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햄스터로소이다 - 1

연재소설

by 흰코뿔소

1. 나는 햄스터로소이다



나는 햄스터로소이다. 이름은 아직 없다.

무릇 말을 하는 축생이라면 응당 이런 문장으로 운을 떼어야 한다 믿기에, 제諸 독자들의 너그러운 이해를 구한다. 저 바다 건너의 묘猫선생께서도 이해하시리라. 아무튼, 제가 잡아먹은 내 동족에게 미안해서라도 아무 말은 못 할 것이다.


난 지 어언 두 달, 어엿한 어른이 되어 짝을 이루고 자식을 보고 숙명과도 같은 방랑의 길에 떠남이 이 몸과 일가의 수컷으로서의 사명일진대, 털도 나지 않아 꼬물꼬물 땅을 기던 때에서 약간의 세월이 흐르고 보니 - 세상은 유리로 된 좁은 우리였고, 나는 빨빨거리며 열심히 쳇바퀴만 돌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자 작은 세상은 칸칸이 나뉘어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아직 털도 자라지 않은 새끼에서부터 뒤룩뒤룩 살이 찐 늙은이들도 많았다.

“이보쇼, 형씨.” 하고 나는 옆 칸에서 제 꼬리를 붙들으려 열심히 맴을 돌고 있던 쥐에게 말을 붙였다.

“여기는 대체 어디요? 왜 사막에 있지 않소?”

“사막이 대체 무어람.” 멍청한 목소리로 놈이 찍찍거렸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목소리만 듣고서도 상대의 성품과 됨됨이를 알 수 있어서, 단박에 그가 우물 안 쥐새끼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밥이나 얼른 나왔으면 좋겠네.”

“밥이야 해가 지고 이슬이 내리면 잡아먹으면 되잖소, 그런데 당신 굴은 어디에 있어요?”

“굴이 다 무어야, 굴을 팔 흙도 모래도 없는데. 때가 되면 저 위에서 벌레니 씨앗이니 다 준다구.”

“허, 한심한 작자로세.”

“이봐, 주둥이 조심해.” 쥐가 골이 난 투로 툴툴거렸다.

“내 꼬리를 좀 보라구. 너보다 훨씬 길지? 살기도 내가 훨씬 오래 살았어. 이제 가서 좋은 인간을 만나기만 하면 되는데, 멍청한 놈들이 이 몸의 멋진 꼬리를 몰라본단 말이야.”

“인간? 무슨 인간?”

“배고프다.” 지껄이고선 놈은 다시 꼬리를 잡으려 뱅뱅 돌았다.

“내 꼬리 좀 봐. 길고 부드럽고 유연하지. 너는 어째 꼬리도 하나 없니. 동족들 보기에 부끄럽지도 않아?”

“이봐요, 형씨, 햄스터는 원래 꼬리가 없어요. 무식한 소리만 늘어놓으니.”


타박을 놓고, 나는 고개를 들어 사방을 둘러보았다. 주위에 뭇 짐승들이 많았다. 쥐, 새, 개, 가시가 돋은 쥐, 입에 차마 담기도 몸서리쳐지는 눈이 찢어진 고양이, 그보다도 더욱 끔찍한 비늘 달린 족속들에, 큰 턱이 달리고 뿔이 난 등갑충까지.


“세상에, 이게 무슨 요지경이람.”

“요지경이고 뭐고,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가 보군. 자네 어미는 제 배로 낳은 새끼를 잡아먹었어. 자네만 운 좋게 살아남았다구.”

“감히 우리 어머니를 모욕하다니!”

“아 글쎄, 어머니 냄새가 기억이나 나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저건 또 누구람?”

“저게 누군데?”

“저 인간 말이요. 배가 남산만큼이나 튀어나왔군.”

“저게 이 가게의 주인이야.”

“가게가 무엇이요?”

“가게가 가게지. 인간들이 와서 사 간다구, 나도 얼른 팔려나 갔으면 좋겠네.”

“판다구요? 누구를?”

“누구긴 누구야, 자네나 나 같은 짐승들이지. 내 형제들은 이미 옛저녁에 다 팔려 나갔다네. 지금쯤 아마 좋은 곳에서 호의호식하고 있을거라. 멍청한 인간들, 내 멋진 꼬리도 몰라보고, 그나저나 밥은 언제쯤 나온담.”

