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은 우리를 춤추게 하지만, 슬픔은 우리를 깊어지게 한다네.
창밖에는 나직하게 단비가 내리고 있네. 젖은 흙내음이 코끝을 스치는 이 고요한 시간에 자네가 보내온 마음의 갈피를 하나씩 넘겨보았지. 이찬혁이라는 젊은이가 빚어낸 선율 속에 담긴 그 깊은 사유가, 자네의 정갈한 문장들과 만나 내 낡은 책상 위로 따스한 위로처럼 번지더구먼.
기쁨이 지나간 자리에 슬픔이 고이는 것을 '아름답다'고 말할 줄 아는 자네의 넉넉한 시선이 참으로 귀하네. 세월을 한참 지나온 나조차도 때로는 지는 꽃잎을 보며 서운해하곤 하는데, 자네는 벌써 삶의 파동을 품을 준비가 되어 있구나 싶어 마음이 뭉클해졌네.
우리는 흔히 인생이 저 높은 산꼭대기를 향해 한없이 뻗어 나가는 직선이어야 한다고 믿곤 하지. 하지만 자네가 말했듯, 산을 오르면 반드시 내려가야 하고 해가 뜨면 그림자가 길어지는 법이라네. 뙤약볕만 계속되는 땅은 사막이 되지만, 그늘이 머무는 자리에는 이끼도 피고 작은 벌레들도 쉬어가지 않나. 자네가 만난 그 가사처럼, 밝은 미소를 짓지 않아도 우리 삶에는 사랑할 이유가 참으로 많다네. 슬픔을 쫓아내지 않고 가만히 품어주면 단단하고 매끄러운 조약돌이 된다는 표현이 참으로 절묘하네. 내 손등에 자리 잡은 이 검버섯과 주름들도, 사실은 수많은 슬픔을 품어내며 빚어낸 나만의 '예쁜 돌'일지도 모르겠네.
자네가 이야기한 '서사적 정체성'이라는 대목에서 나는 무릎을 탁 쳤네. 그래, 우리는 저마다의 생을 한 폭의 거대한 자수처럼 놓아가고 있는 것이지. 화창한 날의 밝은 실로만 수놓은 옷감은 눈이 부셔 오래 볼 수 없지만, 시린 날의 푸른 실과 흐린 날의 회색 실이 섞여야 비로소 깊이 있는 문양이 완성되는 법이라네. 지금 당장은 발에 치이는 깨진 유리 조각처럼 아픈 기억일지라도, 훗날 먼 길을 돌아와 자네의 생을 반추해 보면 그 조각이 없이는 도저히 완성될 수 없었던 단 하나의 그림을 발견하게 될 걸세. 자네는 이미 그 '끼우는 과정'의 숭고함을 알고 있구먼.
기쁨은 우리를 춤추게 하지만, 슬픔은 우리를 깊어지게 한다네. 그 깊이가 있어야만 타인의 아픔을 담아낼 수 있는 커다란 잔이 될 수 있는 법이지. 자네의 잔이 지금 조금씩 깊어지고 있는 것이니, 그저 이 흐름을 다정하게 지켜보게나.
마음의 주름마다 다정한 슬픔을 새겨 넣은 할아버지가.
P.S: 자네의 인생 퍼즐 중에서, 정말 끼우기 힘들었지만 지나고 보니 '이 조각 덕분에 내 삶이 찬란해졌구나' 싶은 순간이 혹시 있었는가? - 기쁨, 슬픔, 아름다운 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