되는 것이었다. 사실 이틀이든 삼일이든 나에게 있어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소멸되고 없었다. 어찌 됐든 나는 터키를 가야 했고, 비행기는 너무 비쌌기 때문에 선택할 고민도 없이 버스로 이동하기로 했다. 그리고 어김없이 돈이 없는 자의 슬픔은 오로지 몸뚱이의 인내로 감내하기로 했다. 나는 군말 없이 터키행 버스 티켓을 예매했다.

그러나 잠시 뒤 티켓 아주머니가 당장이라도 핸드폰을 집어던질 듯 화를 내며 누군가와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영문은 알 수 없으나 저렇게 고성이 오가는 대화라면 뭔가 불길한 일이 생긴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통화를 끊고 티켓 아주머니는 내게 말했다.

- “Bus late.(버스가 연착됐어.)”

- “그럼 얼마나 기다려야 하나요?”

아주머니는 두 손바닥을 모두를 펼쳐서 보였고 나는 되물었다.

- "10분이 연착됐다고요?"


버스는 ‘10시간’이 연착되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10시간이나 연착이 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이해할 수 없는 궁금증이 머릿속을 채웠다. 그리고 남은 10시간 동안 뭘 해야 할지 한참 고민에 빠져 있던 중 옆에 계신 한 아주머니가 자기 집에서 기다렸다가 다시 오자며 나를 집으로 초대했다. 그러나 아주머니의 제안은 그다지 달갑지 않았다. 팔레스타인 사건 이후로 누군가의 호의나 친절에 대해 일단 의심부터 하는 습관이 몸에 밴 것이다. 그렇게 나는 잠시 뜸을 들이며 연락할 사람도 없는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렸다.

생각해 보면 비록 팔레스타인에서의 교훈으로 사람을 쉽게 믿지 않기로 했지만, 어느 누군가의 말처럼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건 조심성과 신중함이지 불신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다수의 선의를 믿었다.

이런 나의 섣부른 긍정으로 또다시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릴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같이 터키로 가는 승객이기도 했고 옆에 귀여운 꼬마 아이가 있는 것으로 봐서 나에게 해를 끼칠 것 같지는 않았다.

물론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면 안 되지만 사람의 인생은 얼굴에 담긴다고 생각하기에 어느 정도 관상의 신빈성을 믿는 편이다. 푸근한 아주머니의 모습과 아들 녀석의 모습을 보고선 잠시의 고민 뒤에 다시 한번 그들을 따라나서기로 했다.

그리고 도착한 집은 허름했지만 아늑했다. 아주머니께서는 이스탄불에 가느라 집에 음식이 없다고 했는데 차려준 음식은 스파게티와 와인, 직접 만든 빵과 밭에서 기른 사과, 복숭아, 포도, 아이스크림, 홍차, 무화과까지. 먹을 것이 별로 없다는 말과는 반대로 우리 할머니의 밥상처럼 먹을 것으로 넘쳐났다. 차린 것이 없다지만 결국 차린 것이 많아 배 터지게 먹게 되는 우리 할머니의 기만적인 상차림처럼 말이다.

또한 로제라는 녀석은 외국인이 자기 집에 왔다는 것이 재밌었는지 자꾸 방에서 이것저것 가져와서 내게 보여주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 모자, 핼러윈 마스크, 자동차 장난감, 인형, 불가리아에서 산 자석, 체스, 내게 선물로 준 팔찌까지. ‘가만 보니 너 어머니를 꼭 닮았구나.’

사람에 의한 상처는 사람으로 치유해 나가는 것이기에, 로제의 가족을 통해 견고하게 쌓였던 마음의 벽은 서서히 허물어졌다. 그리고 계획에 없던 우연의 만남은 오늘도 내게 한아름의 소중한 기억을 선물했다.

이후 다시 터미널에 돌아왔고, 30분이나 더 지각한 버스는 10시간 30분 만에 터미널에 도착했다. 그리고 버스는 늦은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지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질주하는 버스 안에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이어폰을 꽂아보지만 질리도록 들은 익숙한 노래만 가득했다. 차창에 뿌옇게 서린 입김에 뭐라도 그려보지만 두꺼운 검지손가락으로 그려대는 무채색의 그림은 금방 지루해졌다. 물론 처음에는 호기심 찬 눈으로 창 바깥 풍경을 바라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느끼는 것은 결국 그게 그거였다.

