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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코뿔소 Jan 18. 2021

스케치 - 헤매이지 않는 사람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다. 출신도 성정도 모습도 서로 달랐으나 그들은 모두 헤매이고 있었다. 한참을 걷다 보니 눈앞에 커다란 문이 있었다. 선한 인상을 한 노인이 그들에게 손을 들어 보였다.


"어서 오십시오." 


노인이 말했다.


"이곳은 어디입니까?"


불안한 표정을 하고 헤매이던 무리 중 한 사람이 물었다.


"이곳은 '헤매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곳'입니다. 이곳에서는 누구도 더는 헤매이지 않게 됩니다. 마침내 찾던 것을 발견하고 또한 얻게 됩니다."


무리는 오래도록 헤매었기에 기대 이후의 좌절, 배신감, 상실감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만큼 또한 절박했던 탓에 한 여인은 물었다. 


"저는 한평생 잃어버린 제 아들을 찾아 헤맸습니다. 이곳에서 제 아들을 찾을 수 있습니까?"


커다란 문이 소리도 없이 열리고, 안에서 준수한 용모의 장성한 청년 하나가 달려와 어미의 품에 안겼다. 여인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또한 낯설다는 듯이 아들의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손으로 눈과 코와 입과 귀를 만져 보다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 모자는 손을 잡고 문 안으로 향했다.


이를 바라보던 청년이 물었다.


"저는 한평생 제 짝을 찾아 헤맸습니다. 사랑에 절망하는 것도 순간에 환희하는 것도 이제는 지겹습니다. 이 안에서 제 짝을 찾을 수 있습니까?"


아름다운 처녀가 문 안에서 걸어나왔다. 수줍은 듯, 그러나 확고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처녀를 청년은 그저 얼이 빠져 바라보았다. 둘은 한참을 서로 바라보다 마침내 손을 맞잡고 끌어안았다. 젊은 연인들은 더없이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문 안으로 향했다.


백발이 덥수룩한 학자가 물었다.


"이곳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이에 노인이 답했다.


"이곳의 이름은 엘리시온이 아니오, 아르카디아도 아닙니다. 이곳은 예루살렘도 아니며 오멜라스는 더더욱 아닙니다. 이곳은 유토피아가 아니고 극락이 아니며 또한 천국이 아닙니다. 이곳은 그 누구도 더는 헤매이지 않게 되는 곳입니다. 그대는 무얼 찾아 헤매었습니까?"


학자가 더듬대며 말했다.


"저는 한평생 진리를 찾아 헤매었습니다."

"그렇다면 찾게 될 것입니다."


노인이 학자의 팔을 부드럽게 잡고 문 안쪽으로 향했다. 환한 빛이 학자를 감쌌다. 그 순간 그는 모든 것을 깨달았고, 환희에 차 눈물을 흘리며 방방 뛰놀았다. 노인은 그것을 흡족하게 바라보았다.


누구도 헤매이지 않는 곳에서 사람들은 헤매이지 않았다. 헤매이다 마침내 이곳을 찾은 이들도. 어떠한 난관에도 가야 할 길은 눈앞에 드러났고, 고민이 생길 때면 최선의 방책이 제시되었다. 작가가 글을 쓸 때면 최적의 문장과 단어가 손가락 끝에서 흘러나왔고, 음악가가 노래를 지을 때면 오선지 위에 천상의 곡조와 박자가 울려퍼졌다. 화가의 붓끝에서는 색채와 조형이 드넓고 아름답게 그려졌다. 그러면 헤매이지 않는 사람들은 정해져 있는 대로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그림을 감상했다. 누구도 후회하지 않았다. 그것이야말로 수천, 수만 가지로 갈라져 있던 길에서 유일하게 가야 하는 단 하나뿐인 길이었기 때문에. 때가 되면 그들은 짝을 찾아 가정을 꾸렸다. 죽음을 앞두고도 그들은 후회하지 않았다. 후회도, 새로움도, 기대도, 모험도, 노력도 없었으니, 실로 그들 모두는 아무도 헤매이지 않았다. 죽어야만 하는 이들은 반드시 죽어야만 했고, 살아야 하는 이들은 반드시 살아야만 했다. 슬퍼야만 하는 이들은 반드시 슬퍼야만 했고, 기뻐야 하는 이들은 반드시 기뻐야만 했다. 오로지 가야 하는 길, 그 다음 가야 하는 길, 그 길에서 이어지는 길을 걸은 끝에 맞는 죽음이었기 때문에. 


그 길을 누가 이끄는지는 결단코 중요하지 않았다.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오로지 만족만이 있었을 뿐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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