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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코뿔소 Sep 02. 2020

기다림

짧은 글


기다림이라는 행위 자체에는 특별할 것도, 대단할 것도 없었다. 그것은,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흥미로울 수도, 지루할 수도 있겠지마는 대개 그는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았다. 어쨌든 그는 의식이라는 것을 처음 얻게 된 이후로부터 줄곧 기다려 왔기 때문이다. 첫 기다림을 그는 생각한다. 그의 부모가 그를 떠났을 때에도 - 버렸을 때에도 - 그는 그것을 기다림이라 느끼지 않았다. 아무튼, 너무도 어렸고 우둔했으며 순진했기 때문이다. 첫 기다림을


그는 생각한다.


어두침침한 전구가 희미하게 떨고 있던 긴 복도에서, 역한 냄새가 풍기는 가운데 그는 벽에 그려진 무늬를 헤아렸다.


기다린다, 라는 말 자체에는 어떤 목적 혹은 대상이 있다. 그것이 기다림이다. 무언가 올 것이라는 기대가 기본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그의 첫 기다림에서 그것은 초콜릿이었다. 억세고 털이 많이 덮인 손이 그에게 달콤하고 검은 덩어리를 주었고 그는 그것을 입속에서 천천히 녹였다. 마침내 달콤함과 쓰디씀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그것이 모두 사라지고 난 뒤로 그는 줄곧 기다렸다.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시간 따위는 그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았다. 어쨌든 그것은 그의 첫 기다림이었고, 그 뒤로 그의 모든 삶은 기다림으로 점철되어 있었으니까. 그를 '기다리는 자'라 불러도 큰 어폐는 없을 것이다.


첫 기다림. 첫 초콜릿. 달콤함과 쓰디씀, 쓰디씀과 달콤함.


그가 진정한 기다림의 의미, 혹은 기다림의 즐거움 또는 괴로움을 깨닫게 된 것은 그가 사랑을 시작한 이후였다.

사랑은 꼭 초콜릿과 같았으나, 한번 삼키고 똥으로 배출되고 나서도 남아 있다는 점에서 초콜릿과는 달랐다. 기다림에 목적이 생기고, 기대하는 바가 생기고, 기다림이 끝이 언제일지 기다리고 예측하게 되면서부터 그는 지루함과 즐거움, 행복과 절망, 분노와 안도를 느끼는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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