“밥 소리는 집어치워요, 우리를 뭣하러 사 간단 말이에요?”

“글쎄 내가 알아? 데려다 키우거나 하겠지. 밥도 주고, 우리도 주고, 쳇바퀴도 잘 돌아가는 것으로 준단 말야. 옛날 우리 조상님들은 곡식이나 축낸다고 맞아 죽거나 쥐덫에 걸려 죽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는데,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야. 팔자가 아주 폈지, 폈어.”

“난 팔려가기 싫은데요. 사막은 어디 있어요?”

“사막 같은 소리 하고 앉았네, 사막이 대체 뭐길래 사막, 사막, 사막, 노래를 부르나, 자네는? 사막에 가 본 적이나 있어? 내가 자네 눈깔도 못 떴을 때부터 봤다구. 저쪽 통에서 나서 이쪽 통으로 오기까지 주는 밥 직싸게 먹고 똥이나 푸지게 쌌으면서 가 본 적도 없는 사막 타령을 자꾸 하느냔 말이야. 웃기는 소리 그만하고, 밥이나 먹어. 아이, 배고프다, 배고파!”


더 이상의 이야기는 무의미할 것 같아서, 나는 커다란 앞발이 넣어 준 밀웜을 오독오독 씹었다. 밀웜의 대가리는 작지만 즙도 많고 바삭바삭하다. 배도 부르겠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한구석에 모아 둔 해바라기씨를 볼에다 가득 처넣고는 나는 생각에 잠겼다. 대체 여긴 어디람? 부모형제는 다 어디로 가버렸을까? 사막의 모래는 어느 편에 있을까? 또 이슬은, 풀잎은, 태양은.......


(illustration by KWY)

“이봐.”


쥐새끼가 있는 쪽 말고 다른 쪽 우리에 있던 개구리 한 마리가 말을 걸었다.


“나 말요?”


말이 나와서 말인데, 나는 개구리가 싫다. 눈깔은 툭 튀어나와서, 맨들맨들 빛나는 미끈매끈한 피부는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여하튼, 털 없는 족속들은 조물주가 만들다 만 실패작이라니깐.

“그래, 자네.”

“다 좋은데, 고만 좀 꼴깍거려요. 정신이 사나워 죽겠네.”


개구리는 들은 척도 않고, 눈깔은 한번 감지도 않고서는 말을 붙였다.


“이제사 정신이 좀 들은 것 같은데, 몸에서 비린내가 나는 인간을 조심하라구.”

“비린내는 그쪽이 제일 심한데요. 유리 너머까지 훅 끼쳐와요.”


깨굴, 하고 개구리는 음흉스레 웃음을 흘렸다.


“이봐, 털이 없다 다 같은 취급 하지 말란 말이야. 저쪽에 보여? 죽은 듯이 똬리를 틀고 있는 것들이. 쫙 찢어진 눈을 보기만 해도 나 같은 개구리는 겁에 질린다니까.”

“뱀 말하는 거요?”

“그래, 저편에 무더기로 있잖아. 큰물이나 져서 싹 다 쓸어가 버렸으면 좋겠네.”

“그건 동감이요.”

“그렇다니까. 하여튼 간에, 조심하란 말야. 자네 일가붙이도 많이들 먹혔으니까.”


동그랗고, 보기 좋게 탄탄한 몸 전체에 소름이 쫙 하고 끼쳤다.


“뭐라고요, 잡아먹히다니요? 그게 참말이에요?”

“그럼, 참말이고말고. 속을 알도 못하는 저 벼락맞을 짐승들은, 자네나 나 같은 먹이를 아주 좋아한다니까. 나이가 너무 들어 팔려가지 못한 이는 염병할 주인놈이 쥐어다가 우리에다 집어던진다고. 그러면 혀를 날름날름, 입을 쩍 벌리고 꿀꺽 삼켜 버려. 우리 아버지도 그렇게 돌아가셨어.”

“안되셨구랴.”

“안됐고말고. 그러니까 자네도 조심해. 인간이 와서 키우려고 드는지, 아님 어디 우리에다 집어던질지 모르는 일이야. 여기 태어난 것이 아주 지랄이지. 더 평범한 곳에서 태어나면 좀 좋아? 하필 나도 이딴 곳에서 나서.”

세상 물정 모르는 햄스터란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아서, 나는 조심스레 떠 보았다.