곧이어 나는 그냥 아무 말없이 산송장처럼 버스에 실려 기나긴 여정의 어딘가로 향해 가고 있었다. 차라리 '모르는 게 약이다.'라는 속담처럼 이틀이나 소요되는 이 아득한 여정길을 몰랐다면 더 나았을 것이다. 계속해서 시계를 바라보며 36시간에서 지금까지 이동한 시간을 빼는 일을 반복했다. 하지만 이제 갓 입대한 군인이 전역날을 세고 있는 것처럼 나의 반복적인 뺄셈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하루가 지나고 다음날의 해가 떠올랐을 즈음 날카로운 비린내가 비수처럼 날아와 콧구멍을 꽂혔다. 고단함을 듬뿍 남은 찝찝한 냄새가 피어오르고 있던 것이다. 그와 동시에 한 때 찰랑찰랑 엘라스틴 머릿결을 자랑했던 나의 머릿결은 어느새 바짝 말려놓은 시래기나물에 참기름만 살짝 발라놓은 것처럼 반들반들하고 눅눅하게 뭉쳐버렸다. 로션의 유분기는 다 날아가버렸는지 얼굴 곳곳에는 까끌까끌한 각질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여행을 거듭할수록 나의 살점들은 서서히 사라지더니 이제 나시를 입은 팔뚝은 한 뼘으로도 잡을 수 있을 만큼 얇아졌다. 의도치 않은 다이어트였고, 불필요한 다이어트였다. 그렇게 나는 떠나가는 수많은 살덩이들을 차마 붙잡지 못하고 눈물의 이별을 해야만 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자꾸만 내 손에 음식을 쥐어주고는 했다. 내가 많이 불쌍해 보였나 보다. 하긴 스스로도 안쓰럽다고 느끼는 존재가 누군가의 눈에는 더없이 가여워 보였을 것이다.

이후 시간은 흐르고 둘째 날 이른 아침이 되어서야 이스탄불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리고 볼일을 보기 위해 화장실을 먼저 갔는데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은 아니나 다를까 녹록지 않았던 여정을 그대로 증명하듯 많이 해쓱해져 있었다. 이마에는 띠를 하나 더 두른 것처럼 한층 더 늙어 있었고, 웅크린 어깨를 아무리 활짝 펴봐도 처음보다 확연히 홀쭉해진 내 몸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래도 여행을 떠나기 전 세수를 마치고 얼굴에 스킨을 바를 때면 아주 가끔씩 꽤 봐줄 만하게 생겼다며 만족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결코 아니다. 안 그래도 볼 것도 없는 본판이 홀쭉해져서 그마저도 뵈기 싫게 생겼다. 그렇게 거울 속에 초췌한 내 모습을 계속 보고 있자면 조금 측은해 보이고 조금 서러워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불쌍한 내 모습이 불행해 보이지는 않았다.

여행은 또 다른 작은 인생이었기에 그 안에는 좌절과 기쁨, 이별과 만남, 걱정과 설렘, 고난과 순탄이 늘 교차했다. 물론 대부분의 지나간 하루는 지친 하루이고 오늘도 어김없이 힘들었지만, 내가 견뎌낸 고단한 하루는 결코 불행하지 않았다. 오늘 내 하루는 그것으로 만족한다. 그래서 특별히 36시간이나 고생한 저 못난 녀석을 위해 뭐 맛있는 거라도 먹어주려고 한다. 숙소로 가기 전, 오랜만에 트립어드바이저 앱을 열었다. 유난히도 배가 고픈 날이다.


지루하지 않냐고요? 낯선 모든 이가 친구라서 괜찮아요.


앉아서 자는데 허리가 아프지는 않냐고요? 젊어서 괜찮아요.


배고프지 않냐고요? 사람들이 챙겨 주더라고요. 많이 불쌍해 보였나 봐요.


찝찝하지 않냐고요? 씻은 날보다 안 씻은 날이 더 많아서 이제는 익숙해요.


사실 여행이라 이 모든 게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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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타는 동안 사람들이 내게 주었던 음식들. 잘 먹었습니다.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건 조심성과 신중함이지, 불신이 아니다. 나는 여전히 다수의 선의를 믿는다.


- 김수현의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인용

낭만 없는 여행 에세이 담고 있습니다.


글/ 사진_ Instagram@jongminz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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