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사와 기요시의 대표작 <큐어>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라이터 불빛'을 기억할 수밖에 없다. 구로사와 기요시는 <도쿄 소나타>에서 또다시 '빛의 마법'을 부린다. 주인공 가족의 집은 항상 두 가지 빛으로 나누어져 있다. 하나는 주황색 계열의 난색, 다른 하나는 어두운 푸른색 계열의 한색. 두 조명이 한 화면 안에 들어올 때 집의 모습은? 바로 이렇게.(장면 1)
이런 조명 아래에서 가족이 식사를 한다면? 바로 이렇게.(장면 2)
같이 식사를 한다는 건 친교 생활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행동이다. 그런데 이 식사 장면(장면 3)에서 근경에 놓인 계단으로 인해 이 가족들은 말 그대로 '조각나' 있다. 사실 다른 장면에서도 그렇다. 가장 편안해야 할 집 안에서 이 가족들은 서로 조각나 있거나, 다른 색온도 속에 있거나, 작은 프레임 속에 갇혀 있다. 모든 사건이 끝난 뒤에 딱 한 번 정상적인 식사 장면(장면 4-1)이 나오는데 이를 이전과 비교해 보면 아무것도 사실 해결된 것이 없음에도 편안해 보이기까지 하다. 황색과 청색의 인공광 대신 뒤쪽 창문으로부터 태양광이 들어오는데 극의 초반 유사한 앵글에서 찍힌 다른 식사 장면(장면 4-2)과 직접 비교해 보면 그 차이가 확실해진다. 초반에는 황색과 청색이 날카롭게 대립하는 반면 후반에는 자연광 톤이 화면 전반을 지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조명 하나로 같은 구도의 식사를 완전히 다른 의미와 톤으로 만들어 버린 셈이다. 식사 자리를 좌불안석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은 류헤이(아빠)가 다른 실직 동료의 집에 갔을 때 그 파괴력이 극대화된다. 유리 식탁과 크롬 프레임 의자가 일견 깔끔하고 모던해 보이지만 이 장면에서는 오히려 너무 차가워 가족 간의 얼마 남지 않은 온기마저 식혀 버릴 듯 하다.(장면 5) 허세를 채우느라 쓸데없는 일로 아내를 닦달하고, 가짜 전화를 받고 와서는 류헤이를 거짓으로 나무란다. 더 나아가 동료의 딸이 류헤이에게 '아저씨도 고생이시네요'라고 말하고 돌아서 나가 2층 계단 뒤에서 바라보는 일련의 장면들(장면 6)은 말 그대로 호러쇼 그 자체이다. 아차, 이 감독 <큐어>도 만들었었지.
메구미(엄마)는 좀도둑과 도피한 중에 바다를 보며 절규한다. 저기 앞에 보이는 것이 육지냐고, 아니면 배냐고. 다소 뜬금없어 보이지만 이 절규는 사실 <도쿄 소나타>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단단한 지반인 육지는 지금까지의 뻔하고 예측 가능한 삶으로 회귀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배는 지금까지 가 보지 못해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는 삶을 의미할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인물들의 호소는 바로 이 지옥의 이지선다 앞에서 나오는 단말마이다.
가야 할 길을 모른다는 건 사회적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그중의 일본은 기존의 가치가 붕괴되고 그 빈 자리를 새로운 가치가 채우지 못한 과도기적 상태로 보인다. 미국은 더 이상 맹종할 만한 국가가 아니고, 회사는 더 이상 종신고용을 보장하지 못하고, 그로 인해 가장의 권위랄 것도 더 이상 세우지 못한다. 그로 인해 류헤이는 실직당한 소식을 가족에게 알리지 못하고 무료급식소와 직업알선단체를 기웃거릴 뿐이며, 타카(장남)는 미군 입대를 통해 가족과 국가 공동체 자체로부터 탈퇴하려 한다. 잘 생각해 보면 17년 전 일본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이 가족은 각자만의 '유사 죽음'을 경험한다. 류헤이는 차에 치여 말 그대로 거의 죽다 살아나고 메구미(엄마)는 좀도둑과 도피한 뒤에 바닷가에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복귀한다. 그 뒤 이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장면 7-1, 7-2)은 아침의 맑은 태양광이 함께한다. 태양광이 난색과 한색 모두가 섞인 빛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육지와 배 둘 중의 양자택일을 거부하는 것이 감독이 내놓은 해법인지도 모른다. 마치 이쪽저쪽으로 갈라져 있던 가족들이 (역시 태양광이 따뜻하게 내려쬐는) 마지막 피아노 연주 장면(장면 8)에서 봉합해 놓은 것처럼. 그런 의미에서 음악에 의한 봉합은 좋게 말하면 안온하고 나쁘게 말하면 일시적이다. 둘 중 어느 쪽에 마음을 둘지는 각자의 선택.
여담이지만 이 견해를 수용한다면 포스터 작가가 조금 괘씸하기 그지없어진다. 태양광이 있어야 마땅한 피아노 연주 장면에 자기 마음대로 난색 계열을 깔아 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