“하긴, 쓱 보니 요지경입디다. 볼 일 없는 짐승들이, 왜 이렇게 다들 모여 있지요?”

“인간들은 청계천이라 하는 모양인데, 쉬이 보기도 힘들고 잡기도 힘든 짐승들을 모아다 파는 가게가 개구리 알마냥 붙어 있다더라고. 살면서 끽해야 물고기나 개새끼, 고양이새끼나 봤으면 봤지, 이런 구경을 하겠어? 딱히 하고 싶지도 않았지마는.”

“형씨는 어디 출신이오?”

“어디긴, 자네처럼 여기서 나고 자랐지. 나야 아버지 어머니가 뼈대 있는 가문 출신이라 잡아먹히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자네도 알다시피 개구리가 알을 낳으면 좀 많이 낳는가. 삼촌들은 빛깔이 좋아서 이곳저곳 팔려 가셨는데, 우리 아버지께선 안타깝게도 등짝에 큰 흉이 하나 지셨단 말야. 그래도 혈통 있는 저 열대숲 출신이셨는데....... 나야 어머니를 닮아 다행이지. 사실 말야, 나는 언제고 나갈 수가 있어. 자네가 바로 옆에 있으니 혹시나 해서 이야기해주는거지, 이웃 간의 정이란 게 그런 게 아니겠어?”


나는 은혜를 아는 예의 있고 의리 있는 햄스터라, 바로 자세를 고쳐 감사의 절을 올렸다.


“낯부끄러우니 그만 두라구.”

“아니올시다, 선생. 은혜는 잊지 않겠어요. 그런데, 어떻게 해야 키우려는 인간과 먹이려는 인간을 구분할 수 있지요?”

“그거야 쉽지. 우리 일가야 코가 썩 좋지는 않으니까, 뱀 비린내를 바로는 맡아도 인간 몸에 묻은 것은 쉬이 알기가 힘들어. 그래도 그것 말고도 방법이 몇 있지. 몸에 털이 붙어 있으면 개나 고양이를 키울 공산이 크지. 또 여자 인간은, 아무튼 귀여운 거라면 사족을 못 쓰니 자네를 먹이려 사지는 않을 거란 말일세. 어린 인간도 비슷한 이치고. 또 쳇바퀴나 우리, 곡식 따위를 같이 사면 – 뭐 제대로 된 주인이라면 응당 그래야 할 테지만 – 키우려고 데려가겠지, 그렇지 않아? 당장 먹이로 주어 버릴 거라면 그런 수고는 들이지 않을 테니까.”


나는 멍청히 눈알이 툭 튀어나온 이 개구리가 존경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노랗고 둥글고 똥똥한 개구리.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선생. 무지렁뱅이를 이토록 이끌어 주셔서. 그런데 하나만 더 물어 봅시다. 인간 분간법은 이제 대충 알겠습니다마는, 조심은 무슨 수로 하나요?”

“그것도 쉽지. 죽은 척을 하게나. 죽은 먹이는 잘 사지 않더라구. 자네 족속 새끼, 털도 안 나고 눈도 못 뜬 어린것들 있잖아. 분홍빛에 꼬물꼬물대는 것들.”


분노와 역겨움이 치밀어 올랐지만 나는 앞니를 꼭 물었다.


“그런 것들은 무더기로 얼려서 봉지채로 사 가는데, 그런 게 아니고서야 살아 있는 먹이가 아무래도 저 비늘 달린 것들은 더 좋아한단 말씀이야. 사족을 못 써요. 족足이 있는 놈과 없는 놈이 있지만, 뭐 아무튼.”

“그럼 죽은 척을 하면 되나요?”

“길게는 말구. 너무 길게 하다 쓰레기봉투에 던져지면 어쩔 거야. 게다가 산 놈을 더 좋아한다 뿐이지, 죽은 놈을 안 먹는 건 아니니깐.”


세상은 알고 보니 더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곳이었고, 안락하게만 느껴졌던 네 벽이 갑자기 사방을 조여오는 듯싶어 나는 꼬리를 떨었다. 그러고 보니 사방에서 희번뜩대는 눈과 쉿쉿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비늘 달린 족속은 어서 죽어 없어져야 마땅해, 나는 생각했다.


“아무튼 고맙소, 선생. 하루빨리 좋은 곳으로 가시길 빌어요.”

“그래, 자네도. 개굴.”


<계 속>